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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팍팍해진 제약영업…"10분·디테일에 승부"

  • 2017.03.30(목) 08:26

손재현 코오롱제약 병원2팀 영업과장
리베이트쌍벌제 등 규제강화..제약영업은?
"제품 설명할 디테일능력 중요·여성 도전자 늘어"

"영업은 제품과 사람만의 관계로 할 수 없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하는 것이죠. 하지만 제약영업에 대한 규제가 많기 때문에 제약영업사원(MR)이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아주 좁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본기인 '디테일' 능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 사진: 이명근 기자 qwe123@

올해로 MR(Medical Representative) 11년차를 맞은 손재현 코오롱제약 병원2팀 영업과장은 갈수록 강화되는 제약업계 규제환경 속에서 노련한 '방문디테일'이 앞으로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테일은 '대화를 통해 제품을 설명한다'는 의미의 제약업계 용어로, 방문디테일은 병·의원, 약국 등을 방문해 제품에 대한 전문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제약영업 파트 가운데서도 특히 어렵다는 대형병원을 맡고 있는 손재현 코오롱제약 과장을 만나 MR의 하루와 최근 제약업계 상황을 들었다. 


◇고객이 허락하는 면담시간 10분 내외.."디테일 능력이 성패"

"병원 교수님들의 하루는 매우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MR들도 여기에 맞춰 분주하게 '디테일'을 진행해야 해요. 하루 목표치는 '10콜' 정도. 담당 병원 1~2곳에 들러 10명의 교수와 면담할 거라는 의미예요. 면담시간은 길어야 10분 내외이기 때문에 이 짧은 시간안에 자기 자신과 제품을 알릴 수 있는 '디테일'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사를 상대로 하는 제약영업은 크게 대학병원·종합병원과 같은 대형병원 담당과 지역 소규모의원 담당으로 나뉜다. 업계에서는 '병원 교수님'을 만나느냐, '로컬 원장님'을 만나느냐로 구분한다. 통상 병원 1곳의 규모가 의원 20~30곳과 맞먹기 때문에 의원 영업사원은 60곳 정도를 관리하고, 병원 영업사원은 2~3곳을 맡는다.

대체로 경력이 많은 선임이 대형병원을 담당한다. 손 과장 또한 9년동안 로컬영업을 마치고 지난해 병원사업부로 발령받았다. 영업 대상 병원수는 적지만 병원시스템이 의원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의원에서는 어떤 의약품을 처방할지 여부가 사실상 원장의 결정에 달려 있지만, 병원은 지켜야 하는 내부규정이 많다. 병원마다 정해둔 신약신청 기간을 벗어나면 판매 의약품을 명단에 올릴 수 없어 정보가 빨라야 하고, 신약신청에 맞춰 논문집에 버금가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준비·제출해야 한다.

◇만남조차 불편해 하는 고객들.."기술영업으로 극복"

"올해로 경력 11년차지만 거래처가 아닌 곳에서는 아직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지난해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돼서 업무 외적인 시간에 MR을 보려는 의사가 많지 않아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빽빽하게 방문디테일 계획을 세워도 만족스럽게 완수해내기가 부쩍 어려워졌습니다." 

손 과장은 하루 일과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다. 손 과장이 맡은 큰 병원에는 카페, 휴게실 등 MR들이 머무를 곳이 많다. 병원 교수들의 외래진료가 끝날 시점이 되면 손 과장처럼 정장을 차려 입고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열댓명씩 된다. 모두 제약영업 사원들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손 과장은 제약업계 분위기가 2010년, 2014년, 2016년 등 3차례의 분기점을 거치며 크게 바뀌었다고 전했다. 각각 리베이트 쌍벌제·리베이트 투아웃제·김영란법이 시행된 해다. 이들 법안의 도입으로 영업사원과 마주하기를 꺼려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영업트렌드도 자연스럽게 '감성영업'에서 '기술영업' 위주로 바뀌고 있다. 유대관계 보다 제품력을 앞세워 처방을 유도하는 게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크기, 쓴맛 등의 개선사항을 강조하는 식이다.


◇"취준생, 제약사 선택할때 블록버스터를 봐라"

"영업사원에게는 회사의 제품력이 가장 큰 힘이예요. 그만큼 사내 연구팀의 역할이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제약영업 취직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도 '블록버스터'가 많은 곳에 들어가라고 권해요. 단일 품목으로 100억원 이상 팔린 제품을 블록버스터라고 부르는데요. 블록버스터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디테일 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예요."

리베이트 처벌이 강화되면서 제약사들도 기술영업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손 과장이 몸담은 코오롱제약의 경우 분기별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Compliance Program) 교육을 실시하면서 영업노하우도 공유한다. 코오롱제약은 별도로 CP전담팀을 갖추고 지방 순회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영업팀마다 CP전담 직원을 1명씩 지정해뒀다.

그럼에도 제약영업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않다. 손 과장이 2013년 제약영업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글을 게재하는 이유다. 2014년부터는 블로그에 질문해오는 제약업계 취준생들과 함께 소모임도 갖고있다. 업계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는 지식기부 모임인데, 다음달 23일 45회차를 맞는다. 그가 모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느 제약사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느냐"는 것. 그때마다 제약사가 보유한 블록버스터 제품의 수를 1순위 기준으로 제시한다. 외부에서는 매출규모로 제약사의 순위를 가르지만 MR에게 중요한건 비슷한 제품군에서 회사제품이 차별성 있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환경 변화 기대 여성 도전자 많아져..당국, 현실적 고충 살펴봐줬으면"

"최근들어 제약영업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건 제약영업 방식이 투명하게 바뀌어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여성 MR들의 경우 꼼꼼한 디테일에 강하거든요. (웃음) 하지만 여전히 고충도 많아요. 제품만을 연결고리로 하는 영업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관련당국이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대표적인 '남초(남자 초과)' 업계로 알려졌던 제약영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손 과장이 주관하는 취준생 모임이나 근무중인 회사의 신규채용에서 30% 이상이 여성이다. 손 과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구성원이 바뀌면서 업계 분위기도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제약회사 영업직원들이 바뀌는 영업환경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현실적으로 부닥쳐야 하는 어려움들이 많기 때문이다. 법이나 제도에서 '고객에 대한 편의제공'을 금지하는 규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 대표적인 어려움이다. 리베이트 고리를 끊기 위해 도입된 규정이 본래 취지를 넘어 영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손 과장은 "현행 제도에서 감성영업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사람 관계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도 지나치게 규제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에 대한 해석을 영업사원들에게 맡겨두기보다 되는것과 안되는것을 명확히 해주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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