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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끝나지 않은 '찜찜한' 보톡스 전쟁

  • 2019.03.07(목) 10:47

메디톡스 vs 대웅제약, 미국으로 이어진 진흙탕 싸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나보타' 조사결과로 막 내릴까

'보톡스'하면 주름이 고민일 때 성형외과에서 받는 시술이 떠오르는데요. 대명사처럼 쓰고 있지만 보톡스는 미국 앨러간 회사에서 맹독 성분인 보툴리눔 균을 미용 목적으로 가공해 만든 '보툴리눔 톡신'의 제품명입니다.

보툴리눔 톡신은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막아 근육마비를 일으키는데 주름 치료, 사각턱 교정 등 미용 목적 외에도 얼굴 떨림, 눈꺼풀 경련, 근강직 등 의료용도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 규모는 지난 2016년 35.6억달러(한화 약 4조185억원)에서 2020년 50.6억달러(한화 약 5조7117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거대한데요. 이에 다수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도 보툴리눔 톡신 제품 허가를 받고,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 메디톡스, 대웅제약 '나보타' 균주 도용 의혹 제기

그런데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둘러싸고 서로 으르렁대는 두 기업이 있죠. 바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입니다. 메디톡스는 대표품목인 ‘메디톡신’으로 성장한 기업이라고 할 만큼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선두주자로 꼽히는데요.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왼쪽)과 대웅제약의 나보타(오른쪽). (사진=메디톡스/대웅제약 제공)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2014년 내놓은 '나보타'가 자사의 메디톡신 균주와 흡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나보타와 메디톡신의 공개된 균주 염기서열이 99.99% 같았고, 이는 균주의 기원이 같다는 겁니다. 균주가 만들어지면서 발생하는 돌연변이로 전체 염기서열이 같을 순 없는 만큼 자사의 균주가 유출됐다는 게 메디톡스 주장입니다.

두 기업 간 논쟁은 2016년부터 벌써 3년째에 접어들고 있는데요.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공방이 치열합니다. 메디톡스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원에 대웅제약과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지난해 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논쟁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죠.

그러나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메디톡스의 제소를 받아들여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하면서 다시 '보톡스' 전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수사를 담당하는 내부 행정법판사(ALJ)를 지정하고, 관세법 337항에 따라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동일 여부와 제조·공정 등에 대한 과정을 조사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관세법 337조는 미국 내 상품 판매와 수입 관련 불공정행위에 대한 단속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조사 결과에 따라 대웅제약의 나보타 수입이 금지될 수도 있는 거죠.

이에 대해 메디톡스는 ITC가 배정한 변호사가 양측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한 사안인 만큼 조사 착수가 결정된 것만으로도 통상적이 아닌 특수한 상황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대웅제약은 지난 수년간 메디톡스가 제기해왔던 근거 없는 의혹의 연장선이며, ITC 조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나보타' 조사 착수…향방은?

그렇다면 업계에선 이번 ITC 조사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일단 다른 산업분야에서 ITC에 제소된 사례를 살펴보면 국내 기업들 전반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ITC가 미국 기업들을 보호하는 성향이 강한 만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내 기업엔 크게 도움이 될 것은 없다는 건데요. 그동안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제약기업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에서의 기대가치가 9000억원 대로 평가받는 나보타의 수출 길이 막히면 승자가 없는 이전투구의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메디톡스과 앨러간이 제기한 대웅제약과 에볼루스의 상표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고시했다.(사진=미국 국제무역위원회 홈페이지)

실제로 미국 반도체 기업 넷리스트도 2017년 SK하이닉스를 상대로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ITC 내 행정법판사는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줬지만 넷리스트가 청원을 신청하면서 재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SK하이닉스가 1심에서 승소해 재조사에서도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ITC가 넷리스트의 주장을 받아들여 행정법판사에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할 기준점을 정의하도록 '특허 항목 정의'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특허권 침해 소송에 유리한 측면이 강합니다.

사례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ITC는 역시 지난 2017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보고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결정을 내린 적도 있는데요. 세이프가드는 덤핑 등 불법행위를 하지 않아도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제조업체가 피해를 받았다고 판단될 경우 ITC의 명령에 따라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반대로 보툴리눔 톡신 특성상 균주의 출처 및 제조공정 도용 여부를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팽배합니다.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메디톡스가 제기한 나보타의 균주 출처 공개 요구에 대해 의심할만한 부정행위를 발견하지 못했고, 균주 근원을 판단하는데 염기서열 분석은 불필요하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즉 균주의 출처를 밝혀내기 어렵다는 얘기죠. FDA의 판단으로 ITC 조사에서도 대웅제약이 유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까지 발목잡기식의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현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나보타가 해외 진출에 성공한다면 휴젤이나 휴온스 등 국내 다른 기업들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수출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며 "균주 출처에 대한 다툼은 국내에서도 밝힐 수 있는 부분이고, 해외 진출에 발목을 잡는 행보는 국내 제약산업 측면에서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이번 ITC의 판단으로 보툴리눔 톡신 '대전쟁'의 막이 내리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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