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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③칠성사이다의 '김빼기 전략'

  • 2021.08.05(목) 07:00

코카콜라 등에 '사이드 제품'으로 대응
직접 경쟁 대신 간접 대응으로 전선 교란
마케팅으로 칠성사이다 독보적 위치 수성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탄산음료'하면 콜라와 사이다가 떠오릅니다. 콜라라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자연스럽게 연상되고요. 그런데 사이다는 어떠신가요. '칠성사이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실 겁니다. 글로벌 1위 사이다 '스프라이트'도 국내에서는 맥을 못춥니다. '킨사이다'나 '세븐업' 같은 제품들은 이미 추억 속 이름이 돼버렸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는 칠성사이다의 '큰 그림'입니다. 칠성사이다는 70년 동안 수많은 경쟁 제품을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경쟁 전면에 '직접' 등판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들을 상대한 것은 항상 다른 제품이었습니다. 심지어 펩시콜라를 국내에 출시한 것도 칠성사이다의 계획이었죠. 칠성사이다는 왜 펩시콜라와 손을 잡았을까요. 지금부터 칠성사이다식 '김빼기 전략'의 역사를 한 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칠성과 펩시의 '오래된 인연'

칠성사이다는 1965년 첫 라이벌을 만납니다. 코카콜라가 국내 진출을 타진한 겁니다. 코카콜라는 첫 파트너로 칠성사이다를 생산하던 '동방청량음료'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동방청량음료는 코카콜라와 비슷한 제품인 '스페시코라'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거절하죠. 그러자 코카콜라는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와 손잡고 코카콜라 국내 유통에 나섭니다. 업계에서는 반발했지만 정부는 외화벌이를 판매 근거로 내세운 동양맥주의 손을 들어줍니다.

국내 탄산음료 업계에는 비상이 걸립니다. 스페시코라만으로 '원조'인 코카콜라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대안으로 펩시콜라가 떠오릅니다. 동방청량음료는 1967년 펩시콜라 보틀러 법인인 '한미식품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9년 2월 펩시콜라를 국내에 시판합니다. 코카콜라 국내 출시 후 8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한미식품공업주식회사는 같은 해 6월 서울 양평동에 펩시콜라 생산 공장도 마련합니다. 수십 년 라이벌의 첫 전면전이 시작됐습니다.

펩시콜라의 성공은 본사 임원의 국내 방문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펩시콜라는 '루트 세일 시스템'을 통해 시장을 장악합니다.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영업사원이 판매 전반을 책임지는 이 시스템은 당시만 해도 혁신적이었습니다. 루트 세일 시스템은 중간 마진을 없애 압도적 가격 경쟁력을 가져옵니다. 당시 코카콜라는 190㎖ 한 병을 30원에 팔았습니다. 반면 펩시콜라는 같은 가격에 236㎖를 팔았죠. 소비자들은 당연히 펩시콜라에 열광합니다.

펩시콜라는 국내 진출 첫 해부터 코카콜라를 앞섭니다. 이듬해인 1970년에도 시장 점유율 31%을 기록하며 29%에 그친 코카콜라에 우세승을 거두죠.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이긴 것은 전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에 고무된 펩시콜라 본사의 도널드 M.켄달 부사장이 1972년 국내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콜라'는 사이다와는 다른 별도의 카테고리로 자리잡았습니다. 덕분에 칠성사이다는 브랜드 가치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펩시'를 살려야 '칠성'이 산다

하지만 아쉽게도 '황금기'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1974년 칠성사이다를 생산하던 동방청량음료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롯데그룹에 합병됩니다. 우리가 아는 '롯데칠성음료'의 탄생이었죠. 공교롭게도 이때는 동방청량음료와 펩시콜라 사이의 계약 종료 시기였습니다. 합병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까지 나타나며 동방청량음료와 펩시콜라는 재계약에 실패합니다. 칠성사이다와 펩시콜라의 첫 이별이었습니다.

