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근로자 조세저항을 잠재울 연말정산 소득세법 개정안이 확정됐다. 법안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13일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과 공포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환급 작업이 시작됐다.
연말정산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 네 차례의 비공개 조세소위원회가 열렸는데, 여야 의원과 기획재정부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회의록을 통해 연말정산을 둘러싼 신경전과 날선 발언, 알려지지 않은 통계 등 뒷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살펴봤다.
#1. 반성하고 시작합시다
지난 달 22일 1차 조세소위원회는 여야가 법안 상정에 대한 신경전을 벌이다가 무산됐다. 제대로 된 심사는 5일 만에 열린 2차 조세소위에서 이뤄졌다. 시작부터 가열찬 반성이 쏟아졌다.
"참 안타까운 조세소위 심사입니다. 역사의 큰 오점이 될 세법 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누더기 세법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기재부 세제실 많은 공무원이 대단히 큰 자괴감을 느낄 겁니다. 여론에 떠밀려서 세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소급 적용해주는 일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2013년 세법개정 당시 공무원들의 내공이 좀 부족했다. 국회도 사실 솔직히 얘기하면 제대로 챙기지 못했거든요.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새누리당 김광림)
#2. 오만한 정부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국회에 자료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서 법안만 통과시켜달라는 이유였다. 세법개정의 정부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질책까지 나왔다.
"정부가 지금 국회를 계속 토끼몰이 하듯이 했거든요. 정부가 굉장히 오만하게 했어요. 잘못이 있으니까 보완책 내놓은 것 아닙니까. 지금 유사 이래 이런 적 있어요?"(새정치민주연합 최재성)
"지금 정부가 너무 안이한 자세를 갖고 있어요. 1620만명의 통계처리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2~3일 내에 그것을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국회의원들 그냥 기재부에서 시키는대로 해야되는 겁니까?(홍종학)
"지금 소득공제 때보다 더 엉망된 거예요. 진짜 누구 한 명 옷 벗든가, 뭔가 책임을 묻지 않고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있는 사람들이 벗어야지요."(정의당 박원석)
▲ 2015년 4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소속 의원들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환수 국세청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3. 면세자가 절반
연말정산 보완책이 면세자 비율을 늘린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2012년까지 31%에 불과했던 면세자 비율이 48%까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근로자 가운데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절반에 달한다는 충격적 통계는 조세소위를 뜨겁게 달궜다.
"보완책의 모든 안이 면세자 비율을 다 늘리는 것입니다. 면세자 비율이 늘어나는 점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회에 제대로 보고를 안 했어요. 국회도 충분히 경계하거나 우려하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박원석)
"상위 1%가 거의 다 세금 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설득해야지. 무슨 도둑놈처럼 몰아붙이니까 안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독신자를 고려하다보니까 면세자 비율이 팍 올라간 거예요. 그렇다고 건드리면 분명 독신자는 불만이 있을 겁니다."(새누리당 나성린)
"면세자 비율이 31%에서 46%로, 또 추가적으로 2% 포인트 올라가서 48%. 이건 진짜 바람직하지 않아요. 앞으로 면세자 비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새누리당 류성걸)
#4. 보험사만 좋아할 일
자녀와 관련한 공제 혜택을 늘리는 방안은 이견이 없었지만, 연금저축 공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에 한해 연금저축 공제율을 12%에서 15%로 올리는 방안인데,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연금저축 가입자는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중 7%인데, 그 7%를 위한 인센티브를 둔다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연금저축이라는 특정 형태의 금융상품에 대한 인센티브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보험회사들이나 좋아할 거지 이게."(박원석)
"총급여 5500만원 초과하는 구간에서는 연금저축 가입자 54%인데, 이것은 안 맞아요. 세액공제로 연간 12만원 더 준다고 해서 연금저축 안 들던 사람들이 더 들까. 가처분소득도 없는데 400만원을?"(김관영)
"노후소득 보장 차원에서도 필요합니다. 상대적으로 총급여 5500만원 아래 분들이 소득이 낮음에도 노후소득 보장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는 차원에서 한 겁니다."(기획재정부 주형환 1차관)
#5. "굉장히 나쁜 전례"
지난 4일 열린 마지막 조세소위에서도 야당의원들의 반대가 계속됐다.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소위를 통과했지만,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국민과 약속한 연말정산 환급은 일단 처리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문제점을 고쳐보기로 했다.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 세금을 안 내는 것도 정상적 세제가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추진해온 면세자 축소를 일거에 되돌리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우려합니다. 이미 부과해서 납부한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소급 적용도 굉장히 나쁜 전례를 만드는 것입니다.(박원석)
"지금 우리의 굉장한 오점을 남기는 순간이 될 수도 있는데요. 여야 합의로 처리해서 엉터리, 엉망인 것을 갖고 국회가 입법권을 압박받으면서 처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최재성)
"잠깐만요. 저희 야당에서는 연말정산 법안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퇴장으로 저희 반대 의견을 표현하겠습니다."(홍종학)
"나라의 근간이 되는 세법이 비세법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에 대해서 매우 곤혹스럽고 힘듭니다. 다시는 저와 같은 비운의 조세소위원장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회의를 마칩니다.(강석훈 조세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