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총수 일가가 경영권 분쟁과 함께 거액의 세금추징에 노출됐다.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그룹 승계작업도 반강제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승계는 곧 상속이고 현재의 부 이전으로 세금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분쟁이 현재 진행형이지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사실상 명예회장으로 물러났고, 신동빈(롯데그룹 회장), 신동주(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두 아들 중 누가 이기든 계열사 지분증여 및 매각 등에 따른 세금부담도 불가피해졌다.
특히 롯데그룹은 비상장계열사 비중이 높아 증여세나 주식양도차익에 따른 소득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비상장사 주식의 증여는 평가방법에 따라 세금부담이 급증한다. 국세청은 최대한 많은 금액을 과세하기 위한 평가방법을 적용하는데, 이미 상당부분 법리 검토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 그룹 계열사 90%가 비상장사..'증여세 폭탄' 예고
롯데그룹은 국내 5대 재벌그룹(자산기준)이면서도 기업공개에 인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대기업 집단 현황'자료를 보면 롯데그룹 계열사는 현재 80개로 SK그룹(82개) 다음으로 많은 계열사를 보유중이다. 그러나 이 중 상장사는 8개에 불과해 계열사의 상장비중은 10% 밖에 되지 않는다. 총수가 있는 40대 재벌그룹 계열사 평균 상장비중이 15%로 낮긴 하지만, 그보다도 비중이 5%포인트 더 낮고 수도 많은 것이다.
비상장사는 외부감사를 받거나 감사보고서 공시 등 정보공개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감독당국의 감시도 덜 받는다. 대기업들은 비상장 계열사에게 일감을 몰아주기도 하고, 고액배당을 통해 편법상속의 통로로도 활용한다. 총수 일가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장점이 상황에 따라선 치명적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비상장계열사의 주식을 증여할 경우 상장주식과는 달리 평가방법이 까다롭다. 상장주식은 증여한 날을 기점으로 전후 2개월의 주식시장 종가평균을 증여가액으로 본다. 시가라는 눈에 보이는 가격에 맞춰서 세금을 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장사의 주식은 그 가치를 일종의 추산을 통해 평가한다.
비상장주식 증여는 3개월 이내에 지분 1%이상을 매매한 사례가 있다면 그것을 증여가액으로 평가하지만, 그마저도 특수관계자간의 거래는 인정하지 않는다. 매매 사례가 없으면 '보충적 평가방법'이라는 추산을 하는데, 과거 3년간 주식의 순손익가치의 60%, 증여일 현재 순자산가치의 40%를 반영해 계산한다.
주가라는 것이 '미래의 기업가치'를 반영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인데, 비상장주식에 대한 세금은 과거의 가치를 중심으로 부과되는 것이다. 과거에 주가가 높았지만 지금은 반토막이 난 주식이라면 터무니 없이 많은 증여세를 낼 수도 있다. 특수관계자간 거래가 대부분인 비상장사에서는 자연스럽게 매매사례가액이 아닌 보충적 방법으로 증여가액을 평가하고, 세금부담도 상대적으로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세금을 키우는 비상장주식의 경영권 프리미엄
총수일가의 비상장주식의 증여가 거액의 세금부담을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경영권 프리미엄에 있다. 세법에서는 경영권이 있는 주식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산출할 때 증여가액을 대폭 '할증'해서 평가하도록 돼 있다.
특수관계자 지분이 50% 이상인 경우에는 30%를 할증하고, 50% 이하인 경우에는 20%를 할증한다. 1주당 1000원짜리 주식이라도 경영권이 걸려 있는 주식은 1300원이나 1200원으로 간주해서 증여세를 물린다는 얘기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는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는 상장과 비상장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지만 실제 높은 할증의 적용은 비상장사에 집중된다. 상장사의 경우 특수관계자 지분이 50%를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비상장사는 대부분 특수관계자의 지분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72개의 비상장 계열사 대부분이 특수관계자들의 지분으로 채워져 있다. 순환출자라는 고리를 통해 주요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 지분을 보유해 지배하는 방식이다.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무려 416개로 국내 대기업그룹 중 가장 복잡하다. 416개 순환출자 고리는 국내 최대그룹인 삼성그룹의 10개와 비교하더라도 기형적이다. 지분이동이 있을 때에는 무조건 할증해서 세금이 부과된다.
▲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신격호의 명의신탁주식도 세금덩어리
신격호 총괄회장이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명의신탁 주식도 증여시에는 세금덩어리로 변한다. 명의신탁 주식은 이름을 빌려준 사람을 수증자로 보고 세금을 물리는데,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세금을 못 내겠다고 하면 실소유주가 세금을 내게 돼 있다. 연대납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또 실소유주가 세금을 낼 때 명의를 실소유주 명의로 돌려놔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실제로 증여한 것으로 보고 증여세를 한번 더 물리게 돼 있다. 단기간에 증여세를 두 번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신격호 회장이 명의신탁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두 아들 중 하나에게 몰아주려 할 경우 명의신탁 사실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실소유주의 입장의 증여세를 한 번 내고, 그 주식을 물려받을 아들이 다시 증여세를 내야 한다.
명의신탁이라 하더라도 혈족인 가족들이나 절친한 친구사이에 이뤄졌다면 명의 환원이라는 절차가 필요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가족들간에 편을 가르고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것이 내 주식이다"라는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다.
법무법인에서 상속 증여세를 전문분야로 담당하는 한 세무사는 "롯데의 경우 삼성그룹처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된 것이 아니라 승계과정이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조세문제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추징액도 클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