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건설이 지난해 매출원가율 100%를 넘겼다. 건물을 짓는 등 공사를 해 벌어들인 돈보다 원자잿값 등 건물을 짓는데 들인 비용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영업활동 결과 '배(매출)'보다 '배꼽(매출원가)'이 더 컸다는 의미.
신세계그룹 계열인 이 건설사는 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제한 매출총손익이 지난해 처음으로 1129억원의 적자를 냈다. 직원 인건비 등 판관비를 제외하면 영업손실은 1800억원대까지 늘어난다.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영업손익 적자다.
매출 사상최대라지만 '더 늘었어야'
신세계건설이 최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건설사 2023년 매출액은 1조5026억원으로 지난 10년 중 역대 최대였다. 2021년(1조2568억원)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매출이 성장했다. 하지만 2022년(1조4324억원)과 견주면 4.9% 늘어난 데 그친다. 작년 매출 성장이 크게 둔화한 것이다.
건설부문 매출은 주거시설 공사가 3583억원(23.8%), 민간 상업시설 1조174억원(67.7%), 토목 346억원(2.3%) 규모였다. 레저사업은 923억원(6.2%)을 기록했다.
이 건설사는 작년 계열사인 ㈜스타필드수원으로부터 2827억원, 신세계로부터 165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 계열 발주처로부터 작년 전체의 29.81%에 달하는 매출을 여유롭게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매출 성장은 크게 둔화했지만 매출원가는 여전히 큰 폭으로 늘면서 매출총이익이 쪼그라들었던 게 문제다.
2021년 매출액의 90.8% 수준이던 매출원가(1조1415억원)는 2022년 1조3609억원으로 매출액(1조4324억원)의 95%까지 뛰었다. 지난해에는 1조6155억원으로 매출액을 넘어선 107.5%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매출원가 증가 추이를 보면 2022년은 19.2%, 2023년에는 18.7%였다.
매출 증가세가 정체되는 와중에, 비용으로 나가는 매출원가는 줄곧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했다. 그러다보니 이 기간 매출총이익은 1153억원(2021년)에서 714억원(2022년), -1129억원(2023년)으로 줄었다. 매출총이익 단에서부터 적자가 나는 것은 건설업계에서도 이례적이다.
원자잿값, 인건비 등 공사원가 상승도 적자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보다 부동산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실적 부진이나 발주처와의 법적분쟁으로 공사를 마치고도 매출 확보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대구 지역의 여러 주상복합 미분양, 부산 기장 빌라쥬드아난티 미수금 등에서만 1000억원 넘는 매출 결손이 생겼다.
반면 하청업체에 나가는 외주비는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건설사의 외주비는 2022년 8313억원에서 2023년 1조600억원으로 2300억원 가까이 늘었다. 매출을 확보하지 못하고도 하도급 대금은 전년보다 27.5% 넘게 늘려 지급한 것이다.
매출총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며 2023년 영업손실은 1878억원으로 확대됐다. 전년(120억원 영업손실) 대비 적자 폭이 1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순손실 규모도 142억원에서 1585억원으로 늘었다.
돈 곳간도, 일감 곳간도 '바닥'
영업적자로 순손실이 누적되면서 이익잉여금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익잉여금은 회사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순이익을 회사 내에 적립해 놓는 금액이다. 순이익이 늘어날수록 누적되는 개념으로 2021년에는 1671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2022년 142억원의 순손실을 내면서 이익잉여금이 1504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누적적자가 커지면서 그동안 쌓아둔 이익잉여금이 모두 바닥나고 163억원의 결손금을 기록했다.
이익잉여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현재처럼 적자가 지속되면 자본잠식이 올 수 있다. 적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올해 흑자로 전환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출원가를 낮추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 매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수주잔고가 지난해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 수주잔고는 2022년 2조6154억원에서 2023년 1조9542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매출 감소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적자폭이 커지면서 재무건전성도 악화했다. 이 건설사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22년 542억원에서 1299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 유동성이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금흐름표를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2022년 –178억원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지난해 –1755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더 커졌다. 마이너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영업으로 번 돈보다 지출이 더 많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265억원에서 2779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부족한 현금을 차입금, 어음발행 등 빚으로 채웠다는 얘기다. 2022년 265% 수준이었던 부채비율은 2023년 951.8%까지 치솟았다.
모기업 신세계가 도와주겠지만…
신세계건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850억원 규모 기업어음과 17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250억원을 별도로 차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총 차입금 규모는 3442억원으로 전년대비 2875억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이자로 지급한 금액만 195억원에 달했다.
차입금 가운데 올해 1분기 중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이 600억원, 연내 만기 도래하는 규모는 1700억원이다. 여기에 올해 1~2월 추가로 발행한 기업어음, 회사채 1920억원 중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도 600억원이 있다. 연내에만 총 2300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신세계건설은 계열사를 통한 유동성 추가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 금융기관 회사채 프로그램과 신세계영랑호리조트 흡수합병 등으로 약 265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해 올해 1월 부채비율을 600%대로 낮췄다.
또 2월에는 골프장과 아쿠아필드 등 신세계건설이 보유한 레저사업부문 일체를 계열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에 약 18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신세계건설은 오는 4월 29일 양수도 절차가 마무리되면 약 1800억원의 매각대금과 약 300억원의 자본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부채로 인식되던 약 2700억원 규모 골프장 회원입회금이 소멸되면 부채비율이 400%선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건설 재무제표를 감사한 한영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서 부동산PF 대출 보증액 관련해 "브릿지론과 PF보증 관련 최대 2500억원의 자원유출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며 "부동산PF 대출 보증 세부내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핵심 감사사항으로는 △총계약수익 적정성 △총추정계약원가의 불확실성 △미청구공사금액 회수가능성 등을 꼽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