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이 주최한 디지털 보험시장에 대한 세미나가 있던 지난 19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차남 신중현 교보라이프플래닛 디지털전략실장이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이날 주제발표는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가 맡아 디지털 보험업계의 현 상황을 짚고 교보라이프플래닛의 전략과 디지털 보험사의 성장을 더디게 하는 규제 환경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자연히 시선은 김 대표의 입에 먼저 쏠렸다. 김 대표는 세미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10여년 동안 교보라이프플래닛은 디지털 보험에 집중해왔고, 자체적으로는 저축보험을 넘어 장기보장성보험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등 사업여건이 개선돼야 하며, 흑자전환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관련기사: 김영석 교보라플 대표 "처음엔 11% 정도 디지털 전환 기대…현실은"(6월20일).
김 대표와 짧은 질의응답이 끝난 뒤 기자들의 시선은 신 실장으로 옮겨갔다.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교환하는 신 실장의 모습은 거리낌이 없었다. 하반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나 상품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김 대표께서 오늘 발표하실 내용에 다 들어있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영석 대표와 해외 행사 참석…싱가포르선 발표도
신 실장이 기자들 앞에 모습을 비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는 '본격적인' 경영 행보라기보다는 디지털 보험사의 핵심인 디지털전략실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내부에서 축적해온 경험과 역할이 점차 외부로 확장되는 흐름의 일부로 보인다.
앞서 그는 김 대표와 함께 최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에서 개최된 인슈어테크 콘퍼런스 'ITC Asia 2025(InsureTech Connect Asia 2025)에 참석해 디지털 보험사로서 그동안의 고객 중심 혁신 사례와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전 세계 보험업계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자리는 글로벌 보험업계 리더, 인슈어테크, 투자자들이 모여 보험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논의하는 보험 관련 아시아 최대 행사다.
신 실장은 최고제품경험책임자(CXO) 포럼과 데모 스테이지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비대면 상담 및 추천 서비스 고도화 △데이터 기반의 고객 리스크 관리 △기존 상품 개발 기간을 단축한 급부 조합형 상품 개발 플랫폼 △보험 견적서 비교 서비스 등 국 교보라이프플래닛의 디지털 혁신 사례를 소개했다.
또 회사의 헬스케어 플랫폼인 '라플레이'를 통해 고객 데이터 확보 및 관계 강화를 통한 마케팅 활동 지원 사례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무엇보다 라플레이를 리뉴얼 오픈한 지 12개월 만에 사용자를 2배 이상 성장시킬 수 있었던 노하우와 플랫폼 활성화 전략에 대한 계획을 공유했다.
신 실장은 지난해 7월 교보라이프플래닛이 홍콩 생명보험사 FWD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자리에 김 대표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FWD는 개발 중인 생성형 AI 보험 솔루션 고도화를 위해 전략적 한국 파트너로 교보라이프플래닛을 선택하고 한국 이후 다른 나라에서의 협력 기회도 함께하기로 했다.
백팩에 노트북…세미나 앞자리서 발표 경청
신 회장의 의사결정은 유독 신중하기로 유명하다. 신 실장도 미국 컬럼비아대 졸업 이후 일본 SBI그룹의 인터넷 금융자회사 SBI손해보험, SBI스미신넷은행에서 경험을 쌓고 2020년 교보라이프플래닛에 입사했다. 디지털전략파트 매니저부터 시작해 디지털전략팀장을 거쳐 지난해 4월 디지털전략실이 확대·개편되며 디지털전략실장으로 선임됐다.
신 회장 장남인 신중하 상무 역시 2015년 교보생명의 자회사인 KCA손해사정에 입사해 실무부터 경험했다. 이후 2021년엔 교보정보통신 디지털혁신 신사업 팀장을 맡았고 2022년에야 교보생명 그룹디지털전환 담당에 선임됐다. 자회사를 거쳐 차근차근 역량을 쌓고 지난해 말 교보생명 정기인사에서 KCA손해사정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상무로 선임됐다.
보험연구원에서 있던 세미나 당일 신 실장은 직접 발표에 나서진 않았다. 발표 전 가장 앞자리에 앉아 김 대표의 발언과 토론 내용을 꼼꼼히 지켜보고, 세미나 종료 후 백팩을 메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모습은 실무 중심의 학습 과정에 가까워 보였다.
김 대표와 함께 국내외 주요 현장을 경험하며 전략 감각을 키우고 있는 그는 '오너일가'라는 수식어보다 안목을 넓히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룹 안팎의 관심보다 실질적 역량 축적에 무게를 두는 신 회장 특유의 경영 스타일을 닮은 행보로도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