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거래가 있습니다. 바로 '미등기 거래'인데요. 주택을 매매하고 잔금을 치른지 4개월이 넘도록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은 거래를 '수상한 거래'로 보는 거죠.
실제로 높은 가격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해놓고 잔금을 치르기 전에 계약을 해제하는 '집값 띄우기' 방식으로 쓰이곤 했거든요. 정부도 이런 거래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눈여겨보고 있고요.
하지만 등기를 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의심 거래로 보긴 어렵습니다. 개인 거래 사정에 따라 잔금을 늦게 치르는 경우도 더러 있거든요. 미등기 거래, 어떻게 봐야 똑똑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매매 후 등기 왜 안 쳐?
미등기 거래는 말 그대로 주택을 매매한 뒤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은 거래를 말합니다.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제2조1항에 따라 주택 매매계약 잔금일 이후 60일 이내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하게 돼 있는데요.
통상 아파트를 거래할 땐 매매 계약을 할 때 일부를 계약금으로 내고, 2~3개월 이내 나머지 잔금을 내고요. 이로부터 60일 이내 소유권 이전 등기가 이뤄집니다. 이를 감안하면 계약 후 4~5개월 이내 등기가 이뤄지는 셈이죠.
그 이후까지 등기가 완료되지 않았다면 '비정상 거래'로 의심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잔금일 이후 4개월 이상 등기를 하지 않은 거래를 미등기 거래로 보고 '집값 띄우기' 등에 악용됐는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부동산거래신고법 제3조제1항에 따르면 거래 계약의 체결일부터 30일 이내에 부동산 소재지 관할 신고관청 등에 신고해야 하는데요. 일단 계약을 체결하면 매맷값을 다 지불하지 않아도 거래가 됐다고 보기 때문에 '실거래가'로 잡힙니다.
이를 악용해서 높은 가격으로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 신고를 한 뒤 소유권 이전 등기를 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는 매도자와 매수자 간 돈을 주고받는 일 없이 수개월이 지나 돌연 거래 해제 신고를 하는 거죠.
실제로 '신고가'를 찍은 아파트 거래를 들여다보면 수개월이 지난 뒤 거래를 취소한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A아파트 전용면적 84㎡는 1월에 31억원에 거래돼 최고가를 기록했는데요. 이후 8월 계약이 해제됐고요.
강남구 개포동 B아파트 전용 59㎡도 지난 3월 같은 평형 최고가인 19억4000만원에 거래됐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등기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 개인 사정에 따른 결과일 수 있지만 허위 거래 의심 여지가 있는데요.
만약 의도적으로 가격을 띄워 거래를 하면 해당 아파트의 시장 가치는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그 가격이 '시세'가 되거든요. 그러나 가격을 올린 주택이 정작 등기를 치지 않으면서 '가격 선동'만 하는 셈이죠.
미등기는 다 수상한 거래?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집값 띄우기를 통한 부동산 시세 조작을 차단하기 위해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 때 등기 여부(2023년 1월1일 계약부터)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젠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들어가면 계약일뿐만 아니라 등기 일자, 계약 해제 여부, 계약 해제 사유 발생일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장기간 등기가 이뤄지지 않은 거래는 상시 조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19일부터는 거짓으로 거래신고 또는 거래취소신고를 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있고요. 그 결과 미등기 거래 건수가 줄고 있긴 합니다.
국토부는 지난 2일 '2024년 수도권 주택 이상 거래에 대한 관계기관 합동 1차 현장점검 및 기획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지난해 하반기 신고된 전국 아파트 거래 18만7000여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미등기 거래는 총 518건(전체 거래의 0.28%)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하반기 1183건(전체 1.26%)에 비하면 절반 아래로 감소한 수준이죠.
국토부는 잔금일 기한이 과도한 거래에 한해 별도의 실거래가 공개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요. 시장에선 정부의 '미등기 거래' 정조준이 다소 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미등기 거래가 모두 '유령 거래'는 아니라는 거죠.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는 워낙 가격이 비싸 잔금 날짜를 길게 잡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매수자가 살던 집을 팔고 잔금을 마련하는 경우라면 잔금일을 더 늦출 수도 있겠죠. 부동산 하락기 등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는 시기라면 더 그럴 테고요.
실제로 정부가 2021년 실거래가 띄우기를 정조준하며 총 71만건의 아파트 등기부자료를 전수조사한 바 있는데요. 이 중 허위 거래 등이 의심되는 미등기 거래는 2420건으로 전체 거래의 0.34%로 나타났습니다. 단순히 등기 기간이 길다고 허위 거래라고 볼 순 없다는 거죠.
전문가들은 '미등기 거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시세를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거래 사정에 따라 등기 기간이 길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미등기 거래를 무조건 이상 거래라고 볼 순 없다"고 했는데요.
그러면서도 "다만 시장 가격을 왜곡시킬 만한 가격(신고가 등)이라면 더 꼼꼼히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며 "등기 여부를 눈여겨보고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문의해 추격 매수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