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살리기의 일환으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풀어내기 위한 방안을 고심중이다. 지난 16일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첫 경기부양책인 만큼 당사자인 기업은 물론 시장에서도 유보금에 어떻게 세금을 매길 지 관심이 뜨겁다.
최 부총리는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으로 돌리면 세제혜택과 같은 '당근'을 제시하고, 과도한 유보금을 보유한 기업에는 법인세를 추가로 물게 하는 '채찍'을 구상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르면 이달 말부터 순차적으로 발표할 하반기 경제운용방향과 세법개정안에서 사내유보금 관련 정책을 담을 예정이다. 유보금에 어떤 과세 방식이 적용될지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기재부는 지난 24일 경제정책 운용방향을 내놓은 데 이어 26일에는 최 부총리가 재계를 상대로 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이전시키는 방식을 설명했다. 파란 글씨는 28일 현재 정부가 발표한 사내유보금 과세(기업환류세제)의 확정 사항이다.
관련기사☞ 사내유보금 과세 '경우의 수'…당근과 채찍 사이(2014-07-18 16:42)
◇ 배당하면 세금 깎기
기업의 배당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로는 배당소득세를 깎아주는 방법이 첫선에 꼽힌다. 현재 기업이 개인주주에게 배당하면 15.4%(지방소득세 포함)를 원천징수한 후, 세금을 뺀 잔액을 주주에게 지급하고 있다.
배당소득세를 일정 기간동안 낮추면 그만큼 주주가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소비 진작 효과도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1000만원을 배당할 경우 주주는 15.4%의 세금을 뗀 후 846만원을 가져가지만, 배당소득세를 5%포인트(지방소득세 포함 5.5%p)만 내려도 901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배당세금 감면으로 생긴 55만원의 소득을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다.
기재부는 기업 대주주가 배당소득을 금융소득과세에 합산하지 않고 분리과세를 적용받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이자와 배당을 합친 금융소득이 2000만원 이상이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돼 최고 38%의 세율로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분리과세를 통해 낮은 세율을 선택할 수 있다.
소액주주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세율도 5~1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세금우대저축 이자·배당소득 분리과세, 하이일드펀드 분리과세 등이 9%의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 월급 올린 기업 '세금↓'
기업 유보금을 가계로 이전시키는 대안으로 임금이나 근로소득을 늘리도록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최 부총리는 지난 16일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부문에서 창출한 소득이 투자나 임금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월급을 인상한 기업에 대해 세액공제와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것으로 지난해부터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임금인상 촉진세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임직원 급여를 올린 만큼 법인세에서 깎아주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은 2013년 기업의 급여총액이 전년보다 5% 이상 증가하거나, 1인당 평균 급여가 전년을 능가할 경우 급여총액 증가분의 10%(중소기업은 20%)를 법인세에서 공제했다. 그러나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급여총액 증가율을 2% 이상으로 낮췄다.
기재부의 경제정책 운용방향에 따르면 '근로소득 증대세제'를 통해 월급을 올려준 기업에게 법인세 감면 혜택을 부여한다. 세금 인센티브는 그해 평균임금 증가율이 지난 3년간 평균보다 높은 기업은 이를 초과하는 임금상승분에 대해 10%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대기업은 세액공제율을 5%로 정하고, 평균임금을 계산할 때 임원과 고액 연봉자의 월급은 제외한다.
◇ 사내유보금 풀면 '끝'
사내유보금에 '페널티' 성격의 세금을 물린다는 정부의 방침은 확정적이다. 다만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보완 대책에 관심이 쏠린다. 최 부총리는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대해 배당과 임금 등으로 가계로 흘러가게 할 경우 전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도록 디자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기업이 어느 정도의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적정 수준'을 따져본 후, 이를 넘어서는 유보금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추가로 과세할 방침이다. 배당이나 임금으로 흘러가는 유보금을 과세표준에서 제외하는 등 세금의 '예외 조항'이 작동될 수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배당이나 임금 인상이 이뤄지면 사내유보금 추가 과세를 면제하는 대안도 나온다. 기업이 사내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내기 싫다면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임직원 월급을 올려서 과세를 피할 수 있다. 중견·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사내유보금 과세 부담을 덜기 위해 대기업과 다른 차등 세율을 적용하는 방법도 검토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기재부는 최근 사내유보금 과세를 진화시킨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검토하고 있다. 적정 사내유보금(순이익)을 모두 투자와 배당으로 사용한다면 원칙적으로 법인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중소기업은 추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며, 자기자본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만 해당된다. 과거 유보금과는 관계없이 2015년에 발생하는 소득분부터 과세 대상이 될 전망이다.
◇ 적정 사내유보금은 얼마?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얼마나 쌓아야 적당하고, 세금도 피할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이 낸 법인세법 개정안에는 기업의 '적정유보소득'에 대한 기준이 담겨 있다.
법안에 따르면 각 사업연도 소득금액에서 세금과 이익준비금 등을 공제한 후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적정유보소득'으로 본다. 만약 지난해 1500억원의 순이익을 낸 기업이 각종 비용처리 후 세금까지 내고 1000억원이 남았다면, 올해 적정유보소득은 500억원이 되는 셈이다.
이 기업은 올해 500억원까지 사내유보금을 쌓아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사내유보금이 600억원이라면 적정유보소득을 초과한 100억원 가운데 15억원(15% 추가세율 적용)의 법인세를 더 내야 한다.
기재부는 기업소득 환류세제에 따른 추가 세부담을 최대 3%포인트 수준으로 잡았다. 2009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렸지만, 기업들이 사내유보금만 쌓아놨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적정 유보소득은 당기순이익의 60~70%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다. 연간 100억원을 번 기업이 60억~70억원을 투자나 배당, 임금 상승에 사용하면 세금을 내지 않지만, 유보금이 많을 경우 최고세율 25% 수준의 법인세를 납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