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이체·조회 금융서비스가 외부에 전면 개방된다. 표준방식(API)을 통해 은행의 금융서비스를 다른 은행이나 핀테크 기업에 전면 개방하는 '오픈뱅킹'을 도입하면서다.
오픈뱅킹이 도입되면 은행과 은행 간, 은행과 핀테크 기업 간 벽이 허물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입장에선 은행이나 핀테크회사 앱 하나만으로 모든 은행계좌를 등록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은행은 다른 은행에 계좌를 가진 고객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핀테크 업계에선 제2의 토스가, 은행업계에서 전 은행 소비자를 대상으로한 '국민 금융 앱'이 나올 수 있는 금융플랫폼 빅뱅이 열리는 셈이다.
29일 금융위원회는 오는 30일부터 오픈뱅킹 시범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안'을 발표한지 8개월만이다.
그간 결제·송금을 처리하는 은행의 금융결제망은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2016년 API를 도입하며 '소형 핀테크기업'에만 금융결제망 접근을 허용했지만 문턱은 높았다. 수수료가 건당 400~500원 수준으로 핀테크 업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2018년 지급수수료로 616억원을 냈고 그해 44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은행도 자기 고객만을 대상으로 결제·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금융플랫폼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오픈뱅킹이 도입되면 모든 핀테크 기업과 은행이 18개 시중은행의 이체(출금·입금)와 조회(잔액·거래내역·계좌실명·송금인정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석 달간 오픈뱅킹 사전신청 접수 결과 은행 18개, 대형 핀테크 47개, 중소형 핀테크 91개 등 총 156곳이 오픈뱅킹을 신청했다. 보안점검 등을 통과하면 어느 핀테크 업체나 오픈뱅킹을 사용할 수 있다.
은행의 금융서비스 기능을 외부에 전면 개방하면서 수수료도 최대 20분의 1수준으로 낮아졌다. 출금이체 수수료는 기존 500원에서 50원(중소형 핀테크 30원)으로, 입금이체는 기존 400원에서 40원(중소형 핀테크 20원)으로 인하됐다. 조회 서비스 수수료는 기존 10~300원 수준에서 5~50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핀테크 기업 입장에서 싼 수수료로 은행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송현도 금융위 금융혁신과장은 "수수료를 깎아 주지만 총액 관점에서 보면 거래량이 급증해 수수료가 줄지 않을 수 있다"며 "토스나 카카오페이 등 핀테크가 전 은행 계좌로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그간 은행의 플랫폼은 확장성이 매우 떨어졌다. 은행끼리 계좌를 다 붙이면 플랫폼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점포 확장 없이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우리은행 계좌를 가진 고객이 신한은행 앱 '쏠'을 통해 출금·이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금융플랫폼을 두고 은행이 다른 은행뿐만 아니라 토스 등 핀테크와 직접 경쟁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은행 점포에서 대면거래로 오픈뱅킹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모바일 뱅킹 사용이 어려운 고령층 등이 사전동의를 거쳐 지점 창구 직원의 모니터에 고객이 보유한 다른 은행 계좌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내년에는 오픈뱅킹 참여 금융회사를 상호금융, 저축은행, 우체국 등 제 2금융권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송 과장은 "증권사와는 아직 얘기를 하지 못했다"며 "연내에 시스템이 안착되면 내년초에 증권이나 신용카드 조회 등도 오픈뱅킹 서비스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상의하겠다"라고 말했다.
오픈뱅킹 서비스는 시범서비스 기간을 거쳐 오는 12월18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농협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국민, 부산, 제주, 전북, 경남 등 10개 은행은 오는 30일부터 오픈뱅킹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머지 8곳(산업, 제일, 한국씨티, 수협, 대구, 광주, 케이뱅크, 카카오뱅크)은 순차적으로 도입한다. 핀테크 기업은 보안점검을 받은 뒤인 오는 12월18일부터 서비스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