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안에 계세요? 저 왔어요."
지난 30일 야쿠르트아줌마 허진옥(42)씨가 서울 목2동 한 주택가 반지하 방문을 두드렸다. 철제문이 덜컹거렸지만 기척은 없었다. "야쿠르트예요" 더 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문이 열리고 등이 굽은 백발의 할머니가 나왔다. 80대 중반의 김옥자(가명)씨는 귀가 잘 들리지도 않고, 한쪽 눈도 불편하다. 야쿠르트아줌마가 '세븐' 3병이 담긴 비닐봉지를 건네자 할머니는 "고맙다"며 거실탁자 위에 놓인 시루떡을 급하게 비닐봉지에 담았다. 시루떡을 받은 야쿠르트아줌마는 "방금 전자레인지에 데운 것처럼 따뜻하다"고 했다.
홀몸노인 돌봄활동은 한국야쿠르트가 1994년부터 진행중인 사회봉사활동이다. 음료값은 한국야쿠르트가 내고 전국 1만3000여명의 야쿠르트아줌마가 음료를 배달하면서 홀몸노인을 챙기고 있다. 동네 사정에 밝은 야쿠르트아줌마만 할 수 있는 맞춤형 봉사다. 홀몸노인 돌봄 대상은 현재 3만명까지 늘었다.
이날 홀몸노인에게 야쿠르트를 배달한 허진옥씨는 목동점 소속 야쿠르트아줌마 20명중 막내다. "이것저것 하다 2015년부터 야쿠르트 아줌마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130여곳에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는데 이 중 26곳이 홀몸노인이 사는 집이다. 허진옥씨는 "목동은 잘사는 동네로 알려져있지만 주택가 지하엔 홀몸노인들이 많이 살고있다"고 전했다.
야쿠르트아줌마 허진옥씨가 음료를 전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
허진옥씨가 이번엔 김순희(가명) 할머니가 사는 반지하 방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저예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어릴적 중국으로 건너가 1990년대말에 한국으로 돌아온 김순희 할머니다. "겨울에 (야쿠르트아줌마를) 보면 안쓰러워. 손발이 얼마나 추울까. 난 가만 앉아 받아먹기만 하니까 미안하지." 할머니는 따뜻한 커피까지 내어왔다. 할머니는 "여길 누가 오겠느냐, 사람 오는 게 좋다"며 대문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어느 할머니는 머리 염색을 하다 야쿠르트아줌마를 맞았고, 낮에 일하러 간다는 빈집 문고리엔 야쿠르트 비닐봉지를 걸어뒀다. 이날 허진옥씨는 목2동 주택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10여명의 홀몸노인에게 야쿠르트와 안부를 전했다.
홀몸노인 돌봄활동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허진옥씨가 야쿠르트아줌마 일을 시작한 후 3년간 홀몸노인 세분이 돌아가셨다. 허진옥씨는 "지난해 마음의 문을 닫고 계셨던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며 "배달을 가도 그냥 두고가라, 알아서 할테니 내버려 두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야쿠르트아줌마들이 고독사하는 홀몸노인들을 발견해 신고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다.
그래도 허진옥씨는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지난 겨울엔 빙판에서 넘어져 쓰려져 있던 할머니에게 회사에서 나온 핫팩을 건네드리고, 병원으로 모셔다 드린적도 있다. 병원에 전화해 할머니가 치료비를 싸게 낼 수 있는지 챙기기도 했다. 허진옥씨는 "어르신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시면 뿌듯하다"며 "예전에 봉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요즘은 '이런 게 봉사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수줍게 웃었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부센터장은 "야쿠르트아줌마들이 매일 홀몸노인을 방문하고 살펴주면서 고독사 예방에 큰 도움된다"며 "홀몸노인 지원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지자체가 활용하기에 가장 좋은 조직의 예"라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홀몸노인은 누군가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들"이라며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좀더 홀몸노인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