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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ers' Insight] 신동주는 버림받았나

  • 2015.01.14(수) 11:58

▲ 롯데그룹 신격호(좌)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우) 부회장이 일본 롯데의 주요 임원직에서 해임되면서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갇혀 8일만에 숨을 거둔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에서 발생한 정치적 희생양, 세손(훗날 정조)마저 해하려한 미치광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 등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절대권력을 손에 쥐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아들을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게 한 영조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이면서도 자신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냉혹한 아버지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 아들을 내친 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그랬듯 신동주(61)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것일까.

신격호(93)의 장남 신동주가 최근 일본의 주요 계열사 임원직에서 해임되면서 롯데그룹 후계구도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누구는 롯데제과 지분을 둘러싼 물밑다툼이 장남의 해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누구는 해외사업을 두고 형제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결과로 보기도 한다. 실적부진 때문에 아버지가 데려온 전문경영인에게 신동주가 밀려났다는 설도 등장했다. 아쉽게도 그 무엇 하나 확인된 게 없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은 신동주가 지난달 26일 일본 롯데상사 대표이사직과 ㈜롯데·롯데아이스 이사직에 이어 이달 8일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도 해임됐다는 것뿐이다. 일본 롯데는 보도자료를 내고 외부에 알렸다. 유력한 후계자가 해임된 이유나 배경을 한 줄 써줄만한데 그렇게 하지 않아 소문만 더 무성해졌지만 말이다.

이후 부회장직에서 해임된 신동주가 서울에서 목격되자 아버지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려고 한국을 방문했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동생 신동빈(60)이 한국을 비우자 일본 롯데를 접수하려고 달려간 것처럼 해석하는 곳도 있었다. 팩트는 빈약한데 해설은 넘친다.

◇ 그래도 광해는 왕이 됐다 

"자식에게 꼭 물려주라는 법 있나? 잘하면 물려받는 거고 못하면 안 되는 거지."

자수성가한 이들에게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이냐고 물으면 곧잘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땀흘려 이룬 회사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보느니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들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30대 초중반의 아들딸에게 상무나 이사 직함을 달아줬고, 그 나이 또래는 손에 만지기도 어려운 돈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자식들은 꼬박꼬박 회사 지분을 사모았다. 상속세를 줄이려고 장학재단을 만든 뒤 지분을 넘기며 '세(稅)테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부 못한다(→실적부진) 또는 형과 동생이 싸웠다(→지분경쟁,해외사업 충돌)는 이유로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게 쉬운 일일까. 임진왜란 때 전국을 돌며 민심을 어루만진 광해군은 도성을 버린 선조에게는 아들인 동시에 정적이나 다름없었다. 선조는 수차례 선위 파동을 일으키며 아들을 궁지로 몰았지만 결국엔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부자지간의 인연은 천륜(天倫)이라고 하지 않던가.

신동빈은 13일 밤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는 "(신동주 해임은)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신격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만큼 아직 건재하며, 신동빈 자신은 도덕적으로 흠이 될 게 없다는 것이다. 신동빈으로선 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일본 롯데를 맡을 수 있다는 의사까지 내비쳤으니 말이다. 그때도 "몰랐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 신격호는 이방원을 따랐나

신격호는 태종을 생각했을 수 있다. 태종은 세자였던 맏이(양녕)를 대신해 셋째인 충녕(훗날 세종)을 왕위에 앉혔다. 조선의 번영을 이끈 바로 그 임금이다. 그러고보면 조선 창업을 주도하고 왕실의 기틀을 잡은 이방원(태종)과 맨손으로 재계 5위 그룹을 키워낸 신격호는 어딘가 닮았다. 형제간 다툼이 있었고, 끝까지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았다는 점까지…. 신격호가 태종을 떠올렸다면 단종(세종의 손자)의 사례도 보지 않았을까. 세조(수양대군)가 단종을 제거할 때 종친의 좌장으로 앞장선 이가 양녕이었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신동주 해임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큰 사건이다. 30년 넘게 아버지 밑에서 일한 신동주가 갑자기 내쳐진 것이라면 아버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거나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는 얘기고, 그런 일은 오너 일가나 핵심 가신이 아니라면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삼성그룹의 장자 이맹희 회장은 자신이 후계자에서 밀려난지 20여년이 흐른 뒤에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자서전을 냈다.

 

신동주를 둘러싼 최근의 일도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일본 롯데가 그의 해임 사실을 외부에 공개한 게 '롯데를 물려줄 수 없다'는 신격호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인지, 신동주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고육지책인지는 시간을 갖고 볼 수 밖에 없다. 신동주 해임 배경에는 우리가 짐작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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