"어차피 우승은 OOO"
몇 년 전 한 TV 랩 경연 프로그램 참가자가 외친 이 한마디가 올 상반기 정비사업 시공사 경쟁과 딱 들어맞았다. 시공사 선정을 위해 시공능력평가 10위 안의 대형 건설사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펼쳤지만 결과는 1‧2등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사실상 독식했다.
최근 조합원들이 건설사가 내놓은 입찰제안서를 꼼꼼히 살피며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추세여서 이변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향후 집값 상승에 브랜드만한 게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결국은 오랜 업력을 지닌, 네임 밸류를 갖춘 건설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 전승 삼성물산, 대어 낚은 현대건설
이변은 없었다. 올 상반기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선 경쟁사들 가운데 시평 순위가 높고 오랜 업력을 지닌 건설사들이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으며 시공권을 따냈다.
삼성물산은 경쟁에 참여했던 두 곳에서 모두 승리하며 래미안의 복귀를 알렸다. 먼저 5년 만의 정비사업 복귀 사업장이었던 신반포15차에선 예상과 달리 손쉽게 이겼다. 대림산업과 호반건설이 삼성물산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삼성물산이 총 166표 가운데 126표를 가져오며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반면 대우건설과 경쟁했던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승부는 쉽지 않았다. 양사는 비방전도 불사하며 이전 단지들과 비교해 수주전이 다소 혼탁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만큼 두 건설사 모두 수주가 간절했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이 대우건설을 근소하게 앞서며(69표 차) 시공권을 따냈다.
GS건설과 포스코건설이 대결했던 신반포21차가 이변이라면 이변일 수 있다. 이 단지는 공사비 1020억원 규모로 크지 않은 사업장이지만 반포역(지하철 7호선) 역세권으로 입지가 좋다. 여기에 GS건설은 이 일대를 '자이타운'으로, 포스코건설은 강남 재건축 시장 입성을 위한 교두보로 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이 일대에서 재건축 사업을 펼친 경험이 많은 GS건설로 무게추가 기우는 듯 했지만 결과는 포스코건설의 여유 있는 승리였다.
가장 최근인 지난 21일 시공사를 선정한 한남3구역은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공사비만 1조8881억원에 달하는 강북 최대 규모 사업장이어서 업계 관심이 쏠렸던 지역이다.
특히 지난해 입찰에 참여했던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GS건설은 지나친 특화설계와 OS요원의 금품 살포 의혹(GS건설)등 수주전을 혼탁하게 만들어 국토부 제재를 받기도 했다. 재입찰 후 3사 모두 조용한 수주전을 펼쳐온 가운데 현대건설이 경쟁사를 따돌리고 시공권을 확보하며 대어를 낚았다.
이외에도 갈현1구역 재개발은 롯데건설이, 방배 삼익 재건축은 대림산업이 수주했다.
◇ 당장 이익보단 브랜드 가치에 무게중심
정비사업 조합원들은 어떻게 새 아파트를 짓느냐에 따라 재산 증식의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입찰에 참여한 각 건설사들이 제시한 입찰제안서를 꼼꼼히 분석하며 시공사를 선정하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건설사들 역시 이에 맞춰 공사수익을 줄이더라도 조합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종 선택을 앞두고서는 건설사들의 브랜드 파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물산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신반포15차의 경우, 지난해 처음으로 시평 10위권에 진입하며 전국구 건설사로 성장한 호반건설이 파격적인 입찰 제안으로 눈길을 끌었다. 호반건설은 강남 진입을 위해 역마진을 감수하며 ▲390억원 규모의 무상품목 제공 ▲연 0.5%의 사업비 대출이자 제시 ▲분양 시기(피크타임) 선택제 등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신반포15차의 한 조합원은 시공사 선정 투표를 앞두고 "입찰제안서만 보면 호반건설이 가장 적극적이라 눈길이 간다"며 "입지가 경쟁력이라 유리한 제안을 한 건설사를 찍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삼성물산의 압승이었다. 호반건설은 대림산업을 제쳤다는 점에서만 위안을 삼아야 했다.
반포3주구도 비슷하다. 대우건설은 반포 일대 강세를 보이는 삼성물산에 맞서기 위해 더 나은 입찰 조건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삼성물산과 달리 조합안의 대부분을 따랐고, 정비업계 최초로 '리츠 분양'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우건설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단지 역시 결과는 삼성물산이 간발의 차로 앞서며 승리했다. 반포3주구의 한 조합원은 "입찰제안서만 보면 대우건설이 확실히 눈에 띈다"면서도 "서울시가 지적한 것도 있고 집값을 생각하면 래미안이 유리할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 조합원들은 눈앞에 유리한 조건을 담은 입찰제안서를 꼼꼼히 챙기면서도 실현 가능성과 향후 미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에서도 조합원들은 '고급화'를 원하는 동시에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한남3구역 한 조합원은 "고급화 설계를 보면 대림산업이 우위에 있어 보였지만 이주비나 사업비 등을 생각하면 자금력이 탄탄한 건설사가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서울 주요 사업장 조합원들은 최근 급부상한 건설사보다는 오랜 업력을 지닌 건설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도 고급화 돼 있어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