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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도 실리도 못챙긴 금융노조 총파업

  • 2022.09.16(금) 16:48

오전 10시부터 쟁위 돌입…금감원 추산 9807명 참여
금융노조 내세운 명분 은행원들도 공감 못사
은행 영업점 타격 미미…대부분 영업점 정상영업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나섰다. 하지만 내세운 명분도 파업의 실리도 챙기지 못한 파업이었다는 평가다. 총파업을 내세웠으나 은행의 시스템은 이상없이 잘 돌아가서다. 

오히려 고물가 고금리로 경제가 시름하는 가운데 고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의 이기적인 행태였다는 여론까지 형성되는 모습이다.

16일 전국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번 파업에는 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부산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 △대구은행 △제주은행 △수협은행 △SC제일은행 △씨티은행 △농협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총 17개 은행지부 노조원들이 참여했다. 

16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17개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금융노조 1만명 세종대로 채웠지만…

이날 금융노조는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총파업 시위에 돌입했다. 코리아나 호텔부터 덕수궁 대한문까지(약 392M) 광화문 방향 세종대로 4차선을 점거한 후 집회에 돌입했다. 이후 오전 11시부터는 숭례문을 거쳐 삼각지역으로 향하는 행진을 진행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날 파업 참여자수는 약 9807명으로 파업참여율은 9.4% 수준으로 집계됐다. 

현장의 분위기는 '궐기'에 나서는 노조의 집회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가을에 접어들긴 했지만 뜨거운 햇살을 피해 인근 카페 등에 자리잡은 노조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일부 노조원들은 뜨거운 아스팔트가 아닌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같은 분위기가 연출된 이유는 금융노조가 총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부분이 노조 집행부 외에 일반 노조원에게는 공감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노조는 이번 파업의 메인 슬로건으로 '점포폐쇄'를 내세웠다. 은행들이 점포를 빠르게 폐쇄하면서 점포에 있던 인력들이 퇴사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면서 고용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점포가 폐쇄된다고 해당 점포에 있던 직원을 해고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라며 "본부부서, 통폐합으로 인원이 필요한 부서로 모두 재배치한다. 은행의 인력이 줄어드는 것은 베이비부버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 된 영향 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금융노조가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항목들도 공감을 사기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금융노조는 이날 총파업에 앞서 △임금인상률 5.2% △근로시간 단축 △점포폐쇄시 사전 영향평가제도 개선 △임금피크제 개선 △금융 공공기관 혁신안 중단 △산업은행 부산 이전 중단 등을 포함했다. 

주요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기업은행 노조원 측과 본사의 부산이전 이슈가 겹친 산업은행 노조원들은 적극적으로 이번 파업에 참여했지만, 이외 은행 노조원들의 경우 적극적으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이날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직원 중 파업참여 인원 수는 0.8%수준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파업 참가자는 "노조 집행부의 요청이 있어 참가했을 뿐 대부분 동료 직원들은 근무중"이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근로자들에 비해 이미 높은 수준의 복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게 동료들의 이야기다. 이 때문에 파업 참가율이 높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게서조차 내세웠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 파업이 된 셈이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못한 편이다. 이날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이미 임금이 높은 은행원들이 파업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라며 "덕분에 시내로 나가는 손님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서소문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시민은 "은행원들의 이기심 덕분에 버스가 우회운행하면서 배차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불편이 크다"라며 "연봉이 이미 높은 은행원들이 파업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영업도 오후 3시 30분까지 밖에 하지 않느냐"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해제됐지만 주요 은행 영업점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확산을 이유로 영업시간을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로 2년가량 운영해 오고 있다. 

IBK기업은행 서소문 지점 입구에 부착된 파업 안내문. 파업 안내문이 무색하게도 창구에는 직원들이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총파업에도 문제 없던 금융시스템

금융노조가 단체행위에 나선 세종대로 인근 영업점을 둘러봤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오히려 극과 극인 모습이 연출됐다. 은행 창구 직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지켜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영업점을 찾은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영업점을 내방 고객이 많은 시장 인근 영업점을 둘러봐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남대문 시장 인근 은행 영업점, 서울 영천시장 인근 영업점, 서울 인왕시장 인근 영업점 모두 은행은 정상 가동 중이었다.

몇몇 은행 영업점의 경우 파업에 대한 안내문을 문앞에 붙여두기도 했지만 일부 은행은 굳이 파업을 알리지도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점 영업시간이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로 단축된다는 알림은 대부분 영업점 문앞에 안내된 것과는 상반됐다. 

서울시내 은행 한 지점장은 "금감원이 발표한대로 파업에 참가한 직원이 많지 않다. 영업점에 따라 많아야 2명정도가 파업에 참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이정도는 남은 인원이 충분히 응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파업 안내문을 붙인 영업점은 2명가량이 파업에 참여해 다소 업무가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거나 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직원이 근무중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라고 말했다. 

16일 금융노조가 총파업에 들어선 서울시 서대문구 인왕시장 인근 KB국민은행 지점 전경. 일부 창구는 비어있었지만 남아있는 인원들로 인해 평소와 비슷한 수준의 대기열이 형성됐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아울러 은행 대부분의 서비스가 모바일 뱅킹 등 비대면에서 가능해졌고 굳이 영업점을 찾더라도 자동화기기(ATM)등의 성능도 좋아진 것도 이번 파업의 영향이 크지 않았던 원인으로 꼽힌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파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은행권에 이미 퍼져있던 상황이었다. 비대면으로 은행업무를 보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은행 영업점 직원들의 업무부담이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너무 과도한 요구를 했다"라며 "총파업을 하고도 명분과 실리 모두 찾지 못했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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