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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②롯데 품에 안긴 '칠성사이다'

  • 2021.08.04(수) 14:00

석유 파동에 주주 갈등 겹쳐 '위기'
롯데 인수 후 공격적 경영으로 전환
경쟁사 따돌리며 '사이다 시장' 평정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70년대 청량음료 전성기…"코카콜라 따위가"

"구수한 보리 숭늉만을 최고의 맛으로 인식해 왔었으며, 시원한 냉수에 설탕을 타 마시던 식성이 몇 년 사이에 콜라나 사이다, 즉 청량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1970년 국내 청량음료 업계는 호황을 맞았습니다. 애초 사이다나 콜라 같은 청량음료는 아무나 마시지 못하는 고급 제품이었죠. 그러던 것이 60년대를 지나면서 소득이 증가하고 제품 가격이 안정화하면서 청량음료가 대중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간지에서(1968년 7월 27일자 매일경제)  '날개돋친 청량음료'라는 제목으로 청량음료 인기가 높아지는 풍토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당시 국내 청량음료 시장의 선두주자는 단연 '칠성사이다'였습니다. 칠성사이다를 만드는 동방청량음료는 지난 1963년 사이다 시장의 유력 경쟁자였던 '서울청량음료'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습니다. 60년대 말에는 국내 음료 업계 최초로 해외(베트남) 수출에 성공하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했죠. 

동방청량음료의 기세는 세계 최대의 청량음료 업체인 코카콜라와의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코카콜라는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동방청량음료에 기술 제휴를 타진합니다. 하지만 동방청량음료는 콧방귀를 낍니다. 이미 칠성사이다가 불티나게 팔리는 터라 아쉬울 게 없었거든요. 자사의 콜라 제품인 '스페시코라'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코카콜라는 국내 주류업체인 동양맥주와 손을 잡습니다. 코카콜라가 '의문의 1패'를 당한거죠.

결과론적이지만 돌이켜보면 이 결정이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코카콜라가 국내에 공격적으로 진출하자 동방청량음료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결국 코카콜라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던 펩시콜라와 손을 잡았습니다. 동방청량음료가 보유하던 영업력과 인프라 등으로 펩시를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코카콜라와 손을 잡았다면 조금 더 편한 길을 걸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콜라 에 밀린 사이다…'주주 갈등'까지

코카콜라(1968년)와 펩시콜라(1969년)의 등장은 국내 청량음료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세계 최대 기업에 맞서려면 몸집을 키워야 했습니다. 엄청난 자금력으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작은 업체는 갈수록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동방청량음료는 이례적으로 펩시콜라를 성공시켰지만 주력 제품인 칠성사이다는 힘을 잃어갔습니다. 청량음료 시장을 주름잡았던 '사이다'는 점점 콜라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70년대 초에는 제1차 석유파동이 벌어졌습니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서 국내 청량음료 산업도 타격을 받았죠. 유리병 업체들은 공병 생산을 대폭 줄였습니다. 사이다의 원료로 쓰이는 설탕 생산량도 크게 줄었습니다. 결국 1973년 56억원을 기록했던 칠성한미음료(구 동방청량음료)의 연 매출액은 다음 해 47억원으로 축소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했는데도 매출이 줄었습니다.

코카콜라가 일간지(1968년 5월 24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한국 진출을 알리는 광고를 냈다. /사진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결국 경영진들은 1974년 회사 매각을 결정합니다. 갑작스런 일이었습니다. 지난 1950년 설립해 20여 년간 국내 최대 음료 회사로 기업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사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동방청량음료는 각각 성이 다른 7명이 설립한 회사입니다. 여러 주주가 함께 회사를 이끄는 경영 방식이었죠. 그러다 보니 주주 간 갈등이 많았습니다. 서울청량음료 인수때도, 펩시콜라와 손을 잡을 때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속하는 갈등으로 동방청량음료는 일부 주주가 새로 법인을 만들어 독립했다가 다시 합병하는 등 '분리와 통합'을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회사가 어려워지자 지난 1973년 '칠성한미음료'로 통합했고요. 동시에 기업공개를 하며 전의를 다졌지만 깊어진 '내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음료 산업' 바라던 신격호, 칠성 인수

그즈음 국내 식품 시장의 한쪽에서는 신흥 업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1967년 만든 '롯데제과'입니다. 껌 사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 회장은 음료 산업에도 진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롯데제과를 창립할 당시 사업목적에 '기호음료 판매업'을 명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음료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난 1965년 김포공항으로 입국 중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맨 오른쪽) /사진=롯데칠성음료 제공.

이때 경영난에 빠진 칠성한미음료가 롯데제과에 경영권 인수를 제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칠성한미음료의 주주들은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습니다. 한쪽은 해태제과에 인수를 타진했는데요. 당시 김영태 칠성한미음료 사장이 박병규 해태제과 사장과 친분이 있어 접촉했다고 합니다. 반면 다른 주주들은 이에 반발하며 롯데제과에 인수를 제의했습니다. 이후 칠성한미음료는 해태제과가 인수합니다.

하지만 신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해태제과를 상대로 다시 인수 협상을 벌인 겁니다. 당시 해태는 경기도 부평에 추가로 생산 공장을 짓느라 자금 여력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결국 칠성한미음료를 롯데제과가 가져가게 됩니다. 롯데는 사명을 '롯데칠성음료'로 바꾸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시설 확대…신제품 출시 가속화

롯데는 칠성한미음료와 달리 철저한 오너십에 기반한 회사입니다. 그 덕분에 적자 속에서도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1975년 부산·경남 지역에 공장을 세웠고 같은 해 영남지역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해왔던 '합동음료공업'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생산 시설을 확대하는 투자를 지속했습니다.

이밖에 청량음료에 과일 향과 맛 등을 더한 '플레이버 음료' 신제품이나 과즙 음료 신제품을 발 빠르게 내놓는 등 시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적자 투성이었던 롯데칠성음료의 재무구조는 점점 탄탄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이다 시장에서 칠성사이다의 위상을 계속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과즙 탄산음료인 '탐스'를 개발하기로 하고 감귤 생산지인 제주도에 생산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1977년 준공된 제주 공장 전경. / 사진=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사이다는 처음 세상에 선보인 뒤 지금까지 70여 년간 사이다 시장의 왕좌를 지켜왔습니다. '세븐업'과 '킨사이다', '스프라이트' 등 경쟁 제품들이 잠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꾸준히 사이다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지금도 점유율 70%가량을 기록하고 있고요. 이제 국내 소비자들은 '사이다=칠성사이다'라는 공식에 익숙합니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셈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이다는 청량음료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청량음료에는 코카콜라나 펩시 같은 '콜라 제품군'이 있죠. 환타나 오란씨 같은 '가향 탄산 음료 제품군'도 있습니다. 한때는 탄산에 보리 원액을 더한 '맥콜'도 주목받았습니다. 사이다는 이런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칠성사이다는 과연 콜라와 환타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냈을까요. 다음 편에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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