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修球初心)]은 김용준 전문위원이 풀어가는 골프 레슨이다. 칼럼명은 '여우가 죽을 때 고향 쪽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인 고사성어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살짝 비틀어 정했다. '머리 수(首)'자 자리에 '닦을 수(修)'자를 넣고 '언덕 구(丘)'자는 '공 구(球)'자로 바꿨다. 센스 있는 독자라면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그 뜻을 알아챘을 것이다. 처음 배울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골프를 수련하자는 뜻이라는 것을. 김 위원은 경제신문 기자 출신이다. 그는 순수 독학으로 마흔 네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가 됐다. 김 위원이 들려주는 골프 레슨 이야기가 독자 골프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해도 해도 안 될 때’ 독자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간절히 바라는 목표에 미친 듯 덤벼들어도 이룰 수 없을 때 말이다. 그것도 무려 7년 간을.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꿈을 쫓는 처절함이란. 어지간히 질기다고 자부하는 나라도 포기하고 말 것 같다. 그런데 그 지독한 좌절감과 싸워가면 목표를 이뤄낸 골퍼가 있다. 누구냐고? 바로 최천호 프로(30. 진영에스텍)다.
내 칼럼 애독자라면 내 별명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그렇다. ‘뱁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는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에 나오는 그 뱁새. 뱁새인지 처음 알았다고? 이제 알았으니 애독자 축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뱁새가 따라잡겠다고 억지를 부린 그 ‘황새’가 바로 최천호 프로다. 그가 ‘기어코’ 코리안 투어에 돌아왔다. 장장 7년만에.
지난 11월15일. 나는 내 평생 가장 오랫동안 코리안 투어 ‘실시간 스코어’를 지켜봤다. 그날 홈페이지 리더 보드 보기에서 ‘다시 고침’ 버튼을 수 백 번도 더 눌렀을 것이다. 바로 바로 올라오는 최 프로 홀 별 점수를 보려고 말이다.
최천호 프로는 이날 끝난 ‘2020 코리안 투어 퀄러파잉 스쿨’을 14위로 당당하게 통과했다. 내년 시즌 코리안 투어 풀 시드를 받은 것이다. 퀄러파잉 스쿨은 줄여서 ‘큐스쿨’이라고 한다. ‘시드전’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가 코리안 투어를 뛰는 것이 내년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스물 세 살이던 지난 2013년에도 코리안 투어 멤버였다. 그 해 첫 발을 디딘 그는 첫 세 개 대회를 컷 통과하며 기세 좋게 출발했다. 그런데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연습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다. 그 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투어에서 밀려났다. 이듬해 투어 복귀를 노리며 훈련하던 중에 또 낙상 사고를 당해 부상이 겹쳤고. 눈물 겨운 재활로 부상은 이겨냈지만 다시 코리안 투어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번번히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그렇게 그는 6년을 철저히 무명으로 지냈다.
“제 샷 하나 믿고 이름 없는 저를 수 년간 후원해 준 진영에스텍 박성진 대표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올해 꼭 생애 첫 승을 거둬서 그 은혜에 보답하겠다.” 지난 4일 점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최천호 프로가 소감을 밝혔다.
“몇 번이나 큐스쿨에 낙방하고 선수생활을 포기하려는 제게 ‘네가 꿈을 포기하면 내가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해서 붙들어 세운 아버지께도 감사드린다.” 말 수 적은 최 프로가 내뱉은 이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은 KPGA 최병복 프로다. 제자 육성에 전념하는 그가 프로로 만들어낸 골퍼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아들 최천호 프로를 포함해서. 최병복 프로는 사회 생활을 하다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골프에 입문했다. 그러다가 뱁새처럼 아주 ‘골프에 미쳐서’ 삼십 대 중반에 프로 선발전을 통과했다. 최병복 프로와 비슷한 길을 걸은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늦깎이가 겪는 설움을. 그리고 아쉬움을.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주기 바라는 그 마음도.
