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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④'칠성사이다=깨끗함'에 숨겨진 전략

  • 2021.08.05(목) 14:00

국산 대표 청량음료…'익숙한 맛' 강조
코카콜라 등장에 '공격적 마케팅' 변화
송민석 음료BM 탄산 담당 매니저 인터뷰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고급 제품'에서 '익숙한 맛'으로

과거 사이다는 고급 제품이었습니다. 소풍이나 여행 등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죠. 소풍에서 사이다를 꺼내 들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곤 했습니다. 동방청량음료는 이런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습니다. 지난 1965년 신문 광고에는 '휴대용 순설탕제'라는 문구가 실려있습니다. 당시 설탕 한 포대가 '고가(高價)'의 선물이었던 시절입니다. 칠성사이다에 '고급' 설탕이 들었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칠성사이다는 1960년대부터 국내 대표 청량음료 제품으로 자리 잡습니다. 국내 경쟁 사이다 제품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고요. 정부가 1961년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며 코카콜라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더욱 안정적으로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1960년대 말 이후 동방칠성음료가 당시 일간지(위 1967년 4월 26일자 경향신문, 아래 1971년 6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은 광고 이미지. /사진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칠성사이다의 탄탄한 입지는 당시 광고 전략에도 잘 드러납니다. 동방청량음료는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뭐니 뭐니 해도 제일'이라는 문구로 칠성사이다를 소개했습니다. 한쪽에는 '유사품에 주의 하십시요'라는 문구도 넣었고요. 보통 뒤처진 업체들은 1위 제품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미투(Me too) 제품'을 내놓는 전략입니다. 이는 칠성사이다가 이미 이때부터 확고한 1위 자리에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동방청량음료는 칠성사이다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맛의 제품이라는 점을 지속해 강조해나갔습니다. 식품 시장에서는 무엇보다 '익숙한 맛'으로 먼저 자리 잡는 게 중요합니다.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에 맛을 들이면 계속 그 제품을 찾는 경향이 강합니다. 동방청량음료는 1971년 칠성사이다의 병 모양을 바꾸면서 '시원한 그맛'이라는 문구를 써넣었습니다. 병 모양은 바뀌었지만 모두가 다 아는 '그 맛'은 여전하다는 점을 강조한거죠.

세계적 음료 코카콜라에 맞서다

다만 '적수'가 없던 시절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 없던 '콜라'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동방청량음료는 펩시와 협력 관계를 만들기는 했지만 칠성사이다만의 '고유한 위상'을 지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동방청량음료의 마케팅 전략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친숙함'을 강조했다면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칩니다. '익숙한 맛'을 강조하는 동시에 경쟁사를 직접 타격하기 시작합니다.

1974년 6월 칠성한미음료(구 동방청량음료)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광고를 내보냅니다. 광고 지면을 이미지 없이 빈 공간으로 냈습니다. 요즘의 시각에서 봐도 매우 파격적인 광고 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숨은 뜻이 있습니다. 광고 한쪽 구석에 작게 문구를 넣었습니다. '보십시오. 보이지가 않습니다'라고 적어 둡니다. 칠성사이다가 콜라와는 달리 '무색'이라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소비자들의 뇌리에는 '무색=깨끗함'이라는 공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를 십분 활용한 광고였던 셈입니다.

국내에 코카콜라가 진출한 뒤 칠성한미음료가 당시 일간지(1974년 6월 8일자 동아일보)에 내보낸 광고 이미지./사진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콜라, 특히 글로벌 1위인 코카콜라는 국내 청량음료 시장에서 칠성사이다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코카콜라를 견제하는 광고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견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슈가 된 건 지난 1998년 광고입니다. 롯데칠성은 '콜라를 마실 것인가? 사이다를 마실 것인가'라는 제목의 광고에서 '우리나라에는 칠성사이다가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일종의 '애국심' 마케팅입니다. 당시 이 광고를 두고 '영토 전쟁'이 벌어졌다는 식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칠성사이다는 이제 '국산' 청량음료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사실 오래전부터 지속해오던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고요. 롯데칠성음료가 1976년 내놓은 광고를 볼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다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롯데칠성은 "세계 각국에는 그 나라 고유의 사이다가 있다"며 "한국에는 칠성사이다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사이다 보유국'이라는 점을 부각한 거죠. 재미있는 발상인 듯 합니다.

