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는 원론적인 발언이지만 금융시장에선 연내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 총재의 발언이 추가 금리 인하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해선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진단했다. 미국이 연내 금리를 올리긴 하겠지만, 속도가 완만할 것으로 보여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 “금리 수준 하한선 아니다”
이 총재는 17일 한국은행 국정감사 답변에서 “이론적으로 명목금리 하한선이 존재한다”면서 “현재 금리 수준이 그 하한선에 도달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둔 상태에서 정책금리 여력이 남아 있느냐는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이 총재의 답변은 앞으로 필요하면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는 원론적인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도 “앞으로 금리 정책은 지금 어느 방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모든 상황을 다 감안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역으로 금리가 하한선에 도달했다고 말하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금융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정책의 여지는 어느 정도 남겨둬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도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선 “현재 금리는 경기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완화적인 수준이다. 국내 경제가 애초 전망했던 성장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금리 인상을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 시장에선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
반면 금융시장에선 해외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중국의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경기가 다시 침체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우리 경제가 완만하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회복세가 미약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총재가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서 큰 변수가 안된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할만하다. 그는 “미국이 연내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이지만, 연 4회 이내로 그 속도는 점진적일 것으로 본다”면서 국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 않으리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모든 선진국이 긴축을 한다면 신흥국은 엄청난 영향을 받겠지만, 유로존과 일본은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자금 유출입 상황이 예전보다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공동락 코리아에셋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가 올해 중에 추가로 1회 정도 더 인하될 수 있다”면서 “이미 사상 최저치인 금리 수준과 가계부채 부담이 상존하지만 실질금리 차원에서 추가 인하 여지가 있고, 경제 전반의 모멘텀 부진을 해소할 카드로써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 추가 금리 인하 사전 정지작업?
이 총재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 사정이 더 나빠지면 바로 기준금리를 더 내리겠다는 신호라는 얘기다.
최근 이 총재와 만난 최 부총리 역시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한국은행이 바로 금리를 따라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재처럼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란 이유를 내세웠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대해선 “국내 사정을 종합해 한국은행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당분간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금리를 내릴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면 금리 인하 효과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후 네 차례 금리 인하가 올해 성장률에 미친 영향은 겨우 0.18%포인트에 불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2009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이 총재 자신도 “금리 인하가 금융 경로까지는 작동했는데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로 충분히 이어지진 못했다”고 평가했다.
◇ 화폐개혁 실제로 추진할까?
이 총재는 국정감사 답변에서 통화 단위를 절하하는 화폐 개혁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달러 대비 환율을 네 자리로 쓰는 등 경제 규모에 비교해 화폐 액면의 숫자가 너무 크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10여 년 전에 이 문제를 검토했고, 지금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대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면서 “이 문제는 중앙은행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만큼 앞으로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화폐 개혁이 당장 추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3월 화폐 개혁의 필요성을 묻는 말에 “엄청난 불확실성이 있다. 경제는 불확실성이 가장 위험하다”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