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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가계부채와 '판단' 리스크

  • 2017.03.14(화) 15:32

한국은행, 가계대출 통계 오류 파장
2금융권 가계대출 '과소 평가' 지적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일을 그르치는 건 의외로 작은 디테일 오류에서 비롯된다고들 하죠. 금리 0.1%라는 작은 숫자에 어마한 자금이 순식간에 들어오고 빠지는 금융시장에선 더욱 새겨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디테일을 놓치기 쉬운 때는 언제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큰 흐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때 작은 오류를 놓칠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숲을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무도 두루 살펴야 할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또 디테일에 더욱 신경 써야 할 때는 바로 안팎의 환경이 불확실할 때입니다. 일이 원활하게 풀리고 있을 때는 작은 오류가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겠지만, 불안한 상황에서는 언제 어디서 작은 오류가 큰 재앙을 만들지 모릅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 후 '불확실성'과 함께 '디테일'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이 총재는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강조하면서 "변화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고 필요하면 대응책을 적기에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총재의 당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금융·통화 당국이 '디테일'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에서 그렇습니다. 1300조원을 훌쩍 넘겨버린 '큰 흐름'에 압도돼서 그런 걸까요.


◇ 한국은행, 저축은행 대출 통계 오류로 담당자 '징계'

얼마 전 한국은행은 권역별 가계대출 통계 자료를 발표하면서 '작은' 수치에서 오류를 냈습니다. 지난 1월 저축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을 사상 최대치 수준인 9775억원으로 발표했다가, 뒤늦게 실제 증가액은 5038억원이라고 정정한 겁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순수 가계대출'과 '기타 가계대출'로 나눠서 가계대출 현황을 집계했습니다. 이 기타대출에는 '영리 목적의 영농자금 가계대출'이 있는데요. 이는 순수한 가계대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밖으로 발표하는 가계대출 통계에서는 제외했습니다. 그런데 저축은행 측에서 이번에는 영리 목적의 대출도 가계대출로 보겠다며 이를 더한 수치를 건넸습니다. 집계 기준을 바꿨다는 설명도 했다는 게 저축은행 측의 설명입니다.

전체 가계부채 '1300조원'에서 겨우 5000억원 가량의 차이는 작은 것 같지만, '디테일'의 차이로 시사하는 의미는 확 달라집니다. 만약 저축은행 가계대출 증가가 9775억원이었다면, 이는 사상 최대치입니다. 금융당국이 은행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풍선효과로 대출 수요가 저축은행에 쏠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038억원을 적용할 경우 증가 규모는 전달과 비슷해집니다. 풍선효과가 심하다고 해석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결국, 한국은행은 관련 담당자를 문책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은행은 14일 담당자와 책임자에 대해 교체와 직위해제를 포함한 징계를 내리고, 통계오류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밀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가계대출 집계 방식 제각각…자영업자 대출은?

한국은행은 그러면서 저축은행 측과의 소통 부족을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통 부족에 따른 한국은행 실무자의 단순 실수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축은행이 왜 갑자기 가계대출 수치를 다르게 줬는지 들여다보면 그렇습니다.

한국은행은 저축은행뿐 아니라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우체국 등 다른 금융사에서도 가계대출을 '순수 가계대출'과 '기타 가계대출'로 분류해서 받아 왔다고 합니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이런 구분 없이 가계대출 통계를 집계했다고 합니다. 저축은행이 넘긴 수치는 '금융감독원 제출용'으로도 볼 수 있는 겁니다.

결국 같은 가계대출인데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집계했던 기준이 달랐던 겁니다. 이러면 가계부채에 대한 정책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기타대출이 많이 늘어났다면, 한국은행이 내놓는 자료에서는 대출 증가분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금감원 자료에서는 증가분은 반영되겠지만 어떤 항목에서 대출이 늘었는지 세세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얼마 전 금융당국이 우리나라 자영업자 대출 통계를 '정비'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영업자 대출이 급격하게 늘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기관마다 집계 방식 등이 달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이 따로 집계하고 있던 '영리 목적의 가계대출' 역시 어떤 면에서는 자영업자 대출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수치를 정비하겠다는 겁니다.

문제가 되자 뒤늦게 자영업자 대출 통계를 정비한다는 것도 비판받을 만한 일인데, 금융당국은 '여유로워' 보입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 통계 정비에 대해 "금방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금감원이 최대한 신속하게 정비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한국은행과도 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은행의 통계 오류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왜 그런 식으로 집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우리도 그냥 수치를 받아보고 있는 처지"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애초 범정부 차원의 자영업자 통계를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장담한 것만큼 관계 당국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모습입니다.

◇ "2금융권 대출 증가 과소평가" 지적도

디테일의 오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분석이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리스크가 변화하고 있다'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통계적 착시효과'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부터 은행 가계 대출을 조였는데도 불구하고 증가세가 꺾이지 않아 추가적인 규제책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사실 2015년 상반기에 시행한 안심전환대출을 고려해서 보면,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지난해 초에 꺾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안심전환대출로 2015년 하반기에 은행 대출의 일부가 기타금융기관으로 이전됐고, 이로 인한 기저효과 탓에 마치 은행 대출이 지난해 내내 '급증'하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보였다는 지적입니다.

▲ 안심전환대출 효과 보정 전후의 기타금융기관 가계대출 증가율. 자료=LG경제연구원

반대로 은행 대출 수요가 2금융권(기타 금융기관)으로 쏠리는 '풍선효과'는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심전환대출로 인해 2금융권의 대출 규모가 순간적으로 늘어났고, 이 기저효과 때문에 2금융권 대출 증가세가 실제보다 낮게 측정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가계대출은 그동안 금융사들 입장에선 담보가 있어 '우량하다'고 보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했습니다. 집값이 계속 오르니 대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물론 작은 오류가 '대세'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지난해 내내 부채 규모 증가세가 너무 빨랐던 데다가, 집값 상승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채 부실화 가능성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는 눈이 많아지고, 작은 오류가 더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호시절의 '거친' 정책 대응에서 벗어나 더욱 섬세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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