'맑고 깨끗한' 칠성사이다

롯데칠성음료는 1980년대 말부터 칠성사이다의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이 역시 코카콜라를 견제하는 전략의 일환이었을 겁니다. 1999년 내놓은 칠성사이다 '카페인 편' 광고 영상에는 롯데칠성 광고 전략의 '정수(精髓)'가 담겨 있습니다. "칠성사이다는 (코카콜라와는 달리) 카페인도, 색소도 없고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영상 마지막에서는 '맑고 깨끗한 맛 칠성사이다'라는 문구를 보여주며 카운터 펀치를 날리죠.

2000년대 이후에는 주로 자연을 담은 장면을 보여줍니다. 칠성사이다의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환경 보호 메시지도 전달합니다. 지난 2019년 칠성사이다의 상징과도 같은 초록색 페트병을 재활용이 쉬운 무색 페트병으로 바꾼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입니다. '칠성사이다는 깨끗하고 순수하며 이는 곧 환경을 생각하는 정신이 담긴 음료'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한 겁니다.

롯데칠성음료가 지난 1999년 내보낸 코카콜라와의 비교 광고 영상 '카페인 편'. /사진=롯데칠성음료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들어서는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칼로리 부담을 낮춘 '칠성사이다 로어슈거'와 '칠성사이다 제로'가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탄산이 더 강한 '칠성사이다 스트롱'도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제품이죠. 칠성사이다의 모델로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정상 그룹 BTS를 발탁하거나 칠성사이다를 모티브로 한 향수를 내놓는 것도 이런 마케팅의 연장선상입니다. 

칠성사이다와 같이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브랜드의 경우 공통적인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 노후화'입니다.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만큼 젊은 층에게는 '옛날 제품'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스테디셀러들을 보유한 업체들은 이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롯데칠성음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칠성사이다의 마케팅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케팅 담당자를 만나봤습니다. 송민석 롯데칠성음료 음료BM(Brand Management) 탄산 담당 매니저입니다. 

"'맑고 깨끗한' 브랜드 가치 지킬 것" 

송민석 롯데칠성음료 음료BM(Brand Management) 탄산 담당 매니저 /사진=롯데칠성음료 제공.

-롯데칠성음료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신가요.

▲2010년 입사해 2012년부터는 음료BM팀에서 칠성사이다를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탄산 담당 매니저로 칠성사이다를 비롯해 밀키스, 트레비 등의 탄산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칠성사이다는 출시된 지 70년이 넘은 국내 대표 장수 제품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제품이죠. 이런 제품을 '마케팅'하는데 자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칠성사이다는 자사의 대표 브랜드입니다. 이런 브랜드를 담당한다는 건 큰 영광이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합니다. 현재는 70년이 넘었지만 향후 100년이 넘는 브랜드로 이어질 수 있게 보탬이 되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얼마 전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칠성사이다 페트병을 초록색에서 투명으로 변경했는데요. 이때 어느 소비자분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투명 페트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셨는데 페트병 컬러는 바뀌어도 칠성사이다 맛은 변함없이 유지해 달라고 당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최근 진행한 마케팅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오래전부터 사이다를 드셨던 고객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도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칠성사이다 70주년이었습니다. 이에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했는데요. 신제품을 내놓고 향수 등 다양한 굿즈를 출시해 MZ세대에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정판 '칠성사이다 미니병 에디션'을 발매했는데,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작고 귀여운 미니병 제품이었습니다. 출시되니 많은 분이 추가 생산을 요청하시고 판매 대란이 있을 정도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어서 놀랐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제품을 소비자들이 원하시는 콘셉트에 맞춰 발매한 점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칠성사이다를 마케팅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칠성사이다가 오랜 기간 사랑받아왔다는 건 칠성사이다만의 상쾌하고 짜릿한 맛을 일관성있게 지켜왔기에 소비자들께서 익숙하고 정다운 맛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칠성사이다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초록색, 별, 사선 모양의 칠성사이다 로고'는 앞으로도 브랜드 자산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또 칠성사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맑고 깨끗한'이라는 가치를 향후에도 잘 지켜나갈 계획입니다. 녹색이라는 브랜드 컬러를 환경 경영과 선한 영향력으로 실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칠성사이다를 마케팅하는 데에도 시대적인 흐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 업무 초창기에는 칠성사이다 오리지널에 포커싱을 맞춰 회사의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음료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고 소비자분들의 니즈 또한 다양해졌습니다. 이에 맞춰 강력한 탄산의 '스트롱' 제품이나 국내산 과즙을 담은 '청귤' 같은 제품, 그리고 '칠성사이다 제로'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제품 타킷과 니즈에 맞춰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제품만 있을 때는 다소 정적인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맛은 물론 칠성사이다 굿즈 출시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보다 역동적으로 소비자분들께 다가서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 인터뷰로 진행됐습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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