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구충제 등 의약품 제조업체이자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기대업체로 주목받으면서 '핫(HOT)'해진 기업, 바로 신풍제약이죠. 이 기업이 개발하는 피라맥스(Pyramax)라는 약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2상 시험 승인을 받으면서 신풍제약의 주가가 급등!
이 회사가 지난 21일 128만9550주(보통주), 금액으로 따지면 2154억원(주당 16만7000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겠다고 발표했어요. 바로 다음날인 22일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고요. 신풍제약이 밝힌 자사주 처분의 목적은 '생산설비 개선 및 연구개발과제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서'
신풍제약 관계자는 "공장 등 노후화한 생산설비를 교체하고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포함한 국내외 임상시험을 위한 연구개발(R&D)비용에 자사주 처분으로 얻은 금액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관련공시: 신풍제약 9월 21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처분결정)
☞관련공시: 신풍제약 9월 22일 자기주식처분결과보고서
*여기서 잠깐, 자사주 처분이란? 기업이 직접 갖고 있는 자기주식을 시장에 파는 것
신풍제약이 팔겠다고 내놓은 128만9550주는 전체 발행주식수(6월 반기보고서 기준) 5298만4990주의 2.4% 해당하는 물량. 얼핏 보면 많아 보이지 않지만 일단 자사주 처분은 주주들에겐 달가운 소식일 수 없는데요.
보통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발표하면 증권시장에서는 호재로 여겨요. 유통되는 물량을 줄여 주식의 희소성을 높이고 이것이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거든요. 반대로 자사주를 다시 시장에 내놓으면 유통물량이 많아지니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 악재로 여겨요.
신풍제약의 자사주 처분 소식은 주가흐름에 곧바로 반영!
21일 19만3500원(종가기준)이던 신풍제약 주가는 23일 16만5000원으로 2만8500원 하락한 가격에 마감했어요.ㅠㅠ
그럼 이번 자사주 처분으로 인한 주가하락은 이 정도에서 끝나는 거냐, 많은 주주들이 궁금하실 텐데요. 정확히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몰라요. 다만 이번 공시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 어떤 변수들이 남았는지는 공시줍줍이 알려드릴 수 있어요.
# 신풍제약의 자사주 처분방식 시세보다 할인한 '블록딜'
신풍제약은 자사주 128만9550주를 처분하면서 시간외 대량매매라는 일명 블록딜(Block Deal) 방식을 활용했는데요.
*블록딜: 시간외 대량매매. 주식을 살 사람을 미리 구해 시장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 시작 전이나 장 마감 후 시간외매매로 거래하는 방식. 주로 기관투자자 등 대량 매매를 하는 거래상대방과 블록딜 거래가 이루어짐
128만9550주 중 58만주는 'Segantii capital investment'라는 홍콩계 헤지펀드에 팔았어요. 나머지 70만9550주는 다수의 해외기관 투자자에게 팔았어요. 구체적으로 누가 샀는지 밝히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산 주식이 전체 주식 수의 1%가 안 되는 물량이기 때문.
어쨌든 이미 해외 투자자들이 신풍제약 주식을 다 사간 상황. 이들 투자자가 당장 주식을 팔지 당분간 보유할지 알 수는 없어요.
다만 블록딜은 특정 매수자에게 대량의 주식을 팔기 때문에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판다는 점. 즉 할인율을 적용해요. 관광지에 단체손님이 오면 입장료를 깎아주는 것과 비슷한 논리.
신풍제약이 이번에 처분한 128만9550주는 1주당 16만7000원에 거래됐는데요. 이는 21일 종가(19만3500원)보다 13.7% 할인한 금액.
누군가가 시장가격보다 싼 값에 대량의 주식을 확보했다면 머지않아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있고, 이러한 점이 다른 주주들의 투자심리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 자사주매각 충격 줄이는 교환사채 방식 외면
무엇보다 신풍제약이 주가 고공행진을 펼치는 상황에서 꼭 자사주 매각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굳이 직접 처분 방식을 택했어야했느냐는 점에 투자자들은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어요.
만약 회사가 블록딜처럼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방식이 아닌 교환사채 발행 방식을 택했더라면 자사주 매각에 따른 물량 부담은 낮아져요.
*교환사채(EB: Exchangeable Bonds):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또는 다른 회사 주식을 미래 정해놓은 가격에 교환해주기로 약속하고 발행하는 채권. 회사는 교환사채를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교환사채를 사간 투자자는 이후 주가 상황을 보면서 채권으로 계속 보유할지 미리 약속한 가격에 주식으로 바꿔달라고 할지 정할 수 있어요.
블록딜같은 직접 매각과 달리 교환사채는 당장 자사주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특히 교환사채의 특성상 사전에 정한 교환가격(통상 발행당시 시세보다 약간 높게 책정)보다 발행 이후 주가가 더 높아야 투자자가 이익을 보는 구조. 따라서 교환사채는 발행회사와 투자자 사이에 향후 회사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공감대가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결국 신풍제약이 교환사채가 아니라 블록딜이란 직접 매각 방식을 택한 것은 향후 주가흐름에 대해 회사 스스로도 확신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도 연결될 수 있죠.
#자사주 처분,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신풍제약은 128만9550주라는 상당한 물량을 처분했지만 여전히 갖고 있는 자사주물량이 많아요. 22일 기준 신풍제약의 자사주물량은 371만3961주(보통주 기준). 액수로 따지면(21일 종가기준) 7187억원에 달하는 규모예요. 전체 발행주식 수의 7.01%를 신풍제약이 직접 가지고 있는 것!
신풍제약이 많은 양의 자사주를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어요. 2006년 신풍제약의 총수였던 장용택 전 회장이 1997년 신풍제약 부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갖고 있던 신풍제약 주식을 회사에 양도했거든요. 당시 경영책임자였던 장용택 전 회장에게 회사부도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죠.
총수가 주식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면서 당시 자사주 총 51만9696주(보통주, 우선주 합계)가 신풍제약에 들어왔어요. 이듬해 신풍제약이 액면분할(액면가 5000원에서 500원으로)을 하면서 자사주 수는 520만5300주로 약 10배 늘었어요.
신풍제약은 그동안 감사보고서를 통해 "주식가격 변동추이를 지켜보면서 처분손실이 발생하지 않거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때 자사주를 팔겠다"고 밝혀왔는데요.
하지만 지난 9년간 자사주 처분을 하지 않다가 코로나19로 주가가 급상승한 이 시점에 자사주 처분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점은 역시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인트!
장용택 전 회장이 손해배상으로 건넨 51만9696주의 자사주를 취득할 때만해도 주식가치는 약 120억원. 지금은 128만9550주를 처분하고도 남는 주식의 가치가 7187억원에 달하니 회사입장에서는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신풍제약은 이미 128만9550주를 팔아 2000억원 넘는 돈을 확보. 즉 회사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는 이익을 남긴 반면 투자자는 갑작스런 자사주 매각 소식에 이어 남아있는 자사주도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나타내는 상황.
남아있는 자사주의 향방에 대해 신풍제약 관계자는 "그건 알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회사입장에서 지금 자사주를 팔면 높은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열풍으로 신풍제약 투자자가 된지 얼마 안 된 주주들은 혹시 모를 추가적인 자사주 처분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겠죠.
신풍제약이 그동안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왔던 것만큼이나 남은 자사주의 미래에는 우려가 가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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