펩시콜라는 진로(현 하이트진로)와 손잡고 국내 사업 지속을 모색합니다. 진로도 경기도 부천에 펩시콜라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등 의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로는 정작 중요한 청량음료 면허 취득에 실패합니다. 결국 펩시콜라는 1년 반만에 롯데칠성음료에 다시 손을 내밉니다. 롯데칠성음료에게도 달콤한 제안이었습니다. 펩시콜라의 후속작 '롯데콜라'로 코카콜라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거든요. 이해관계가 일치한 양사는 1976년 7월 재회하게 됩니다.

펩시콜라는 롯데칠성음료의 손을 잡고서야 재도약하게 됩니다. /사진=롯데칠성음료

당시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1년 반 사이 펩시콜라의 시장 점유율은 3%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때 롯데칠성음료의 선택은 '펩시콜라 올인'이었습니다. 롯데콜라의 생산을 중단하면서까지 펩시콜라에 전사 역량을 투입합니다. 납품 트럭을 펩시의 색상으로 도색해 전국에 투입하며 '펩시의 귀환'을 알렸죠. 펩시콜라는 1979년 전년 대비 150% 늘어난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재도약합니다.

1980년대부터는 '역습'이 시작됩니다. 롯데칠성음료는 1975년 미국에서 시작된 '펩시 챌린지' 마케팅을 국내에 도입합니다. 펩시 챌린지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담은 광고입니다. 당시 진위 논란과 과장광고 논쟁이 있었지만, 펩시 챌린지는 소비자의 관심을 펩시콜라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죠. 펩시콜라는 다시 코카콜라의 라이벌로 각인됩니다. 이를 계기로 칠성사이다는 코카콜라와의 경쟁 부담을 완벽하게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칠성의 미래를 바꾼 '무대 바꾸기'

칠성사이다는 이후의 경쟁에서도 펩시콜라에서 얻은 노하우를 활용합니다. 1980년대 '보리음료'가 탄산음료 시장을 강타합니다. 일화의 '맥콜'이 인기를 끌며 칠성사이다의 경쟁 제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때 롯데칠성음료의 전략은 맥콜과 유사한 '비비콜' 출시였습니다. 경쟁 무대를 바꿔버렸죠. 이 선택은 1980년대 후반 보리음료의 인기가 식자 빛을 발합니다. 맥콜이 시장 지배 제품이 됐고, 비비콜은 단종됩니다. 하지만 그 사이 보리음료는 사이다와 별개의 카테고리가 됩니다. 칠성사이다는 이번에도 타격을 피합니다.

'스프라이트'와의 경쟁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1992년 코카콜라는 '킨사이다'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스프라이트를 국내에 투입합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여기서 '역대급 김빼기'를 시전합니다. '스프린트'라는 제품을 출시합니다. 이 제품은 이름은 물론 포장과 제조방식마저 스프라이트와 비슷했습니다. 코카콜라는 분노했습니다. 1992년 2월 15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코카콜라 관계자는 "상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격정을 토로했죠.

롯데칠성음료가 '스프라이트'를 겨냥해 출시한 '스프린트'.

롯데칠성음료의 전략은 더 치밀했습니다. 두 달 후 스프린트의 이름을 '스프린터'로 슬쩍 바꿉니다. 코카콜라는 스프린터에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냅니다. 하지만 법원은 롯데칠성음료의 손을 들어줍니다. 디자인과 제조법이 코카콜라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합니다. 칠성사이다의 대항마였던 스프라이트는 졸지에 스프린터와 경쟁하는 운명이 됐습니다. 결국 스프라이트는 얼마 후 국내에서 잠정 철수하게 됩니다. 제 역할을 완수한 스프린터도 얼마 후 '아름답게' 퇴장했습니다. 칠성사이다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고 경쟁에서 승리합니다.

롯데칠성음료의 이런 전략은 당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칠성사이다의 라이벌을 이겨낸 것도 사실입니다. 칠성사이다가 정면 대결에 나섰다면 무너졌을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스프라이트는 진출한 시장마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였으니까요. 칠성사이다가 '국가대표 사이다'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마케팅의 승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 도전자는 누구일까요. 칠성사이다는 이들을 어떻게 상대할까요. 무척 궁금해집니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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