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권 내 경쟁 할인점에서 똑같은 상품을 더 싸게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면, 차액을 현금으로 드립니다."
24년 전인 1997년 5월.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는 생소했던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신세계백화점이 이마트 분당점에 도입했던 '최저가격 보상제'입니다. 이는 앞서 미국의 월마트가 최초로 선보여 성공을 거뒀던 마케팅 전략인데요. 국내에서는 이마트가 사실상 처음 도입했습니다.
최저가격 보상제는 국내 유통가를 뒤흔들었습니다. 우선 당시 이마트와 경쟁하던 킴스클럽이 곧장 대응에 나섰습니다. 이마트가 최저가 보상제를 발표하자 곧장 180여 품목의 가격을 인하했고요. 이후 킴스클럽 분당점과 서현점, 성남점 등에 '최저가격 신고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신고만 하면 소비자에게 1000원 상당의 사은품을 증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국내 유통 업계에서는 할인점뿐만 아니라 백화점, 홈쇼핑 업체들이 때마다 비슷한 마케팅 전략을 들고나와 치열한 경쟁을 하곤 했습니다. 본격적인 '가격 경쟁'이 시작된 겁니다.
이런 분위기는 2007년 이마트가 최저가격 보상제를 슬그머니 폐지할 때까지 무려 10년간 지속됐습니다. 당시 이마트는 "이제 상시 최저가를 유지할 힘을 확보한 만큼 상품을 차별화하고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마트가 최근 이 '빛바랜' 마케팅 전략을 무려 14년 만에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최저가격 보상 적립제'라는 이름으로 내놨는데요. 동일 상품, 동일 용량 제품에 대해 이마트 내 구매 가격이 쿠팡이나 롯데마트몰, 홈플러스몰 판매 가격보다 비싸면 그 차액을 'e머니'로 적립해주는 방식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마트가 새로운 유통 강자인 쿠팡을 겨냥해 이 전략을 내놨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최근 쿠팡은 유료 멤버십 제도인 '와우 회원'에 가입하지 않은 고객에게도 한시적으로 무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런 공격적 움직임에 이마트가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최저가 보상제는 실적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데다가 부작용도 많은 전략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언론 보도를 보면 이마트는 최저가격 보상제 실시 후 한달 동안 접수 건수가 200여 건에 그쳤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상액은 400만 원 정도였습니다. 맞대응에 나섰던 킴스클럽 역시 최저가격 신고제로 접수된 신고가 1년간 100여 건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실제 각 점포의 가격을 비교해 신고하고 보상을 받으려 했던 소비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겁니다. 고작 몇백 원 아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사실 번거로울 뿐입니다.
게다가 점포를 찾아와 신고하는 이들은 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오직 보상금을 노린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이 몰려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지도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이마트뿐만 아니라 대부분 유통 업체들이 유사한 전략을 줄줄이 폐지했던 거고요.
그런데 이마트는 도대체 왜 이 마케팅 전략을 다시 꺼내 든 걸까요. 단순히 쿠팡과의 경쟁만을 위해서일까요. 쿠팡이 '무료 배송'이라는 사실상의 가격 인하 전략을 꺼내 드니 맞대응을 하는 차원이었을까요. 이마트가 십수 년 전에 했던 제살깎기식 최저가 경쟁에 다시 나선 이유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번 전략이 가격경쟁의 일환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노림수'도 있을 겁니다. 이제는 모바일로 쿠팡이나 롯데몰에 들어가서 가격 확인을 할 수 있으니 과거보다는 편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를 번거롭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전략을 택한 이유가 있겠죠.
그 답은 이마트 관계자의 설명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훈안 이마트 마케팅 상무는 이런 마케팅 전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O2O(Offline to Online) 시대를 맞아 고객이 쇼핑의 모든 여정에서 가격적 혜택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이 '재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카드를 갑자기 다시 꺼내는 것은 이마트의 최근 행보와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신세계 그룹은 얼마 전 야구단을 인수해 많은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직접 경쟁사 롯데와의 라이벌 구도를 내세우며 이목을 끌기도 했고요. 정 부회장은 SSG랜더스의 개막전을 맞아 직접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정 부회장을 닮은 고릴라인 '제이릴라'나 정 부회장을 본뜬 '용지니어스'와 같은 캐릭터를 만드는 등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행보는 MZ세대(밀레니얼 + Z세대)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마트가 2021년에 다시 꺼내든 '최저가격 보상제'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요즘 MZ세대는 다소 번거롭더라도 재미가 있으면 기꺼이 몸을 움직입니다. 최저 가격이 아닌 상품을 찾아내는 '미션' 역시 어쩌면 MZ세대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당장의 실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젊은 층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한 전략으로 여겨집니다.
이마트는 24년 전 최저가 보상제로 국내 유통 업계를 뒤흔든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매출이 증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판을 흔든 전략이었던 점은 분명합니다. 소비자들을 주목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고요. 과연 이번에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혹은 또다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요. 14년만에 다시 등장한 마케팅 전략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