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악성 미분양주택 증가 수는 두 자릿수에 불과하다"
지난 2월28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미분양 현황을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미분양주택이 늘고 있지만 '준공 후 미분양'은 증가세가 미미해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최근엔 '(일반)미분양 10만 가구'까지를 각오한다면서 정부의 개입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러나 2~3년 뒤면 미분양이 악성 미분양으로 악화할 수 있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꾸준히 나온다.
"준공 후 미분양 얼마 안 된다"…아직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전국 미분양주택은 7만5359가구로 전년 동월(2만1727가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당초 국토부가 '미분양 위험선'으로 봤던 6만2000가구는 지난해 12월(6만8107가구)에 넘었고 한 달 만에 10.6% 더 늘었다. 이는 10년2개월만에 최대 수준이다.
금리 인상, 분양가 인상, 주택 매수심리 하락 등에 따라 '청약 한파'가 불어닥친 탓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다. 원희룡 장관은 최근 한 심포지엄 자리에서 "미분양 물량 10만 가구까지는 각오하고 있다"면서도 정부의 개입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사업시행자가 분양가를 낮추는 등 자구책을 통해 분양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최근 부동산 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수도권 위주로 미분양 물량이 해소된 점도 긴장을 늦춘듯 하다. 지난해 12월 분양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 포레온)은 예비입주자 인원 500%를 채우지 못해 미분양 우려가 나온데 이어 계약률도 저조해 우려를 낳았으나 무순위청약에서 전량 소화됐다.
서울 강북권 아파트 최초로 3.3㎡(1평)당 분양가 4000만원을 넘어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던 '마포더클래시'도 미계약됐다가 무순위청약에서 완판됐다. 1순위 청약 경쟁률이 0.97대 1에 불과했던 경기도 광명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도 완판됐다.
또 국내 주택 분양 방식이 '선분양 제도'라는 점에서 미분양 물량만 봐서는 심각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들고 있다.
국내 미분양은 일반 미분양과 준공 후 미분양으로 나눠 집계한다. 일반 미분양은 분양승인을 받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분양했으나 분양되지 않은 주택, 준공 후 미분양은 공사가 끝나 사용승인까지 난 주택이 분양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선분양은 처음 분양할 때 미분양이 나더라도 준공이 완료될 때까지 추가로 물량이 팔릴 수 있지만, 준공 후 미분양은 입주를 했는데도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주택인 만큼 '악성 미분양'으로도 불린다.
최근 5년간(2019~2023년·1월 기준) 미분양주택은 꾸준히 감소하다가 2022년을 기점으로 증가해 급증하는 반면, 준공 후 미분양은 최근 들어서야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전국 준공 후 미분양은 7546가구로 전월(7518가구) 대비 0.4% 증가에 그쳤다. 전년 동월(7165가구) 대비해서도 5.0% 늘었다.
지방은 이미 '폭풍전야'…"선제 대응해야"
그러나 건설업계에선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미분양의 대부분이 지방에 몰려있다는 점에서 지방·중소건설사들의 우려가 높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전국 준공후 미분양 7546가구 중 서울(342가구), 인천(343가구), 경기(595가구) 등 수도권 물량 1644가구를 제외하면 비수도권 물량이 5902가구에 달한다.
악성 미분양의 78.2%가 지방에 있는 셈이다. 특히 전남(916가구), 경북(888가구) 등은 각각 전국 악성 미분양 물량의 10%를 넘는 등 지방에 '빈 집'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주택을 다 짓고도 팔지 못하면 은행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한 돈을 상환하기 힘들어지고 이자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건설사의 경우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일부 지방에선 '원금 보장' 등을 내걸고 미분양 떨이에 나선 건설사들도 눈에 띈다. 이는 시세가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금을 돌려주고 계약을 해지해주는 것으로 과거 금융위기 직후 횡행했던 방식이다.
업계에선 일반 미분양이 쌓이고 2~3년이 지나면 준공 후 미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최근 일부 청약 시장에서 경쟁률이 살아나긴 했지만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등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제2금융권 자금조달 등 더 힘든 상황이 생기면서 건설업계가 무너질 수 있는데 미분양이 그 촉매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수요 심리가 회복돼야 분양 시장이 살아날텐데 미분양 낙인이 찍혀버리면 해당 건설사가 분양하는 다른 현장에서도 위험 연결이 될 수 있다"며 "LH나 HUG에서 수용하기 어려우면 민간에서 자금을 활용해 미분양을 매입할 수 있게 하는 등 미분양 연착륙 방안을 미리 만들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