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송금한 돈을 정부가 대신 돌려주는 제도가 도입을 앞두고 있다.
물론 지금도 착오로 받은 돈은 부당이득이기 때문에 다시 돌려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받은 사람과 연락이 안 되거나,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버티면 개인이 소송을 통해 돌려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가 돈을 잘못 보낸 사람에게 착오송금 채권을 80% 가격으로 사와 피해를 구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한다. 이후 금융기관은 돈을 받은 사람의 개인정보를 예보에 제공하고, 예보는 이를 통해 반환요구나 소송 등을 벌여 돈을 돌려받는 구조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법리는 복잡하다.
개인의 실수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라는 민사절차와 횡령이라는 사법절차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예보기금이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이를 예금자보호를 위한 기관인 예보가 나서는 것이 타당한지, 또 예보가 나선다고 해도 수취인의 연락두절과 송금액을 초과하는 소송비용의 문제 등이 해결될 수 있는지 등이 법적쟁점이다.
25일 '착오송금의 법리와 이용자 보호'를 주제로 열린 제23회 은행법학회 정기학술대회는 이 문제에 대해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해당 행사는 민병두 정무위원장과 은행법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예보가 후원했다.
◇ "개인 실수를 왜" vs "포용적 금융 측면"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총 11만7000여건, 2930억원의 착오송금이 발생했다. 절반가량이 반환되지 못했으며 건당 평균금액은 8만원 수준이다.
예보는 미반환된 착오송금 채권의 82%인 약 4만3000여건의 채권을 대상으로 착오송금 구제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토론자로 나선 임정하 서울시립대학교 법원전문대학원 교수는 "송금일로부터 1년 이내의 5만~1000만원의 착오송금 구제를 통해 연간 착오송금 발생건수의 약 82%, 금액으로는 34%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쟁점 중 하나는 착오송금을 예보가 나서서 예금자보호법을 통해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지다.
심희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착오송금은 본질적으로 사법(私法)적 법률관계"라며 "국가의 후견인적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해 사법적 법률관계에 개입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임정하 교수는 "착오송금은 개인의 실수긴 하지만 금융구조적인 측면에서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사회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포용금융적인 측면에서 서민금융의 확대는 구제방안의 확대도 동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 교수는 "채권매입비용을 채권액의 80% 정도로 하면서 원칙적으로 수혜자인 착오송금인도 비용을 부담(20%)한다"며 "금융회사는 송금거래 안전성과 고객편의 제고, 민원감소 등의 정책적 수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할 만 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재원은 구제사업의 지속 수행을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출연실적은 없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예보 손실 가능성도 제기…독립채산제 운영 건의도
제도를 시행하는 것과 관련된 법리가 해결된다고 해도 운용에 있어서 문제점이 남는다. 특히 제도의 주체인 예보의 손실 가능성이 관건이다.
김홍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 교수는 착오송금제도가 도입된다면 예보의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착오송금액이 100%라고 하면 회수율은 49%에 불과하고 예보의 매입가인 80%를 반영할 경우 31%의 손해가 나온다"며 " 운용비용까지 더할 경우 손해는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개인의 실수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니만큼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예보가 아니라 다른 독립채산제 운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허환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회수율이 50%에 못미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피해를 보전해 사회적비용을 해소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예금자보호법이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예보가 나서는 것이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 대규모 소송 가능성
다만 법 개정을 통해서도 모든 착오송금의 구제는 어렵다. 우체국과 같은 예금자보호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기관도 있기 때문이다.
또 예보의 착오송금 구제사업에 따른 대규모 소송전 가능성은 여전하다. 착오송금 구제를 위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의 핵심은 제39조의 3(관계기관의 협조) 부분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예보는 금융기관에 착오송금 수취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 있으며, 금융기관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이에 응해야 한다.
이는 착오송금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리고 반환을 요구하는 한편, 이에 불응할 경우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기초정보로 활용된다.
예보가 착오송금 대상으로 삼는 송금건은 한해 약 4만건에 달한다. 예보의 연락을 받은 대상자가 원활하게 반환을 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기존 금융기관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반환을 거절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착오송금을 한 이용자도 피해가 소액에 불과하고 그 원인이 본인의 실수라는 점, 그리고 소송비용이 피해액을 넘어설 가능성을 고려해 소송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임정하 교수는 이에 대해 "원래 있어야 할 소송이 그동안 없던 것"이라며 "이 제도의 도입으로 소송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도 "(소송과 민원은) 오히려 반갑다는게 솔직한 생각"이라며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할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