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14개 계열사의 CEO가 교체됐다. 안정보다 변화에 방점을 뒀다는 평가다. 40대 대표이사는 물론 롯데에서는 드문 여성 대표이사도 탄생했다. 외부 영입도 늘렸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상시적 위기와 조직 혁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 따라
롯데그룹은 롯데지주 등 38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2024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롯데그룹의 인사 키워드는 '젊은 리더십 전진 배치·핵심 인재 재배치·외부 전문가 영입 확대·글로벌 역량과 여성 리더십' 강화 등이다.
눈에 띄는 것은 화학군이다. 롯데그룹은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화학군 총괄대표에 이훈기 롯데지주 ESG혁신실장(사장)을 선임했다. 그동안 롯데그룹의 화학 사업을 이끌었던 김교현 부회장은 물러나기로 했다.
신임 이 사장은 지난 2010년 롯데케미칼 타이탄 대표, 2014년 롯데케미칼 기획부문장, 2019년 롯데렌탈 대표를 거쳐 지난 2020년부터 ESG경영혁신실장을 맡고 있다.
호실적을 낸 CEO는 승진으로 보답받았다. 이영구 식품군 총괄대표는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식품군을 맡아 롯데제과와 푸드의 합병을 원만히 이뤄냈고 포트폴리오 개선, 글로벌 시장 개척, 신성장동력 확보 등의 숙제를 잘 풀어냈다는 평가다.
경기 침체로 소비 부진이 이어지는 중에도 백화점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정준호 롯데백화점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한다. 차우철 롯데GRS 대표, 추광식 롯데캐피탈 대표는 나란히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세대 교체
올해 롯데그룹 인사의 핵심은 '더 젊게'다. 이번에 교체되는 14개 계열사 대표 중 8명이 60대다. 이 자리를 60년대 후반~70년대생 신임 대표들이 채운다. 가장 젊은 우웅조 롯데헬스케어 신임 대표이사는 1974년생으로 아직 40대다. 50년대생 대표들이 대거 물러나고 그 자리를 60년대생 후임들이 채우면서 사장단 평균 나이도 다섯 살 젊어졌다.
HL리츠운용 대표를 지낸 김소연 전무를 영입하면서 그룹 내 여성 대표도 3명으로 늘었다. 5명의 여성 상무보를 상무로 승진시키면서 그룹 내 전체 여성임원 비중도 7%에서 8%로 소폭 늘었다. 전무 이상 고위 임원 비중도 7.4%에서 9.8%로 늘었다.
세대 교체의 중심에는 '3세' 신유열 전무가 있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 전무는 이번 인사에서 전무 승진과 함께 신설되는 미래성장실을 책임진다. 미래성장실은 바이오·헬스케어 등 신사업 관리와 제 2의 성장엔진 발굴에 나서는 부서다.
이와 함께 신 전무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임한다.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바이오 사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다. 신 전무는 지난 2020년 그룹 입사 후 일본 롯데 주식회사, 일본 롯데홀딩스, 일본 롯데 부동산, 일본 롯데 파이낸셜 등 일본 롯데 사업에만 참여해 왔다. 내년부터는 사업 비중이 큰 국내 사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을 전망이다.
순혈 타파
롯데그룹은 그간 외부 출신에 대해 상대적으로 박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매년 인사 때마다 '순혈주의 타파'를 외치며 외부 인재를 영입해 왔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설명이다.
지난 9월 롯데GFR 대표에 제일모직과 한섬, 프라다를 거친 신민욱 대표를 영입했고 10월에는 영국 탠저린과 삼성전자를 거친 이돈태 사장을 디자인전략센터장으로 모셨다.
이번 인사에서도 3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롯데물산의 새 대표로 장재훈 존스랑라살(JLL) 코리아 대표를 선임했고 나영호 대표가 물러난 롯데 이커머스(롯데온) 대표로는 박익진 어피니티에쿼티 파트너스 글로벌 오퍼레이션그룹 총괄헤드가 영입됐다. 롯데AMC 대표로는 김소 HL리츠운용 대표가 내정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도 외부 기용이 유력하다.
롯데그룹은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임원인사를 준비했다"며 "전체 임원 규모의 변화는 크지 않으나, 지난해 대비 주요 경영진이 대폭 교체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