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들어가면 계급이나 지위,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해지잖아요? 봉사 현장도 목욕탕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관혁 한국항공우주(KAI) 사회공헌실장은 '목욕탕 마인드'부터 강조했다.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똑같이 땀을 흘리는 것이 KAI 나눔봉사단의 첫번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구관혁 사무국장은 KAI 나눔봉사단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구 실장은 "수평관계가 깨지고 수직관계로 봉사한다면 안하는 것이 낫다"며 "베푼다기 보다 임직원은 물론 수혜자와 함께 생각하고 격려하는 평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구관혁 KAI 사회공헌실장 |
◇"목욕탕 정신 확산"...올 200시간 봉사자 10명 이상, 자비로 해외 집짓기 봉사
KAI가 그동안의 봉사활동을 재정비해 나눔봉사단을 창단한 건 지난해 3월14일. 지난 20년간 봉사활동을 펼쳐온 사내 다솜봉사단이 회사 공식조직으로 확대 개편된 날이다. 나눔봉사단 창단에는 회사 출연기금 14억원 외에도 임직원 314명이 모은 성금 3억5000만원이 들어갔다. 봉사단이 회사 조직으로 승격되면서 단장은 하성용 사장이 직접 맡았지만, 명칭과 로고 등 제반 활동내용은 직원들이 주도했다. 봉사단 이름도 사원 투표에 붙여 아슬아슬한 표차로 사회봉사단을 앞선 나눔봉사단이 선정됐고, 봉사단 깃발과 로고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치열한 디자인 경쟁도 붙었다. 창단은 뜻을 달리하는 이가 없어 창단 자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KAI 나눔봉사단은 구관혁 사회공헌실장이 사무국장을 맡고 재능기부와 봉사지원, 장학사업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운영된다. 창단 이후에도 임직원들의 관심이 이어져 2016년 한해 2591명의 임직원이 모금에 참여했다. 전체 임직원 수의 71%에 이르는 규모다. 봉사 문화 장려를 위해 운영하는 포상·격려에서는 지난해 120시간 이상 봉사를 한 사무국 박경우씨가 1위에 올랐는데, 올해에는 다시간 참여자가 늘어 200시간 돌파자가 10명 넘게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욕탕 정신'에 힘을 얻은 고위직인 분과장들도 100시간 가량씩 봉사에 참여했다.
구관혁 실장은 "국내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업체로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사회에 다시 환원하려는 임직원들의 열망이 높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여름에는 35명의 직원이 휴가를 반납하고 자비로 비행기표를 끊어 필리핀에 학교 짓기를 위해 해외봉사를 떠난다"며 "대단한 결단과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진심으로 봉사하고 주말을 잊고 수고해주시는 많은 봉사자들이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KAI 나눔봉사단의 인도네시아 교육 지원 해외봉사 활동. |
◇"찾아가는 봉사, 자립지원, 지역사회봉사 무게"
구관혁 실장이 강조하는 나눔봉사단의 차별점은 '찾아가는 봉사'다. 임직원 뿐만 아니라 임직원 가족도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이에 따라 지역 아동센터를 위한 사랑의 빵 봉사나,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칼국수 등은 가족단위 봉사로 진행되고 있다. 구 실장은 "이 활동은 건강한 가정만들기라는 일석이조 효과도 크다"며 "직원 가족들이 주말마다 빵 봉사 등에서 만나다 보니 이제는 직원의 배우자와 자녀들끼리도 서로 친해졌다"고 귀띔했다.
봉사의 방향성은 재활과 자활을 지원하는 '희망만들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단순한 물품이나 금전지원 보다 스스로 희망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족과 함께 하는 아열대 채소작목반 구축사업, 발달장애인 사회진출을 돕는 빵 공장 구축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구 실장은 "일방적으로 물품을 정하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의 니즈를 파악해 맞춤형 봉사를 전개하려다 보니 업무는 배로 힘들지만 수혜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것을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 KAI 나눔봉사단의 교육 기부 프로그램인 에비에이션 캠프. |
지난해 봉사단은 불우이웃 성금(5억5000만원) ▲김장·연탄 나르기 등 지역사회 봉사(3억3500만원) ▲장학사업(1억3500만원) ▲목욕차량 기증(1억1000만원) 등에 총 13억72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모두 집행했다.
올해는 전체 예산을 16억23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희망만들기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1대1 자매결연을 맺어 미래 상담과 공부 조언 등을 지원하는 가정 수를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다. 아직 자립하지 못한 아동이 있는 돌봄세대 수를 종전 50가정에서 100가정으로 확대하고, 지원 기간도 1년에서 졸업 때까지로 연장했다. 재가봉사 지원금의 경우 월 20만원(기존 15만원)으로 확대하면서 예산도 3000만원 늘려(9000만→1억2000만원) 잡았다.
KAI 본사가 있는 경상남도 사천시를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공헌 활동도 공을 들이는 분야다. 지역사회는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인식으로 ▲사천강 정화활동 ▲사천시 유형문화재 보수활동 ▲사천시 관내 38개 학교 스마트 교실 구현 및 교·보재 지원 ▲영어학습교재 및 장학금 지원 ▲지자체 문화축제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 실장은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적십자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봉사 전문 기관들도 깜짝 놀란다"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의 든든한 파트너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KAI 나눔봉사단이 지역 어르신을 위한 '장수사진 찍어주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촬영때 사내 의료담당자가 동행해 건강검진도 함께 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 "기초수급대상자 지원 개선됐으면...돈 보다 참여문화 확산되길"
구관혁 실장은 "발달 장애인들에게 둘러 쌓여 수십차례 뽀뽀세례를 받아 어쩔 줄 몰랐던 적이 있다"며 "아이들 때를 벗기고 나면 힘이 빠져 정작 제 자신은 씻지 못하지만 마음의 때가 벗겨져 개운한 마음"이라며 봉사단을 이끄는 소회를 전했다.
하지만 보람이 큰만큼 아쉬운 점도 많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법·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 많이 보인다는 것. 특히 재활을 어렵게 하는 기초수급자 지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기초수급대상자가 일정 소득이 생기면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정도 또는 조금 상회하는 수입이 생기는 직업이 있어도 포기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재활 의지를 돕기위해 일정 수입의 직업을 갖고 안정될 때까지 정부보조금 지원의 유연성을 둔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봉사대상자만큼 귀한 복지사나 봉사자에 대해서도 혜택이나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삭감되는 예산이나 조직이 사회공헌 분야인 것이 통념이지만, 사회공헌이야말로 회사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사회공헌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만 내면 되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실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동참해 땀 흘리는 '참여 문화'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