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등 유사암의 납입면제 특약 판매중단을 둘러싸고 손해보험사간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권고'에 따라 유사암에 걸리면 보험료를 전부 제해주는 납입면제 특약 판매를 자제하든지, 아니면 보험료의 50%까지만 면제해 주든지 하는 신사협정을 맺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인데요.
사건은 메리츠화재가 나홀로 납입면제 특약을 판매하고 있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미 판매를 중단한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 등 다른 대형 손보사들은 "업계 질서를 흐리고 상도덕에도 어긋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죠. 반면 메리츠화재는 "팔지 말라고 명시된 규정이나 법이 있냐"며 "다른 보험사들의 영업행태가 더 문제"라고 맞받고 있고요. 도대체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각각의 얘기를 더 들어볼까요.
손보사들 "메리츠화재, 신사협정 위반"
안녕하세요. 다른 손보사들을 대표해 나온 김삼현입니다. 억울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지난 7월 금감원이 보험사들이 내건 유사암 보장금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일반암과 유사암의 진단비 비율(연계비율) 조정을 '권고'한 건 알고 계시죠. ▷관련기사 : [보푸라기]점점 줄어드는 유사암 보험금, '왜?'(8월 6일)
문제는 유사암 납입면제 특약입니다. 납입면제란 보험가입자가 보험료 납입기간 중에 재해 또는 질병을 원인으로 보험료를 납입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보험사가 보험료 납입을 면제해주는 걸 말합니다. 갑상선암을 비롯해 유사암의 발병률과 생존률이 높아 납입면제 특약은 큰 인기를 끌었죠. 좋은 셀링포인트(판매 강조점)가 됐고요.
그런데 금감원의 눈초리가 또 매서워졌습니다. 향후 분쟁 가능성과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나간 보험금 비율) 우려 등을 이유로 납입면제 특약도 판매중단을 '권고'한거죠. 이에 따라 대다수 손보사들이 지난달 말부터 유사암 납입면제 판매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은 보험료의 50%까지만 면제되는 특약을 새로 개발해 팔고 있는데요. 당초 금감원과 보험업계가 만나 수차례 토론한 끝에 나온 합의점이라고 해요. 보험요율 산출기관인 보험개발원의 검증도 통과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메리츠화재가 모두를 무시하고 유사암 납입면제 특약을 판매하고 있는 겁니다. 어린이보험뿐 아니라 성인 건강보험에도 붙여서 말이죠. 보험대리점(GA) 판매 비중이 큰 손보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요. 판매 유·불리가 분명해 졌거든요. 저 같아도 50% 보험료 면제보다 전체 납입면제 특약이 있는 보험에 들 거 같기도 하고요. 팔기도 더 쉽겠죠.
무엇보다 화가나는 건 업계 질서를 흐려놓고 상도덕을 해친 메리츠화재가 오히려 당당하다는 겁니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니 업계에서는 메리츠화재가 믿는 '뒷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메리츠화재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멜츠인데요. 저는 간단히 설명할게요. 혼자 모두를 상대하려니 너무 힘들기도 하네요. 우선 다른 손보사들이 신사협정을 어겼다고 주장하는데,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보험관련 법령을 어긴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자율이니까요. 유사암 납입면제 특약을 판매하는 걸 도의적으로 비난할 순 있어도 법적 근거도 없는 걸 강제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권고'를 내린 금융당국이 강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뜻도 되고요. 유사암 납입면제 특약 자체에도 결함이 없습니다. 있었다면 다른 보험사들도 팔기 받기 어려웠겠죠. 때문에 일부 대형 손보사가 금감원에 몽니를 부리며 결함이 없는 유사암 납입면제 특약을 팔지 못하게 했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나옵니다.
소비자보호 위반 이슈에서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을 판매하고 현재까지 들어온 민원이 '0'건이거든요. 업계 일부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의심을 피해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죠. 만약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진답니까.
유사암 납입면제에만 시시비비를 따질 게 아니에요. 다른 보험사들은 더 위험한 상품을 팔고 있어요. 특히 A손보사는 진단 편의성이 높아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부정맥 납입면제 특약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던데, 이런 부분은 괜찮은 건가요? 메리츠화재에만 돌을 던지는 게 맞냐는 얘기입니다.
금감원 "난감하네~"
손보사들과 메리츠화재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금감원은 난감한 표정입니다. 금감원은 '권고'한 것이지, 법적 조항으로 강제한 게 아니기 때문에 메리츠화재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 없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유사암 납입면제 특약 판매를 중단한 다른 손보사들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업계는 '금감원 올드보이(OB)가 메리츠화재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어 금감원이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업계와 금감원 안팎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임원은 금감원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가깝게 지냈던 직원들이 아직도 금감원에서 일하고 있고, 친분이 유지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물론 금감원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소문이 나오는 건 업계가 우리원(금감원)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죠.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금감원은 중재를 위해 지난 5일과 7일 두 차례 손보사들을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론 '업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고 했는데요. 유사암 납입면제 이슈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겠죠. 금감원 관계자는 "회사간 자유로운 의견을 교환했다"며 "업계에서도 금감원이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알면 무리해서 (상품을 판매)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습니다.
메리츠화재가 백기를 들 지, 아니면 마이웨이를 고수할 지 업계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런 분쟁의 싹을 조기에 제거하지 않으면 앞으로 금감원의 '권고'가 점점 먹혀들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