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제 2의 토스(간편송금 앱)를 만들기 위해 금융결제서비스 문을 활짝 열고 문턱도 낮춘다.
은행권 공동 결제시스템(오픈뱅킹)을 모든 핀테크업체에 개방하고 이용료도 10분의 1 수준으로 내리기로 했다. 핀테크나 은행이 만든 앱 하나로 모든 은행에 이체·송금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장기적으로 간편결제 시장을 국내 전체 결제시장의 20%까지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결제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신용카드 시장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금융결제망 이용료 90% 인하
25일 금융위원회는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혁신방안의 핵심은 금융결제망 개방이다.
결제·송금을 처리하는 금융결제망은 그간 은행만 이용 가능했다. 2016년 오픈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며 '소형 핀테크기업'에만 금융결제망 접근을 허용했지만 문턱은 높았다. 이용료도 건당 400~500원 수준으로 핀테크 업체에 큰 부담이었다.
이 탓에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2017년 지급수수료로 448억원을 냈고 그해 39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권대영 금융혁신기획단장은 "간편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스가 은행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이 서비스를 보시고 열어 주십시오'라며 (제휴를 위한)개별협상을 하는데 3~4년이 걸렸고 수수료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이 문턱을 없애기로 했다. 모든 핀테크 결제사업자가 은행결제망을 이용할수 있도록 올해 중에 오픈뱅킹을 만들고 이용료도 최종 실무협의회를 통해 현재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핀테크업체뿐 아니라 우리·하나·부산·대구·전북은행 등 16개 은행과 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 2개 인터넷전문은행도 오픈뱅킹을 통해 금융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국민은행 계좌를 가진 고객이 신한은행 앱 '쏠'을 통해 출금·이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이용료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인하하는 것으로 대승적 합의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수료 인하 폭이 결정된 셈이다.
기존 은행은 이용료를 90% 낮추면 금융결제망 부문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권대영 단장은 "초기 인프라 투자로 건당 거래비용이 굉장히 높다"며 "현재 연간 100만건의 거래 건수가 앞으로 늘어나게 되면 이용료는 엄청나게 떨어지고 나중에 은행의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픈뱅킹이 전면 개방되면 제 2~3의 토스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기존 은행도 대형 금융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현재 은행은 자기 고객을 대상으로만 결제·송금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전 은행권으로 확대된다.
권 단장은 "(은행이) 플랫폼 하나 가지면 (다른 은행의) 전 계좌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선진국들은 벌써 이런 거래하고 있는데 한국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하고 있다가는 파격적인 혁신자가 들어오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올해 중에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오픈뱅킹을 법제화하고 은행결제망을 이용하는 결제사업자에 대해 이체처리 순서, 처리시간, 비용 등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할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핀테크 결제사업자에 대해 금융결제망에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 규정 등을 개정할 계획이다.
이 밖에 금융당국은 결제자금을 보유하지 않고 정보만으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급지시서비스업(마이 페이먼트 산업)을 도입할 예정이다. 은행 제휴없이 독립적으로 계좌를 발급관리, 자금이체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업도 허용한다. 또 핀테크 결제사업자에 소액 범위내 후불(신용)결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간편결제 이용충전한도를 현재 200만원에서 300만~500만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 "간편결제 확대, 비정상 카드 결제의 정상화"
금융당국이 정책적으로 간편결제 업계를 밀어주면서 카드업계는 수수료 인하와 함께 이중고를 겪게 됐다. 권 단장은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장기적으로 간편결제 점유율이 20%까지 예측됐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 1000조원대 결제 시장중 신용카드가 650조원, 체크카드가 170조원 등 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더욱이 신용카드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권 단장은 "신용카드는 2004~2005년 신용불량자 문제를 일으켰고 수수료 전부를 가맹점에 떠넘기고 있다"며 "이 결제구조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고 정상적이지 않은 결제문화를 정상화 시키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카드사는 빅데이터, 마이데이터 등 비즈니스를 하면 된다"며 "그 정보를 활용하는 융합비즈니스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카드사는 부가서비스 경쟁만하고 판촉에 열을 올렸다. 얼마든지 새로운 영역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날 금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용카드의 외상 결제로 인해 가계건전성에 부정적이고 연간 카드수수료로 부담하는 비용이 11조원에 이르는 등 경제전반에 부담"이라며 "간편결제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인프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카드사가 간편결제 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목된 셈이다.
수수료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신한카드·국민카드·하나카드·현대카드 등 카드업계는 금융당국의 공개적인 카드사 지적에 대한 불편해 하는 분위기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작년부터 카드사 결제 비중을 줄이겠다는 얘기를 해왔다"며 "하지만 탁상공론에서 만들어진 제로페이 등이 사업이 시장에 안착하기 힘들다. 간편결제 시장도 결국 인프라를 까는 데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간편결제로 방향을 정한 것은 이해하지만 카드업이 적응할 수 있도록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