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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감원, '대출금리 조작'에 칼 왜 못뽑나

  • 2018.06.25(월) 15:53

내규 위반해 금리 산정한 은행 사례들 적발
금감원, 은행명 공개않고 제재도 안해
당국, '내규 위반' 처벌 못하도록 규정 바꾼 탓

기자 : 소비자 입장에선 범죄다. 은행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왜 실명을 공개하지 않나?
금융감독원 관계자 : 금감원 내부 규정이나 제약사항 때문에 알려드릴 수 없다. 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21일 금감원에서 진행된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결과' 브리핑에서 출입기자와 금감원 관계자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날 기자들은 부당하게 대출금리를 산정한 은행의 실명을 공개하라고 여러차례 요구했지만 금감원은 내부 규정을 이유로 거부했다.

금감원이 적발한 대출금리 산정 사례는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었다. 한 은행 대출창구는 소득이 있는 한 직장인을 소득이 없다고 입력했고, 또 다른 은행창구는 담보대출을 받는 개인사업자에 담보가 없다고 입력해 대출금리를 더 높게 책정했다. 이날 점검 결과를 발표한 오승원 금감원 부원장보가 "깜짝 놀랐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사실상 은행이 금리를 조작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번 점검 대상은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SC제일·시티·부산은행 등 9곳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금융소비지가 '내 금리는 괜찮을까'하고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는 "큰 틀에선 문제가 없지만 이번 검사 결과 상당수 은행에서 부당한 대출금리가 적발됐다"는 모호한 말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금감원은 올해초 은행 채용비리 검사 발표 과정에선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최고경영자 이름을 언론에 '용감하게' 공개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들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 발표가 오락가락하니 '원칙이 없고 감정적이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금감원이 사실상 금리를 조작한 은행에 대해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지고 금리산출 과정에 금융당국이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대출금리 산정 과정에서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지키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규제할 방법은 없다.

 

2011년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 은행연합회 등은 합리적인 대출금리 산정을 위해 모범규준(best practice)을 만들었고, 은행들은 이 모범규준을 내규에 반영해 대출금리를 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의 내규 위반만으로 금융당국이 제재할 수단은 없어졌다.

금감원이 내규에 대해 직접 제재하지 못하는 이유는 2016년 개정된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에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금융회사가 법규 위반이 아닌 내규나 행정지도를 위반할 경우 제재할 수 없게 규정을 고쳤다. 내규 위반만으로 금융회사를 규제할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25일 최종구 위원장은 가계부채관리점검회의에서 은행장들을 앞에 앉혀두고 "일부은행이 소비자에게 가산금리를 부당하게 부과한 사례가 있었다"며 "은행들은 피해 금액을 확정해 환급하고 내규위반 사례의 고의성·반복성을 엄격히 조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수장이 은행장들에게 자체 조사를 '부탁'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금감원 관계자는 금리조작 은행을 제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해 감사원 지적 사항때문에 금융기관의 내규 위반을 제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충분하지 못하다.

 

지난해 감사원은 금융사 검사와 관련해 금감원에 2016년 개정된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을 따르라고 했다. 규정을 넘어 검사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원론적인 지적이다.

 

문제는 감사원의 지적과 별개로 금융당국 스스로가 금융사 내규 위반을 제재할 '칼'을 버렸다는 점이다. 대출금리를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것은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내규를 위반해 금리를 조작하는 행위마저 '자율'의 영역으로 두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

 

▲ 25일 금융위에서 열린 가계부채관리점검 회의에 허인 국민은행장, 손태승 우리은행장, 함영주 하나은행장, 위성호 신한은행장 등이 참석했다.[사진 = 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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