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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모집 방법 다각화와 소비자 효용

  • 2021.05.25(화) 09:30

경제학에서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형성된다. 재화의 공급량이 수요보다 높으면 가격은 하락하며, 수요가 더 많다면 가격은 상승한다. 하지만 독점 또는 과점시장 등 불완전 경쟁시장에서는 공급자가 가격 설정자로 행동할 수 있다. 재화를 공급하는 자가 한정되기에 그들이 시장가격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경쟁시장과 비교 초과이윤 확보가 가능하여 공급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수요자 측면에서는 구매 비용이 증가하여 손해다. 따라서 정부는 독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당한 거래 및 독점 그 자체를 배제하거나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한다.

과거 보험 모집시장은 독점시장과 유사했다. 생명보험사든 손해보험사든 각 보험사에 속한 전속 설계사에게만 설계 권한을 부여했다. 보험 상품은 공산품과 달리 설계 과정을 거쳐야 계약 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설계 권한을 전속 설계사에게만 부여한 것은 공급자인 보험사가 모집시장을 통제하기 유리했다. 물론 보험 가입을 위해 계약자가 전속 설계사를 반드시 만나야 했던 시절에도 보험사간 경쟁이 존재했지만 소비자 선택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보험 소비자의 선택권은 몇 가지 변화를 통해 확대되었다. 우선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간 교차 판매 허용이다. 과거에는 모든 자동차 소유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해보험 전속 설계사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교차 판매 허용 이후에는 생명보험 설계사를 통해서도 자동차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또한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의 공통영역인 제3보험이 생겨 해당 영역에서 양대 진영의 경쟁이 촉발되었다. 현재에도 진단비나 수술비 등 생존담보를 중심으로 치열한 신상품 경쟁이 관찰되는 곳은 생·손보 고유의 영역이 아닌 제3보험이다.

소비자 선택권이 가장 폭넓게 확대된 계기는 GA라 불리는 보험대리점의 등장이다. 한 명의 설계사가 다양한 보험사의 상품을 설계할 수 있기에 비교가 가능해졌으며 소비자 효용 및 상품 선택권이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상품비교보다는 모집의 대가로 지급받는 수수료 비교로 흐르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이런 부작용은 대면채널이라 불리는 모집채널 내 경쟁은 확대되었지만 결국 설계사를 만나야만 보험 상품을 가입할 수 있는 한계에 기인한다.

모집 채널 간 경쟁이 시작된 것은 인터넷 다이렉트를 통해 중개자 없이도 보험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한 이후다.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을 제외하면 비대면채널의 신계약 모집 점유비는 낮은 수준이지만 소비자의 채널 선택권이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또한 비대면채널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고 코로나19 상황으로 비대면의 가치가 조명되는 상황에서 향후 발전이 기대된다. 채널 간 경쟁이 본격화되면 단순히 대면 또는 비대면이란 양대 구도를 벗어나 소비자가 보험 상품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만들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포털 등 거대 플랫폼이 보험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작년 말 한 대형 포털은 두 곳의 손해보험사와 협업하여 중소기업·소상공인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을 안내해주는 무료 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 교육 서비스 사이트에서 배너를 누르면 가입 페이지로 이동한다. 이후 가입 상담을 위한 전담 대면 조직으로 연결된다. 모집 과정의 각 영역에서 비대면과 대면이 혼합된 형태다. 계약 체결 건수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런 시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모집 채널의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대면채널의 신계약 모집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대면채널 내 경쟁이 심화되고 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 인구구조 변화와 산업 성숙으로 인해 수요층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형 포털의 소상공인 의무보험의 체결률이 낮다고 해서 수요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쉽게 평가 절하할 수 없다. 신계약 모집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면채널도 진짜 신계약을 모집하는 비용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계사는 신규 가망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지인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여는 '개척활동'을 한다. 하지만 개척지에서 신계약 체결률은 매우 낮고 계약 체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상 현재 대면채널에서 발생한 신계약의 대부분은 확보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추가 판매나 기존 계약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집 방법의 다각화는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힐 뿐만 아니라 채널 효율을 재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대면채널은 공급자가 많아 모집 비용이 너무 높기에 적정 수준으로 구조를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모집 방법의 다각화를 통한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동일 채널 내 경쟁 심화는 출혈적 비용지출로 이어진다. 반면 채널 간 경쟁은 각 모집 방법의 비용 효율을 따질 수 있으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비자 이익도 증가할 것이다. 

지난 3월 25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시장 왜곡으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는 규제나 통제만으로 바로 잡을 수 없다. 다양한 모집 방법이 소비자를 두고 경쟁한다면 자연스럽게 보험 모집 시장에 만연한 잘못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요층을 중심에 둔 다양한 모집 방법의 등장과 그들의 건전한 경쟁을 기대해 본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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