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금융지주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IT공룡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금융산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미 국내에 내로라하는 대기업들 중에도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데도 네이버와 카카오의 금융업 진출을 두고 금융권이 유독 긴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 삼성, 현대차, 한화와도 경쟁했는데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이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중 공시의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 금지 등이 적용되는 기업을 말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말하는 '대기업' 범주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해당 기업집단의 계열사 수와 자산총액 등을 같이 공지합니다. 통상 이야기하는 재계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되는데요. 올해 재계 순위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농협이 1위부터 10위를 차지했죠.
주요 기업집단들은 각각 주된 사업영역을 영위하면서 대부분 금융산업에도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삼성(삼성화재,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증권)과 현대자동차(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차증권), 한화(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한화저축은행), 포스코(포스코기술투자) 등이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농협은 아예 농협금융지주를 산하에 두고 있어 전방위로 금융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SK와 LG, 롯데 등도 과거에 금융업을 영위했지만 지금은 모두 매각했습니다.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 등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는데 공정거래법상 금융업만 영위하는 금융지주회사가 아니면 금융 계열사를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대기업의 금융 계열사들은 금융업만 영위하는 금융지주 계열사보다 더 뛰어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일례로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은 2조3589억원(삼성생명 9774억원, 삼성화재 6456억원, 삼성카드 3441억원, 삼성증권 3918억원)에 달합니다.
금융업권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은행을 거느린 금융지주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실적이죠. 참고로 지난해 금융지주들은 신한금융이 3조4035억원, KB금융이 3조3118억원, 하나금융 2조4084억원이, 우리금융이 1조9041억원, 농협금융이 1조7796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 네이버‧카카오에 더 긴장하는 이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금융지주들에 최근 더 두려운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네이버와 카카오입니다. 금융지주들이 이 두 기업의 등장에 유독 긴장하는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죠.
그간 대기업 금융 계열사들은 모회사의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영업했다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브랜드 파워는 물론 사실상 전국민을 커버할 수 있는 고객 접점까지 가지고 있는 겁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현재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금융사업을 펼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영향력이 굉장하다"면서 "네이버가 미래에셋대우와 손잡고 내놓은 CMA통장이 한 달도 안 돼 27만 명이 가입한 점만 봐도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간 경쟁했던 대기업 계열사들과는 달리 고객을 흡수하는 속도가 다르다고 본다"면서 "거대 플랫폼을 가지고 있어 어찌보면 삼성보다 더 무서운 상대"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다 최근 금융권이 빠르게 디지털화하면서 IT기업들에게 더 유리한 경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금융지주들이 긴장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도입될 지급지시전달업(마이페이먼트)과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시장이 대표적입니다. 지급지시전달업은 하나의 앱에서 고객이 보유한 모든 계좌에 대해 결제‧송금 등에 필요한 이체 지시를 전달하는 사업자를 말합니다. 따로 고객의 자산을 유치하지 않아도 고객의 자금 흐름에 대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죠.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예금과 대출 기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은행은 아니지만 고객 계좌를 만들고 급여이체, 카드대금, 보험료 납부 등 계좌에 기반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겁니다.
금융위원회는 충분한 자기자본과 전산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에 이들 라이선스를 내준다는 방침인데요, 사실상 네이버와 카카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상대적으로 금융 규제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기본적으로 금융회사는 고객들의 '돈'을 관리하기 때문에 법적 규제가 깐깐합니다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요. 반면 금융회사가 아닌 네이버와 카카오, 핀테크 기업들은 다릅니다. 포인트 적립 방식으로 은행 수신 방식을 겸하는 '페이' 즉 전자금융 사업자 대상의 전자금융거래법이 2006년 제정된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는 상태입니다.
금융당국도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긴 합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지주 회장들과 직접 만나 IT기업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의견을 들은 데 이어 앞으로 규제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내놨습니다. 당장 3분기 내에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IT기업들을 겨냥한 규제가 정비된다고 하더라도 거대 플랫폼의 힘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게 금융권의 중론입니다. 삼성과도 경쟁했던 금융지주들이 더 강력한 경쟁자들과 맞서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