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사내유보금 과세(가칭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당장 시행되더라도 대기업들의 실제 세부담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과세 마지노선인 당기순이익의 60~70%를 현 수준의 투자와 배당, 임금 증가로 충분히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LG,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기업소득환류세제 과세대상에서 빠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순이익에 비해 투자와 배당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금액이 많아 추가 세금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31일 비즈니스워치가 한국기업평가에 의뢰한 '2013년 주요 대기업 재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와 배당, 임금증가액이 순이익의 60%를 넘지 못하는 기업은 현대모비스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포스코, SK텔레콤, LG화학, LG전자, 현대중공업 등은 이미 순이익의 60% 이상을 투자와 배당으로 사용했다.
정부가 순이익의 70%를 과세 기준으로 삼을 경우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기업소득환류세제의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만약 일정기간 동안 순이익의 70%를 투자와 배당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수백억원의 세금을 물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 실제 세부담 '시뮬레이션'
지난 16일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밝히자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기업소득을 가계로 흘러가게 만들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지만, 막상 세금을 더 내야하는 기업들은 정부의 방침에 난색을 표하며 재계 연구소 등을 통해 반대논리를 펼쳐왔다.
한편으로 대기업들은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시행될 경우 실제 세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주목하고 있다. 현재까지 기재부가 공개한 도입안에 따르면 자기자본이 일정규모 이상인 기업의 투자액과 임금증가액, 배당액의 합계가 당기순이익의 60~70% 선을 넘지 못하면 '미활용액'으로 분류한다. 기업이 미활용액을 일정 기간 내에 사용하지 않으면 10~15% 수준의 세율을 매길 예정이다.
기업의 임금증가액과 배당지급액은 재무상태표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별도의 계정과목이 없는 투자액을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관건이다. 기재부는 재무상태표의 '유형자산(건물, 토지, 기계장치 등)'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기업의 투자 규모를 100%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신용평가사들은 기업의 투자규모를 판단할 때 현금흐름표의 '자본적지출(Capex)'을 참고로 한다. 기업이 미래의 이윤 창출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뜻하기 때문에 실제 투자 내역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한국기업평가의 기업별 자본적지출 데이터와 배당지급액, 임금증가액을 통해 기업소득환류세제의 과세 대상과 실제 세액이 얼마인지 산출했다.
◇ 삼성전자 '여유', 현대차 '긴장'
주요 대기업들의 지난해 재무상황을 토대로 기업소득환류세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과세대상에 포함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별도 기준 투자액(자본적지출)과 배당금, 인건비증가의 합계는 13조1000억원이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17조9000억원의 60%(10조7000억원)를 뛰어 넘고, 순이익의 70%(12조5000억원)보다도 더 많았다.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SK하이닉스와 포스코는 지난해 투자와 배당, 임금증가액이 각각 2조6000억원, 3조7000억원으로 순이익의 70% 수준을 넘어섰고, SK텔레콤과 LG화학, 현대중공업도 배당 규모에서만 순이익의 70%를 돌파했다. 지난해 1890억원의 순손실을 낸 LG전자는 과세 대상에서 일찌감치 빠졌다.
반면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과세 대상에 포함됐다. 현대모비스는 정부가 순이익의 60%를 기준으로 과세 방침을 정하면 미활용액이 7350억원에 달하고, 일정기간 내 사용하지 않으면 10% 세율의 추가 법인세를 부담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순이익 기준이 70%로 결정되면 각각 4291억원, 716억원의 미활용액이 남게 되고, 10% 수준의 세금을 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현대차 계열사의 세부담이 커진 이유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 배당 규모가 적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 부동산 투자가 '변수'
기업소득환류세제 관련 법안이 연내 통과하더라도 내년부터 시행되고, 미활용액에 대한 유예기간도 주기 때문에 기업들은 최소 2~3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과세 대상에 포함되라도 향후 투자와 배당 위주로 재무전략을 바꾸면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가 다음주 발표할 세법개정안에서 기업들의 투자 규모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도 관심이다. 기재부는 기업들의 부동산 투자분이나 해외투자금을 사내유보금 투자로 인정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투자의 예외 조항이 많아질수록 기업들이 세금을 피할 여지는 좁아지고, 실제 세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경영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 분석에 따르면 기업들의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취득액을 감안한 총투자액에서 절반을 해외투자한다고 가정할 경우,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은 최대 2000억원, 현대차그룹은 4000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 다만 기재부는 기업의 재무상태표의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취득을 모두 투자로 보고 과세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 기업별 과세대상 포함 여부와 세부담은 정부가 정하는 기업의 투자 항목이나 순이익의 적용비율, 세율 등 구체적 수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동산이나 해외에 투자하는 금액은 기업소득의 가계 이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경제 활력에 일조하는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