코리안 투어 큐스쿨은 '스테이지 3'까지 총 8일 경기로 치른다. 최천호 프로는 '스테이지 1'과 '2'를 내 예상대로 가볍게 통과했다. 그리고 나흘짜리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사흘째 공동 12위로 마쳤다. 마지막 하루만 무난하게 치면 내년 풀 시드를 얻을 판이었다. 그 마지막 라운드가 지난 11월15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고침’을 수 백 번 눌렀던 바로 그날 말이다.
최 프로는 경기를 시작하고 첫 두 홀을 무사히 ‘파’로 마쳤다. ‘출발 좋은데!’하고 내가 마음을 놓으려는 찰라. 그의 3번 홀 점수가 ‘8’이라고 올라왔다. 나는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파4홀인데 더블 파라니? 오비를 두 방이나 냈다는 얘기야?
최 프로에게 들은 그날 사정은 이랬다.
3번홀은 왼쪽에 아웃오브바운드(OB)가 있다. 그 홀에서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부는지 안전하게 티샷 한다는 것이 그만 오른쪽 카트 도로와 러프 사이 푹 파인 틈에 들어갔다. 도저히 그대로 칠 수가 없어 무벌타 구제를 받고 깊은 러프 속에 드롭한 다음 할 수 없이 페어웨이로 꺼냈다(두 타째). 다음 샷은 맞바람이 너무 세서 110미터 남짓한 거리를 7번 아이언으로 쳤다(세 타째). 그런데 그만 바람에 볼이 날리더니 그린 왼쪽으로 OB가 나고 말았다. 다시 그 자리에 드롭하고 친 볼은 핀에 잘 붙었다(다섯 타째). 집어넣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투 퍼팅으로 마무리 하려 했는데 첫 퍼팅이 한 없이 굴러 내려갔다(여섯타째). 결국 그 자리에서 두 번 더 쳐서 마무리했다(여덟 타째). 그렇게 더블파가 된 것이다.
“전날까지 성적이 워낙 좋아서 마지막 날 3~4 오버파를 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람은 너무 세고 아직 남은 홀이 많아서 앞 일을 짐작하기 어려운데 3번 홀에서 더블 파를 하고 나니 가슴이 조여왔다.” 최 프로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 다음 홀은 세 뼘쯤 되는 버디 퍼팅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그렇게 몇 홀은 기회를 놓치고 몇 홀은 겨우 막았다.
“후반 첫 홀(10번홀)에서 첫 버디를 떨어뜨리고서야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리고 16번홀에서 다시 버디 한 개를 추가하면서는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승부 볼 기회가 오면 공격적으로 플레이 해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그는 내년 투어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어떤 뜻인지 절감하지 못하고 갸웃하는 '하수' 뱁새에게 그는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부처에서는 밀어부치는 게임 플랜을 세워야 우승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을 보탰다. 내가 어디 코리안 투어를 뛰어봤어야 그런 깊은 속을 알지!
나는 지난해 여름 그와 함께 대회를 준비하러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물론 나 말고 최 프로가 나가려던 대회 준비다. 흠. 그 때 짬을 내서 함덕해수욕장 내 풍경이 아름다운 카페에서 휴식을 가졌다. “어려서부터 제주도에 시합하러 많이 왔는데 한 번도 이렇게 바닷가에 와서 놀아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 나는 코끝이 찡했다. 연습하고 시합하고 쉬고 다시 연습하고 시합하고 쉬고. 그 사이 제자들 가르치고. 그가 흘린 땀이 그리고 눈물(이건 순전히 뱁새 짐작이다)이 내년 투어에서 열매를 맺기 바란다.
참. 그는 지금 여자 친구가 없다. 그는 ‘여자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치켜 본 내 눈에 그는 따뜻한 남자다.
김용준 골프전문위원(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 겸 KPGA 경기위원 &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