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단독실손보험'에 한해 내년 상반기부터 소비자가 손해사정사 선임을 원할 경우 보험사는 원칙적으로 선임에 동의해야한다. 이 때 손해사정사 선임 비용도 보험사가 지불한다.
이미 보험업법 및 보험업감독규정상으로는 보험계약자가 손해사정 착수 전이나 후에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손해사정 전 보험사 동의를 얻은 경우 보험사가 손해사정비용을 지불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동의를 받기 어려워 사실상 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특히 대부분의 소비자는 보험금을 받기 전 이를 산정하는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 자체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보험사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개인이 선임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의 활용성이 낮았다.
더욱이 일부 독립손해사정사(이하 독립손사)들의 경우 보험사고 피해자가 밀집한 병원이나 정비공장 등을 방문해 '보험금을 더 많이 받아주겠다'며 손해사정액을 과다하게 산정하거나 불필요한 분쟁 및 민원을 유발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해 보험업 자체에 대한 소비자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독립손사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손해사정 물건이 보험사가 만든 손해사정 자회사에 위탁됨에 따라 소비자를 위한 보험금 산정 보다는 보험사의 입맛에 맞는 보험금이 산정돼 왔다고 반박하는 등 이해관계자간 불신과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손해사정사의 보험금 삭감 실적을 보험사가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등 위탁구조 자체가 보험사에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 및 보험업계, 생·손보협회, 보험연구원, 손해사정사회 등이 모여 올초부터 손해사정 관행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고, 단계적으로 소비자의 독립손사 선택권을 넓히는 동시에 위탁기준을 신설하는 등 건전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 손해사정업무 위탁기준 신설, 직접 선임권도 강화
우선 위탁업체 산정시 △전문인력 보유현황 △개인정보보호 인프라 구축 △민원처리현황 등 객관적 지표로 위탁업체를 평가, 선정토록 했다. 아울러 보험사가 위탁 수수료 지급시 보험금 삭감 실적을 반영하거나 합의를 요구하는 등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을 제한키로 했다. 금융위는 이러한 내용을 내년 상반기 감독규정에 반영할 방침이다.
또 단독실손보험에 한해 소비자가 원할 경우 보험사가 비용을 부담해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는 내용을 동의토록 했다. 동의하지 않을 경우 동의하지 않는 이유 등을 소비자에게 상세히 안내해야 한다. 당국은 소비자 선임권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경우 다른 보험으로 동의요건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큰 틀만 마련…수수료 등 합의는 이제부터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이 같은 내용을 시행하기 위한 가장 큰 과제인 위탁손사와 독립손사간 수수료 차이 문제 등이 아직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시체계, 위탁기준 적용 등 세부내용들도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와 손해사정사간 이해관계 차이가 크고 불신과 불만이 깊은 만큼 논의가 잘 되지 않았는데 국회 압박도 있다 보니 부랴부랴 큰 틀만 정해 발표된 상태"라며 "아직 합당한 수수료 지급체계 등 세부적으로 정해야 할 사항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소비자가 선정한 손해사정사 선임 비용 지불에 따른 이중비용 부담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이중비용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있다"며 "공신력 있고 믿을만한 손해사정이 이뤄졌을 경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별도로 손해사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이견 차이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손보험은 그나마 분쟁의 소지가 작고 특약이나 정액부분을 제외함에 따라 (소비자 선임권이 해당하는)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영향도 파악도 어려운 상태로 이를 전체적으로 확대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위탁기준도 노하우나 경쟁력 등 객관적 지표로 나올수 없는 정성적인 것들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며 "복합점포가 시범실시한 후 실패하며 사그라들었던 것처럼 이 역시 영향을 미리 예측하긴 어렵고 진행해보고 효율을 판단해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영세 독립손사 도태 등 우려의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오히려 영세한 독립손사들이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보험사 자회사들이 타사 일감을 끌어올 가능성이 높아 독립손사들이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손사업계 관계자는 "독립손사들의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이 가운데 탈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만큼 결격사유가 있는 곳은 배제하되, 일부 대형사에게만 기회가 국한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어려운 수수료 문제의 경우 사실상 풀어지지 않는 매듭을 끌고 가는 격이기 때문에 우선 큰 틀을 정하고 다시 협의를 하기로 한 것"이라며 "일단 시행의 큰 틀을 잡은만큼 서로 긍정적인 방향에서 검토가 이뤄지도록 합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