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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부담 없이 마셔요"…'K소주' 필리핀 MZ도 홀렸다

  • 2025.05.28(수) 09:00

낮은 가격 경쟁력에도…'진로' 소주 인기
마트부터 식당까지…현지인 접근성 높여
불어오는 한류 열풍…'소맥' 문화도 확산

지난 18일 필리핀 마닐라 '퓨어골드 파라냐케점'에서 안드레아(21)씨가 주류 매대에 진열된 하이트진로의 '진로 소주'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윤서영 기자 sy@

"한국 콘텐츠에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다 보니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소주를 처음 딱 마셨는데, 우리나라 술보다 숙취가 덜한 거 있죠. 너무 신기했어요.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번 마트에 와서 소주를 사요. 저는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은 과일 소주를 좋아해요."

지난 18일 필리핀 마닐라 소재 퓨어골드 파라냐케점에서 만난 안드레아(21)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드레아 씨는 이곳에 방문하자마자 주류 코너부터 찾았다. 비어있는 초록색 장바구니에 가장 먼저 담은 건 '딸기에 이슬'이었다. 이후에도 함께 온 친한 언니와 연신 매대를 기웃거리더니 이번엔 '참이슬 후레쉬' 두 병을 더 집어들었다.

안드레아씨는 "깔끔한 느낌의 소주를 선호하는 언니를 위해 오늘은 참이슬도 같이 사려고 한다"며 "필리핀에는 독한 술이 워낙 많은데 참이슬은 이에 비해 도수가 낮아 부드럽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필리핀 대형마트에서는 안드레아씨처럼 'K소주'를 구매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4개가 한 묶음으로 된 과일 소주를 카트에 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명 '빨간 뚜껑'으로 불리는 '참이슬 오리지널'만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 소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모두 "맑아지는 기분"이라며 입을 모았다.저렴하진 않아도

흥미로운 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도 현지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필리핀 마트에서 파는 과일 소주와 참이슬의 용량은 360㎖로 같다. 가격의 경우 마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병당 100~120페소(약 2480~2970원)에 판매됐다. 특히 참이슬 한 병은 현지 대표 맥주인 '산 미겔'을 두 캔 사는 것보다 더 비쌌다.

필리핀 마닐라 SM몰 내 마트에 진열된 '산 미겔' 맥주들./사진=윤서영 기자 sy@

그렇다고 소주와 함께 스피릿 주종으로 분류된 다른 증류주보다 싼 포지션도 아니었다. 일례로 하이트진로가 수출용으로 내놓은 '진로24(700㎖)'의 가격은 295페소(약 7300원)다. 필리핀의 국민 브랜디로 불리는 '엠페라도르'의 라이트(750㎖) 한 병을 마시고도 남는 가격이다. 한 마디로 현지 소비자들에게 K소주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저렴한 술'이 아니라는 의미다.

김수환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 팀장은 "마트는 현지 소비자들이 많아 과일 소주를 찾는 수요가 레귤러(일반) 소주보다 조금 더 많다. 매출 기준으로 보면 6대 4 정도 된다"면서 "로컬 소주보다는 60%가량 비싸게 책정됐음에도 수요가 높은 걸 보면 소비자들이 가격 면에서 부담을 크게 느끼진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 SM몰 내 마트에 입점된 하이트진로의 주류 제품들./사진=윤서영 기자 sy@

무엇보다 한국 소주는 이른바 '사리사리 스토어(동네 작은 가게)'에서 200~500원 더 비싸게 팔린다. 마트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다음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되파는 상인이 많아서다. 소비자로선 편리하고, 상인의 경우 이윤을 남기면서 판매가 가능한 만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현지 가이드 휴고씨는 "동네에서 마트까지 가기 위해 내야 할 차비를 고려하면 가격은 거기서 거기"라며 "필리핀은 일반 서민들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할 정도인 만큼 소주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삼쏘'로 대동단결

다음 날 저녁에는 마닐라 마카티 지역의 유흥 시장을 방문했다. 이 중 현지에서 인기 있는 한식 프랜차이즈 '삼겹살라맛'에 들렀다. 오후 5시만 하더라도 두 테이블 밖에 차있지 않았던 이 식당은 오후 8시경 이미 만석이었다. 한류의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필리핀 음식 '리엠뽀'가 한국의 두꺼운 삼겹살과 유사해 현지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한 몫한 모습이었다.

지난 19일 필리핀 마닐라 '삼겹살라맛'에서 랄리(29)씨와 골디(21)씨가 친구들과 진로 소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사진=하이트진로 제공

식당 입구 근처의 한 테이블에 놓인 '초록색 병'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참이슬 후레쉬부터 청포도·딸기·복숭아 등 과일 소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필리핀 식당에서 익숙한 한국 소주를 보니 유독 반가웠다. 이 중에서도 K드라마를 보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랄리(29)씨는 '후레쉬 러버'였다. 삼겹살과 떡볶이, 어묵 반찬과 잘 어울린다는 게 선호하는 이유다.

옆에 앉아있던 골디(21)씨는 삼겹살과 소주의 조합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농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소주를 즐긴다"며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좋아하는데, 이를 위해 한 달에 8~9병 정도의 소주를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입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소맥(소주+맥주)'을 제조하는 장면도 보였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5개의 유리잔에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서 따랐다.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다가도, '따가이(건배)' 소리가 나오면 서로 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고깃집 분위기였다.

지난 19일 필리핀 마닐라 '삼겹살라맛'에서 진행된 '진로라이브'./사진=윤서영 기자 sy@

이날 삼겹살라맛에선 현지형 콘텐츠 '진로라이브'도 엿볼 수 있었다. 진로라이브는 하이트진로가 국내에서 10년간 운영해온 대표 브랜디드 콘텐츠 '이슬라이브'를 필리핀 문화에 맞게 현지화한 콘텐츠다. 첫 선을 보인 진로라이브에는 필리핀 힙합 듀오 'GY(Gab & Yen)'가 출연했다. 이들은 삼겹살과 소주를 곁들인 술자리에서 토크와 라이브 공연을 통해 소비자들과 소통했다.

하이트진로는 앞으로도 현지화 마케팅은 물론 가정과 유흥 채널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필리핀 가정 시장에서 소주 비중은 71%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여기에 필리핀은 외식 문화가 활발한 만큼 지속적인 매출 성장을 꾀하기 위해서는 유흥 시장 공략이 필수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성숙한 주류 시장 중 하나"라며 "현지화 전략을 더욱 강화해 필리핀 법인이 전 세계적으로 '진로의 대중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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