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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신세계그룹의 세입자 '트라우마'

  • 2014.10.22(수) 14:47

이마트 여의도점 200억 인수..세입자서 집주인으로
인천점 사건 이후 '임차리스크 줄여라' 전략 급선회
`계약만료 임박` 코스트코엔 집주인 권리 내세울수도

 

집없는 설움에 눈물 흘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전세를 올려주든지 방을 빼든지 하라며 일방통보하는 집주인 태도에 질려 빚을 내 집을 장만한 세입자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개인만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아닙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진데요. 특히 입지가 생명인 유통기업들은 어느날 갑자기 장사하던 곳을 내줘야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이 좀 들더라도 점포를 사들이거나 임차기간을 늘리려 애를 씁니다.

◇ 남들 팔때 이마트는 샀다

올해 6월 이마트는 서울 여의도 자이아파트 지하에 있는 여의도점을 2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2008년 문을 연 여의도점은 이마트가 GS건설에 약 120억원을 주고 세들어 살고 있던 곳입니다. 이마트 관계자는 "GS건설이 먼저 매각의사를 표시했고, 가격이 적정하다고 판단해 매입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등기부등본을 보니 이 점포의 계약기간은 최소 10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점 5년째인 지난해는 전세금을 6억원 올려줬구요. 남은 기간 세입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데 점포를 사들였습니다. 경쟁사인 롯데와 홈플러스가 자신이 보유한 점포까지 팔며(세일즈 앤 리스백) 현금확보에 열올리던 모습과는 반대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통업계는 신세계그룹이 겪은 세입자의 설움을 떠올립니다.

◇ 2년전 인천점의 악몽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2012년 9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신세계 인천점이 입주해있는 인천터미널 부지와 건물이 경쟁사인 롯데로 넘어간다는 얘기였습니다. 매출 4위 점포의 문을 닫을 처지에 몰린 신세계는 여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사이 인천터미널의 소유권은 롯데로 넘어갔고, 신세계는 지난해 4월부터 롯데에 매월 12억5000만원의 임차료를 꼬박꼬박 내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신세계는 마지막(?) 기대를 걸고 지난해 6월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소송'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올해 2월 1심 재판부는 롯데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신세계그룹 내부에선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푸념도 나옵니다.

 

▲ 신세계그룹은 2년전 인천점이 위치한 인천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경쟁사인 롯데에 빼앗겼다. 이를 계기로 신세계그룹은 '임차 리스크'에 눈을 떴다. 사진은 신세계 인천점 전경.


◇ 빚내서라도 세입자 신세 벗겠다  

이 일은 신세계그룹에 여러 교훈을 줬습니다. 무엇보다 내 점포가 아니면 영업의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신세계는 인천점을 빼앗긴 이후 매출 1위 점포인 강남점 방어에 들어갑니다. 강남점이 입점해있는 센트럴시티 지분(60%)을 1조원이 넘는 돈에 인수하고 인근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도 사들였습니다. 이 돈을 외부에서 빌리다보니 신세계 부채비율(개별기준)은 2011년 93.7%에서 지난해 136.8%로 상승했습니다. 센트럴시티 지분은 산업은행에 사실상 담보로 잡혔구요. 신세계는 또다른 임차점포인 광주신세계의 임차기간을 20년 연장하는 대신 보증금을 5000억원 넘게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마트 역시 비슷한 임차 리스크에 노출된 곳이 있었는데요. 김포공항의 주인인 한국공항공사는 국제선 취항이 늘면서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며 이마트에 점포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고, 공항점은 오픈한지 11년만인 지난달 문을 닫았습니다.

◇ 여의도점이 끝일까?

이마트 여의도점은 매장면적이 3800㎡(약 1150평)인 소규모 마트입니다. 하지만 이 점포는 정치경제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여의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마트로 상징성이 큽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여의도 입점을 검토했으나 적당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마트로선 빼앗길 수 없는 점포였던 거죠.

지난 6월말 현재 반기보고서에 나와있는 이마트 145개 점포 가운데 토지나 건물을 빌려 영업 중인 점포는 25개입니다. 이들 점포 중 이마트가 집주인이 되려는 곳도 있지 않을까요? 한발 더 나아가 이마트는 자신이 소유한 점포에서 집주인으로서 권리행사를 더 강화할지도 모릅니다.

◇ 방심할 수 없는 코스트코

현재 외국계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는 한국본사가 있던 양평점을 비롯해 대구점, 대전점이 이마트 건물을 빌려 영업하고 있습니다. 코스트코가 1998년 한국법인을 세웠을 때 1100억원을 보증금으로 주고 20년간 사용하기로 한 곳인데요. 이마트는 이 돈을 신규매장을 여는데 썼죠. 코스트코 3개 점포의 계약기간은 오는 2018년 5월에 끝납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마트에 창고형 할인점 사업이 없다면 몰라도 '트레이더스'가 있는 마당에 구태여 코스트코에 점포를 빌려줄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트레이더스는 이마트가 2010년 선보인 창고형 할인점입니다. 현재 9개 점포가 영업중이며 최근 3년간 평균 매출 신장률은 20%에 이른다고 하네요. 세입자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를 겪은 신세계그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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