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공직 휴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처음엔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관치’ 꼬리표가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전봇대 규제 뽑기’로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의 원조 격이다. 현대건설 사장 등 CEO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서 그의 관치 이미지는 득 될 게 없었다.
2008년 2월까지 옛 재정경제부 1차관을 지내고 정권 교체와 맞물려 관직을 떠났다. 이후 2년 넘게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로 일했다. 고위 공직을 물러나고 로펌으로 발길을 돌리는 보통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많은 사람이 ‘공직자의 꽃 장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 전 위원장을 보면서 반신반의할 때쯤 화려하게 공직으로 돌아왔다.
▲ 2011년 1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김석동 금융위원장. 그는 취임 1개월여부터 부실 저축은행들을 정리하기 시작해 그해 9월 일차적인 마무리를 했다. 사진은 9월 18일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영업 정지할 부실 저축은행 명단을 발표하는 모습. |
그의 전공인 금융 부문으로, 그것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구조조정을 위해 다시 투입됐다. 이번엔 그의 관치 전력은 플러스다. 확실하게 불을 끌 소방수로 그만큼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이도 드물었다. 그가 금융위원장으로 복귀한 2011년은 전 세계가 격동의 시대였다. 유로존(PIGS) 경제의 붕괴 파장으로 미국마저 디폴트 위기에 빠지려는 국면이었다. 그해 9월엔 월가 시위(Occupy)로 정점을 찍었다.
그는 2011년 1월 금융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건설 경기 악화로 어려워진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취임 1개월여 만에 당시 저축은행 중 가장 컸던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저축은행을 정리해 들어갔다. 그가 왜 다시 부름을 받았는지 확실히 각인시킨 저축은행 구조조정이었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자 다시 가계부채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게 부활한 김 전 위원장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캐치프레이즈는 부담스러웠다. 경제가 잘될 거라는 희망을 줘야 할 정권 초기에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이미지도 마이너스 요인이었을 게다. 야당보다 더 껄끄럽다는 친이-친박 계파 경쟁에서 이명박 정부의 장관이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을 터다.
◊ 학계선 논란이지만, 통일대박론과 맞물린 고대사
그는 2011년 1월 금융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건설 경기 악화로 어려워진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취임 1개월여 만에 당시 저축은행 중 가장 컸던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저축은행을 정리해 들어갔다. 그가 왜 다시 부름을 받았는지 확실히 각인시킨 저축은행 구조조정이었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자 다시 가계부채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게 부활한 김 전 위원장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캐치프레이즈는 부담스러웠다. 경제가 잘될 거라는 희망을 줘야 할 정권 초기에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이미지도 마이너스 요인이었을 게다. 야당보다 더 껄끄럽다는 친이-친박 계파 경쟁에서 이명박 정부의 장관이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을 터다.
◊ 학계선 논란이지만, 통일대박론과 맞물린 고대사
기자와 오랜만의 통화에서 그는 “그동안 못다 한 여행도 하고 고대사 강의로 바빴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고대사와 관련한 칼럼을 두 군데 매체에 연재하고 있다. 고위 경제 관료 출신인 그의 조금은 생뚱맞은 고대사 관심은 사실 논란도 많다. 지난달 2일엔 이명박 정부 시절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인사들이 만든 선진한반도포럼에서 이 내용을 강연(?)하기도 했다.
그의 고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민족적 자긍심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의 연구로는 기마 유목민에서 출발하는 우리 민족은 지금 중국 땅의 상당 부분을 호령했다. 만주 땅을 비롯해 넓게는 크림반도까지 나아간다. 주몽을 비롯해 고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얘기가 거침없는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땐 소름이 돋는다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런 고대사 관점이 드라마 소재로만 그친 것은 아니다.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방문에 동행하면서 관심을 끈 소설가 황석영 씨의 당시 주장도 비슷하다. 그는 ‘몽골+투 코리아’라는 몽골 연합론을 제시했다.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이를 ‘알타이 경제•문화 연합론’으로 말하기도 했다.
▲ 2009년 5월 14일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소설가 황석영 씨. (사진=청와대) |
당시엔 특히 황석영 씨의 유라시아 특임 대사 논란에 이어 2010년엔 문화부 장관 입각설 등으로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를 들끓게 했다. 일명 ‘황석영 파동’이다. 진보 진영에선 ‘중견 문인의 소영웅주의’라고 비판했고, 보수 진영에선 ‘대통령을 누가 만들었느냐?’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김석동 전 위원장이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인 것은 꽤 됐다. 금융위원장 시절에도 틈만 나면 그의 고대사 초고 격인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의 DNA’라는 소책자를 선물하곤 했다.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로 일하면서도 이 연구를 이어 나름대로 완성본을 내놓고 강의도 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달콤하지만, 논란도 많은 관점이다.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학계에선 특히 그렇다.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맞서야 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국 방문과 한국 자본의 진출과 맞물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좌우합작' 상고사 앞, 위기의 역사학계(미디어스)
이명박 정부 시절 황석영 파동 때처럼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을 다시 부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그때와 비슷하게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외교와 교묘히 맞물려 있는 사실도 부인하긴 어렵다.
▲ 박근혜 대통령이 9월 24일(현지시각) 뉴욕 유엔(UN)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제69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의 평화통일 정책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대북·외교 정책을 설명하고, 남북통일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
◊ 오케스트라 이사장으로 워밍업?
그런 그가 최근엔 곧 창단 공연을 앞둔 헤럴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사장을 맡아 다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금융경제 장관을 지낸 고위 관료가 고대사 연구에 이어 이번에 오케스트라 이사장이라니? 여기저기서 보폭이 참 넓기도 하다는 얘기가 쏟아진다.
그래서 물어봤다. “아, 그거요.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분들이 그쪽에 좀 계시는데, 신경 좀 써달라고 해서 잠시 명예직으로 맡은 거예요. 이번에 만들어진 오케스트라다 보니 행정적인 문제가 좀 있어 등기를 하긴 했는데,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쉴 만큼 쉰 것 같은 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잡고 계세요?” 내친김에 물었다. “글쎄, 지금 고대사 강의 재밌는데…. (잠시 뜸들이더니) 이제 5개월 남았잖아요. 제척. 취업해야죠.” 오케스트라 이사장으로 워밍업을 시작한 듯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