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이제는 아니다. 면세점 이야기다. 외형적으로 실적은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업 구조조정 등의 성과다. 하반기 전망은 어둡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의 발길이 끊겼다. 트래블 버블 등 해외여행 활성화 조치도 없던 일이 됐다. 유통업계 종사자 백신 우선접종에서도 배제됐다. 악재의 연속이다.
현재 면세점 업계는 버티기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체력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이어가면서 이커머스 시장을 중심으로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고 있다. 나아가 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면세점업계가 코로나19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실적은 개선됐지만
신라면세점은 지난 2분기 매출 8465억원, 영업이익 47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92.7%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따이궁 등 외국인이 돌아오며 시내면세점 매출이 전년 대비 96% 늘어난 덕분이다. 국경이 조금이나마 열리고, 제주도 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시내 및 공항면세점의 매출도 61% 증가했다.
신세계면세점은 2분기 매출 5605억원, 영업이익 19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80.4% 늘었다.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65% 증가한 6560억원이었다. 영업손실은 77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대비 100억원 이상 줄었다. 롯데면세점의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전년 대비 매출액이 40% 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이번 호실적은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라는 분석이 많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의 2분기 매출은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9년 2분기의 70% 수준이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의 매출 성장은 지난해 동대문 두타면세점 인수 등 사업 확장의 결과다. 면세점업계는 최근 사업 구조조정중이다. 롯데·신라면세점은 인천공항에서 철수했다. 신세계면세점은 강남점을 포기했다. 이런 효율성 제고 전략이 영업이익에 반영됐을 뿐 회복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지난해 2분기보다 실적이 나아졌다고 부활을 전망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최근 실적은 강도 높은 사업 구조조정, 비용 절감 등 노력에 따른 것이다. 시장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2년 이상 남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악재
당초 업계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면세점 시장이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따이궁 등 외국인 매출이 살아났었기 때문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4~5월 면세점업계는 두 달 연속으로 1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중 외국인 고객의 비중은 95.5%에 달했다. 6월 들어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이는 중국의 최대 쇼핑 행사인 '6·18 축제'가 끝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장 환경도 긍정적이었다. 지난 7월부터는 일부 국가에 해외여행을 허가하는 '트래블 버블'이 예정돼 있었다. 때마침 백신 접종이 활성하면서 추석연휴 해외여행 패키지 예약률이 70%를 웃돌기도 했다. 여기에 보복소비 수요가 폭발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는 등 기대감이 높아졌다. 희망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일장춘몽'에 그쳤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세계에서 확산했다. 7월부터는 국내에서도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됐다. 트래블 버블은 순식간에 없던 이야기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면서 여행 심리도 급속도로 위축됐다. 사실상 코로나19 사태 초기나 마찬가지인 분위기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마저 면세점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식당·백화점·대형마트 종사자를 3차 백신 자율접종 대상자로 정하고 이달 중 우선접종을 시행키로 했다. 하지만 면세점만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는 신라·동화면세점 근무자들은 배제됐다. 이번 우선접종 대상자는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 점포 근무자가 대상이었다. 하지만 면세점은 대규모 점포에서 제외됐다.
'각자도생' 나섰지만 한계 명확해
면세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던 재고면세품 판매와 내수관광비행의 효과는 예전 같지 않다. 결국 신라면세점은 재고면세품을 쿠팡에 푸는 '극약 처방'을 내놨다. 공항 임대료 매출연동제 등 정부 지원책도 연말로 종료된다. 많은 매장을 이미 철수한만큼 코로나19 사태가 끝난다 해도 빠른 실적 회복은 어렵다.
결국 면세점은 '각자도생'에 나섰다. 롯데면세점은 지난달 웹사이트·모바일 앱 등 온라인 플랫폼을 리뉴얼했다. 일본 간사이점도 리뉴얼했다. 신세계면세점도 동남아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에서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는 등 이커머스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중국 하이난성의 하이요우면세점과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판로를 확대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까지 버티겠다는 구상이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면세점은 규모의 사업이다. 매출이 높아야 상품 소싱 등에서 유리하다. 외국인 매출이 줄어들면 국내에서 매출을 끌어올려 규모를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내국인 면세 한도는 여전히 600달러다. 온라인 역직구 등도 금지돼 있다. 구조적으로 외국인 의존도를 낮추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정책적 지원이 선행돼야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자국 면세점 규제를 축소하고, 타국 면세점은 견제하는 등 국가가 주도해 면세 산업을 키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별다른 지원이 없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 따이궁 수요마저 중국에게 빼앗긴다.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면세점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규제 축소나 내국인 면세시장 활성화 등 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