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손보는 복수노조 체제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화손해보험지부(이하 1노조)와 한화그룹 13개 계열사 노동조합 연대체인 한화그룹노조협의회(한화노협) 산하 한화손해보험노동조합(이하 2노조)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교섭권을 가진 1노조가 28일 사측이 긴급 제시한 최종안에 대해 면담 후 파업을 유보하면서 노사(勞使)간 갈등이 노노(勞勞) 갈등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 파업 잠정연기…내달 4일 사측 최종안 찬반투표
한화손보 1노조는 지난 29일 오후 5시가 넘어 노조원들에게 공지를 통해 "긴급 전국 분회총회를 연 결과 30일 예정됐던 파업투쟁을 잠정 유보한다"고 밝혔다. 또 다음달 4일 사측이 제시한 최종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모바일)를 실시한다고 전했다.
한화손보 관계자에 따르면 1노조가 받아들인 회사측 최종안은 기존 사측이 제시했던 안에서 일시금(위로금) 100만원이 추가된 규모다. 당초 1노조는 지난 5월부터 사측과 교섭을 추진해 16차례 임단협을 거쳤지만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사측은 기본급의 1% 인상을 제시했고 노조에서는 순이익 증가분을 반영해 기본급 10% 인상을 요구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결정 후 사측이 임금인상률 2%, 일시금 100만원으로 안을 재조정 했으나 여전히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 교섭권 둘러싸고 노노갈등
2노조는 복수노조가 연대한 파업을 예고했던 상황에서 일시금 100만원 인상의 사측 최종안을 받아들인 것은 사실상 1노조의 파업의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1노조가 대표 교섭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결탁해 부당한 방법으로 교섭권을 가져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복수노조의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대표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면 과반수 노조가 교섭대표노조를 맡게 된다. 지난 2월 교섭대표노조 선정 과정에서 2노조 노조원수는 680명 가량으로 670명 수준이던 1노조를 앞서 단체교섭권을 가져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노조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하면서 조합원수 집계가 다시 진행됐다. 이 결과 1노조 조합원수가 50명 가량 늘어나 3월 1노조가 단체교섭권을 획득했다.
2노조는 이 과정에서 1노조가 2노조 조합원 8명을 회유해 빼가고 무기계약직에 해당하는 상담직들에게 합의되지 않은 직군전환을 조건으로 40여명 조합원을 추가로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노조는 파업찬반투표 대상자 기준 1노조원수는 684명, 2노조는 66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노조가 지노위에 이의신청을 한 후 2노조원 8명을 빼간 점을 감안하면 노조원 수가 같았고 합의되지 않은 조건을 잘못 가입한 무기계약직을 제외하면 조합원이 더 많다는 주장이다.
또 직군전환 합의가 없었음에도 이를 약속하는 자리에 회사측 담당자가 나서서 직접 설명을 하는 등 1노조가 교섭권을 가져가는데 사측이 협조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1노조가 조합비를 내지 않은 직원들까지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등 이미 탈퇴한 노조원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포함해 중앙노동위원회에 명단을 제출해 노조규정을 위반했다고 제기하고 있다.
김기범 한화손해보험노동조합 위원장(2노조 위원장)은 노조원들에게 성명을 내고 "구노조(1노조)에서 회사가 던진 2% 기본급, 200만원 일시금 지급으로 파업을 철회하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다시 진행한다"며 "구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면 우리만으로 파업을 할 경우 불법이 돼 어쩔수 없이 파업을 유보한다"고 전달했다.
김기범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만족할 수 없는 안이니 파업을 지속하자고 호소했으나 소용 없었다"며 "처음부터 파업할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럴려고 탈퇴한 조합원, 조합비를 내지도 않는 허수의 조합원들까지 동원해 교섭권을 강탈해 갔나"라고 말했다.
2노조는 앞서 86%의 찬성으로 파업이 결정돼 조합원들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한 만큼 더이상 찬반투표를 묻지 않고 회사 최종안에 대해 공식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구노조의 힘을 빌리지 않고 교섭, 투쟁, 파업을 할 수 있도록 교섭권을 갖고 오자"고 노조원들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김재영 한화손해보험지부장(1노조 위원장)은 "사측이 긴급 교섭을 요청했고 만족스런 안은 아니지만 파업을 잠정 유보하고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의한 것"이라며 "2노조가 오히려 교섭, 쟁의권이 있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파업을 앞두고 2노조에 상경투쟁을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역별 분회투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파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을까하는 부담도 있었다"며 "양 노조가 협력이 잘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섭권 획득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해서는 "지노위, 중노위에서 모두 결정된 것이며 (2노조가) 행정심판도 제기하지 못한 건"이라며 "계약직 조합원들의 경우 조합비를 받지 않고 정규직 전환때부터 조합비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 "노노갈등 폐단 심각" 자성 목소리도
노노간 갈등이 더 큰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노사 교섭력을 약화시킨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재영 지부장은 "총파업과 관련해 양 노조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현장에 혼란을 가져온 게 사실"이라며 "상대 노조원이 파업에 참석하지 않아 나만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간 갈등이 조합원 갈등보다 앞서면서 폐단이 크다"며 "노사 투쟁보다 조합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측과의 교섭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노노간 한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양 노조간 불신의 골이 깊은 만큼 해결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기범 위원장은 "지노위에서는 본인들이 조합원수를 일일이 확인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라며 "1노조가 거짓으로 일관하고 교섭권을 가져간 과정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탈퇴한 조합원 숫자를 알고도 중노위에 허수 가입자를 포함한 서류를 넣은데 대해서는 차후 경찰에 고발조치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12월 4일 최종안 찬반투표 결정에 따라 다시 파업진행 여부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