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푸라기]는 알쏭달쏭 어려운 보험 용어나 보험 상품의 구조처럼 기사를 읽다가 보풀처럼 솟아오르는 궁금증 해소를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궁금했던 보험의 이모저모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편집자 주]
새해를 맞아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에 대해 알아볼게요. 우리나라 최초 보험계약 대상은 사람이 아닌 '소'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897년 발행된 대조선보험회사 보험증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지금까지 전해진 보험증권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죠.
벼농사 중심의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소가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웠던 만큼, 노동력의 원천이었고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이었죠.
옛날에는 소를 팔아 자녀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해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때문에 우리나라는 예부터 소를 한 가족처럼 여기며 가장 친근하고 유용한 동물로 꼽아왔습니다.
소 보험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일종의 가축보험으로 보험대상인 소가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고 합니다. 소 보험 증권에는 소의 털 색깔과 뿔의 여부, 상태 등이 기록됐고요. 보험료는 소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1마리당 엽전 1냥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 보험은 100일 남짓 지속되고 폐지됐다고 해요.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왔기 때문인데요.
먼저 보험금이 문제가 됐죠. 당시 소 1마리의 값은 보통 500냥 정도였는데 소 보험이 보장하는 보험금이 턱없이 적었던 겁니다. 크기가 큰 소는 100냥, 중간 크기 소는 70냥, 작은 소는 40~50냥을 책정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여기에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기록마저 없다고 하고요.
소 보험으로 나타난 폐해는 독립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매국노의 대명사격인 이완용의 형 이윤용(당시 농상공 대신)이 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소의 시장 거래를 금지하면서 반발이 더 세졌다고 합니다.
보험사 직원들은 소 키우는 집마다 찾아다니며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윽박질러 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했고요. 적절한 보험금도 받을 수 없는 데다, 보험이란 제도에 대해 아직 잘 몰랐던 농민들은 이를 '우세(牛稅)'로 받아 들였고 원성을 쏟아냈습니다. 결국 소 보험은 사라지게 됐죠.
100여년이 흐른 다음에야 축협중앙회가 가축 공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간 정부 보조 하에 소에 대한 가축 공제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소 보험이 부활하게 된 건데요.
현재는 가축재해보험으로 진화해 손해보험사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단계적으로 대상 가축 종류를 확대해 올해 기준 소, 말, 돼지, 닭, 오리, 토끼 등 16종의 가축이 보험보장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