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8·4대책에서 발표한 이후 관련 법안들이 나오고 관계부처 등에서도 구체화하면서 도입이 가시화되는 모습인데요.
일각에선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목돈 부족한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전세난을 진정시키는 해법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수요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합니다. 전매제한, 시세차익 환수 등 각종 제약이 많은데 그렇다고 가격이 크게 매력적이지도 않다는 입장인데요. 분양도 2023년부터라 입주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5~6년 뒤로 예상돼 마음 급한 수요자들을 달래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 '반의 반값' 아파트인데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분양가의 일부만 내고 집을 취득한 뒤 나머지는 살면서 지분을 채워나가는 방식입니다.
8·4대책에서 첫 발표했을 땐 최초 취득 시 분양가의 20~40%를 내는 것으로 구상했는데, 지난달 28일 '제9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최초 20~25% 취득으로 구체화됐는데요. 그야말로 '반의 반값', '5분의 1' 가격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셈입니다.
지분 취득 기간은 20~30년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취득 기간이 20년이면 처음에 지분 25%를 매입하고 이후 4년마다 15%씩 추가 취득할 수 있습니다. 미취득분에 대해선 보증금과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요. 추가 지분을 취득할수록 보증금이 공제되고 임대료도 축소됩니다.
공급 시기는 오는 2023년부터이고요. 주택 공급 부지는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마포구 상암동 DMC 미매각부지 ▲마포구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 ▲강서구 SH 마곡 미매각 부지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 ▲송파구 마천동 위례A1-14블록 등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점점 구체화하자 일부 수요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이 8억5696만원에 이르고요. 청약 경쟁률이 점점 높아져 청약 가점이 70점은 돼야 '안정권'으로 볼 정도로 청약문이 바늘구멍이거든요. 목돈이나 청약 가점이 부족한 무주택자로서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살면서 지분을 취득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듯 한데요.
그럼에도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 지분형 적립주택의 전매제한은 최장 10년, 실거주 의무가 최장 5년인데요.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도 지분율 100%를 채우지 못했다면 집을 처분할 때 SH나 LH 등 사업주체가 동의해야만 집을 팔 수 있습니다. 전매 가격도 정부가 정한 '정상 가격' 이내 수준에서 정해지고요. 처분 시점엔 지분 비율대로 시세차익을 공공과 나눠가지게 됩니다.
전세난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지분형적립주택의 입주 시기가 2026~2027년 정도로 예상되는 데다 서울 내 공급 물량이 1만7000가구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죠.
◇ 매달 128만원vs126만원…'이럴거면 집을 사지'
수요자들이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점인데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의 각종 제약을 상쇄할만큼 싸지 않다는 겁니다.
올해 상반기 분양한 마곡9단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59㎡의 분양가가 5억원이었는데요. 이 아파트를 지분적립형으로 분양 받아 20년간 취득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최초 취득 지분은 25%로 1억2500만원이고요. 나머지 75%인 3억7500만원에 대해선 보증금 1억원, 월임대료 14만원 정도를 납부해야 합니다. 이는 서울시와 SH공사가 유사 지역의 행복주택 시세를 기준으로 추산한 비용입니다. 이렇게 되면 초기에 필요한 자금은 2억2500만원(지분 25%+보증금)이 됩니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도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 취득한 지분에 대해서 서울지역 생애최초 기준 LTV 50%까지 받을 수 있다. 가령 예로 든 5억원짜리 주택의 경우 최초 취득 지분이 25%라면 1억2500만원에 대해서만 LTV 50%가 인정, 625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임대보증금도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후 4년마다 지분 15%씩(7500만원) 취득하면 되는데요. 그만큼 미취득분이 줄어드니까 보증금도 축소됩니다. 미취득지분 75%(3억7500만원)에 대한 보증금이 1억원일 때, 4년 후 미취득지분 60%(3억원)의 보증금은 8000만원으로 추산됩니다. 4년마다 보증금이 2000만원씩 공제되는 셈이죠.
이렇게 되면 4년마다 내야 하는 실제 지분 취득 금액은 5500만원(지분 15%-보증금 공제액)이 됩니다. 이를 48개월로 나누면 약 114만5800원이고요. 여기에 월 임대료 14만원을 더한 약 128만5800원이 20년 동안 매달 내야 하는 금액입니다. 월 임대료 축소분(4년마다 2만8000원)은 반영하지 않았는데요. 이를 반영해도 월 임대료는 평균 7만원, 월 납부 금액은 121만5800원 정도라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수요자들은 이런 구조가 '원리금균등상환 대출'과 유사하다는 반응입니다. 주택을 분양받은 뒤 만기를 설정하고 그동안 원금과 이자(월세)를 내는 주담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심지어 월 납부 비용도 비슷합니다.
이 주택을 주담대를 통해 취득할 경우 초기 부담금은 분양가 5억원에 생애최초 LTV 50%를 적용한 2억5000만원입니다. 지분적립형 주택에 비해 2500만원 더 필요한 수준이죠.
지분적립형 주택의 취득기간과 마찬가지로 상환기간을 20년으로 잡고 대출금리 연 2%, 원리금균등상환식으로 설정해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월 납입원금은 평균 104만1667원, 월 대출금리는 평균 22만3042원으로 총 126만4708원이 매달 내야 하는 금액인데요. 지분적립형 주택보다 월 2만원 정도 덜 냅니다.
심지어 최근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의 임대료 상향도 검토되고 있어 향후 불만이 더 높아질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SH공사 관계자는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행복주택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임대료를 조금은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보증금은 그 정도로(원래 발표했던대로) 유지하고 임대료는 조금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올해 안에 발표한다고 하는데요.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주택을 일부만 소유하는 데다 시세차익도 지분율대로 나눠야 해서 거부감이 높다"며 "빚을 내서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내 집'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환영받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