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권 대표적인 규제중 하나인 '1사(社) 1라이선스 규제 완화'를 놓고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의 물밑싸움이 치열하다. 업권간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서다.
생보업계는 생보의 손보 자회사 설립 등 업권을 넘나드는 '빅뱅'급 유연화 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손보업계는 동일 업권내 판매채널과 보험종목의 중복만 허용하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보험업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1사 1라이선스' 규제는 1개 계열 및 금융그룹이 각 1개의 생보사와 손보사만 설립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규제다.
신한금융그룹이 신한라이프와 신한EZ손보 각각 1개의 생보사, 손보사만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 규제 때문이다. 다른 생보사를 인수할 경우 기존 계열 생보사와 반드시 합병해야하는 원칙에 따라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가 신한라이프로 합병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1개 계열 및 금융그룹이 복수의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서는 보험 영업망인 판매채널을 완전히 분리해야 하고, 보험종목도 달리해야 한다. 한화그룹이 한화손보와 캐롯손보 2개의 손보 라이선스를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캐롯손보가 자동차보험 온라인 판매채널을 전담하는 대신 한화손보는 온라인 채널로 자동차보험을 판매하지 않는다.
'1사 1라이선스 완화' 정해진 건 없다
1사 1라이선스 규제 완화를 금융당국에 건의한 건 생보협회다. 관건은 '라이선스'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다. 생보업계는 '손보 라이선스를 가진 자회사를 소유'하는 파격적인 수준을 원한다. 생보업계 주장대로 흘러가면 생보와 손보의 경계가 사실상 허물어지고 보험사만 남게 된다.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현행과 같이 1사 1라이선스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동일그룹내 생보사와 손보사를 보유한 삼성·한화·NH농협·DB·KB 등 대부분의 금융그룹이 소액단기전문(미니보험)보험사나 특화 전문보험사를 설립할 수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최소 20억원의 자본금만 있으면 소액단기전문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보험업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하겠다고 나서는 보험사가 전무한 배경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관련기사 : 640만 가구가 기다린 저렴한 반려동물보험 나온다(2021년5월25일)
생보사 한 관계자는 "규제가 업계 의견대로 완화하면 새로운 사업을 영위하면서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손보업계는 1사 1라이선스 규제 완화가 적용되는 건 모회사와 자회사간 판매채널과 보험종목의 중복을 허용하는 수준이라고 선을 긋는다. 현행 보험업법 체계안에서 경영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차원이다.
보험업법상 생보와 손보의 겸영 제한이 분명하다는 게 주된 근거다. 겸영 제한은 쉽게 말해 한 보험사가 생보·손보 두 개의 보험영역을 전부 영위할 수 없게 하는 걸 말한다. 생보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완화 방향과는 결이 다르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이 원칙이 무너지면 향후 거대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제때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 막대한 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등 주요 보험선진국 역시 생보와 손보를 함께 운영하는 겸영 보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도 이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금융위원회 업무계획에도 '상반기 중 1사 1라이선스 정책 유연화에 대한 세부기준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업계의 의견수렴 이후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는 전언이다. 그만큼 이 사안을 두고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걸 의미한다.
성장동력 떨어진 생보 '돌파구' 찾기
겉으론 소비자 편익과 보호를 앞세우고 있지만, 두 업권 주장이 엇갈리는 진짜 이유는 이해득실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장 둔화로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선 생보와 이를 저지하려는 손보의 대결이다.
실손의료보험, 암보험 등 제3험까지는 생·손보가 공통으로 판매하는 등 겸영 허들이 낮아졌지만 화재보험·해상보험·보증보험 등 물(物)보험 중심의 일반손해보험은 아직 손보 고유의 영역이다. 핵심은 일반손해보험이 블루오션으로 불릴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데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보업계의 원수보험료(매출)는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일반손해보험(8.8%)의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었다. 같은 해 생보업계가 변액저축성보험(6.2%) 판매 확대에도 불구하고, 보장성보험(-0.7%)과 일반저축성보험(-7.8%) 실적 둔화로 전년대비 0.6%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관련기사 : 생보 자리 넘보는 손보…수입보험료 역전 '코앞'(4월7일)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생보는 시장 포화로 원수보험료 외에 신계약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며 "1사 1라이선스 규제가 생보업권 바람대로 대폭 완화되면 디지털 손보 자회사를 시작으로 손보 영역을 빠르게 잠식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생보의 경우 손보 대비 1.7배의 자본력이 뒷받침돼 초반 진입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손보업계가 규제 완화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