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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이체는 현금지급이 아니다?

  • 2015.11.30(월) 09:07

계좌이체 현금영수증 부정한 법원판례 나와 '혼돈'
국세청 “대법 판결까지 계좌이체도 현금영수증 대상”

현금(現金)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돈을 말하는데요. 일반적으로 당장 지갑에 있는 지폐나 주화를 뜻하고, 신용카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도 이해됩니다. 밥값을 지불할 때 ‘현금이 없으면 신용카드로 결제한다’는 식이죠.

 

지불방식으로 보면 계좌이체도 현금으로 통용되고 있는데요. 돈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카드처럼 중간에 다른 금융기관을 끼고 있어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당장 자신의 계좌에 돈이 입금되기 때문에 이 역시 현금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데 계좌이체에 대한 개념정리에 혼선이 생겼습니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서 계좌이체는 현금지급으로 볼 수 없다고 정의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계좌이체는 현금결제일까요. 아닐까요?

 

# 계좌이체 받았지만 현금영수증 발급하지 않은 변호사

 

사건은 고액의 수임료를 계좌이체로 받은 변호사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M변호사는 수임료로 1억1000만원을 계좌이체로 받았는데요. 의뢰인의 요청이 없어서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현행 세법은 현금영수증 발행사업자에게 ‘고객이 원하는 경우’ 현금영수증을 발행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변호사와 회계사, 세무사, 병원(의사), 골프장, 단란주점, 장례식장, 부동산중개업 등 현금사용이 빈번한 업종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으로 지정해 ‘고객이 원하지 않아도’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행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종은 거래금액이 10만원 이상이면 무조건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야 하구요. 발행하지 않으면 거래대금의 50%를 과태료로 부담해야 합니다. 엄청난 과태료 부담 때문에 이들 업종에서는 무시무시한 규정으로도 꼽힙니다.

 

국세청은 M변호사가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태료 5500만원을 부과했는데요. M변호사는 계좌이체는 현금이 아니지 않느냐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1심 법원은 계좌이체도 현금영수증 발급대상에 해당된다며 M변호사의 청구를 기각했는데요. 지난달 2심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계좌이체가 현금영수증 발급대상이 아니라며 M변호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심 재판부는 “소득세법에 현금의 정의 규정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현금은) 화폐나 주화로 봐야 한다”며 “은행계좌로 자금을 지체받는 거래는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통한 거래에서와 동일하게 예금채권을 취득한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 국세청의 대혼란이 오는 걸까


2심 판결은 상당한 논란이 예상됩니다. 현금영수증 제도는 단지 M변호사 한 명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니까요. 모든 근로자들이 연말정산을 하기 위해 현금영수증을 챙기고 있구요. 모든 사업자들은 고객이 원할 경우, 혹은 원하지 않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일선에서 현금영수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세청은 상당히 놀란 모습입니다.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급히 보도자료를 내고 “세법에서 규정한 현금영수증 발급대상 거래는 ‘현금뿐만 아니라 예금 등 현금성 자산’을 포함하는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국세청은 특히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은 만큼 적어도 확정판결 이전까지는 사업자들이 정상적으로 현금영수증 발행을 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계좌이체도 현금거래이기 때문에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사업자가 발행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도 놨습니다. 미발급사업자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는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제도도 현행대로 운영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괜히 판결 하나를 믿고 딴짓(?)을 하다 과태료 폭탄을 맞지 말라는 경고죠.

 

 

# 현금의 개념 정리 필요한 ‘전자결제시대’

 

법원의 판단근거가 되는 것은 법률인데요. 문제는 2심 법원의 언급처럼 실제로 현행 세법에는 현금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 곳이 없다는 겁니다. 세법 외에 다른 법률에서도 현금을 정의내린 곳은 찾기 어렵습니다. 법원이 그 정도 뒤져보지 않고 판결을 내렸을 리도 없을 거구요.

 

현금영수증 관련 과세특례를 적고 있는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현금영수증이란 현금영수증 가맹점이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고 그 대금을 ‘현금’으로 받는 경우…”로 그냥 ‘현금’으로 적어 놓고 있구요. 현금영수증 가맹점 규정을 적은 소득세법과 그 시행령도 마찬가집니다.

 

구체적으로 적은 곳이 있긴 한데요. 국세청의 행정규칙인 ‘현금영수증 사업자가 지켜야 할 사항 고시’에는 “구매자가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 무통장입금 등을 이용해 가맹점의 은행계좌로 구매대금을 입금하는 경우”에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계좌이체의 다양한 방법까지 적고 있는 거죠. 문제는 이것이 법률이 아니라 하위의 행정규칙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상위 법령에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이죠.

 

국세청의 말처럼 아직 대법원의 판결까지는 기다려 봐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대법원도 M변호사의 손을 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현금영수증 제도 자체의 존립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업자들은 현금으로 대금을 받을 땐 계좌이체로 받으려 할 공산이 큽니다. 고객이 깜박하거나 원치 않으면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아도 되니까요. 변호사들이 억대의 수임료를 만원권이나 5만원권의 다발로 받을까요? 현재도 그런 변호사들은 적을 겁니다. 물론 기록에 남기지 않아야 할 돈은 뭉칫돈으로도 받았겠죠.

 

계좌이체를 현금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비춰봐서도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금융거래는 모바일이 보편화 되면서 더욱 간편하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애플페이, 삼성페이, LG페이까지 등장했죠. 국내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규모는 올해 2분기에만 6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카카오와 KT의 이름으로 인터넷은행까지 곧 출범하는 상황입니다.

 

은행 잔고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계좌이체는 그에 비하면 아주 오래된 구식의 결제방식인데요. 그런 것조차 정의내리지 못하는 세법은 뒤쳐져도 한참 뒤쳐져 있는 셈입니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판결과 별개로 정부도 빨리 법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칫 국민들이 무겁게 돈다발을 들고 다녀야만 현금영수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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