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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융지주도 주식회사다

  • 2023.02.16(목) 07:41

역대급 실적은 정부 정책 호응 영향도 반영
은행도 '민간기업'…인정할 부분 인정해줘야

"정말 죽을 맛이네요"

한 은행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은행이 지난해 역대급 수익을 달성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성과급'에 따른 사회적 비난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상생금융 혜택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 상황이다.

4대 주요은행 당기순익 추이. /그래픽=비즈워치

은행의 역대급 실적, 정부도 역할

윤 대통령 발언의 취지는 일정부분 이해가 된다. 은행이 공공적 성격을 가지고 사회 전반에 기여해달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은행의 역대급 실적에 대해 무작정 '이자장사'라고 비난하기 전에 따져볼 지점도 존재한다. 지난해 은행 실적은 통화정책, 그리고 정부의 연이은 'SOS'에 화답한 영향도 반영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7차례나 기준금리를 끌어올렸고 시장금리도 따라 상승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은행이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리고 수신(예적금)금리는 느리게 올린다며 '예대금리차 공시'까지 손봤다. 은행이 수신금리 인상에도 속도를 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지난해 3분기 이후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금융당국은 적극적인 기업대출을 권고했다. 여기에 은행들이 높은 금리를 바탕으로 시장의 자금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수신금리 인상 자제도 요청했다. 즉 이자수익이 늘어오는 대출은 늘리고 나가는 이자비용은 줄이라는 얘기였다.

시장금리 인상, 기업대출 확대, 예금금리 인상 자제 등이 맞물려 결과적으로 지난해 은행들의 이자이익은 크게 늘었다.

이처럼 막대한 수익에 따른 성과급 논란이 벌어지자 대통령까지 화두를 던졌다. 외환위기 등으로 인해 은행을 살리는 데에 세금(공적자금)이 투입된 바 있고 은행은 정부 규제속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공공재 성격'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은 정부 규제산업이며 정책에 따라 사업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공공성이 있다고는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를 공공재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재로 정의하는 순간 은행의 자율성이 완전하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공공성을 띈다는 것과 공공재라고 정의하는 것은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은행도 민간기업,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도 단순히 은행이 수익을 많이 냈다는 점만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익이 '공공적 성격'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나 역대급 성과급이나 주주배당 등에 재원이 몰려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은행 입장에서는 난감한 지점이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실적에 준하는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을 찾기 쉽지는 않다. 은행권 전체의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한 성과급을 둘러싼 노조와의 갈등도 불가피하다. 

배당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금융지주들은 지나치게 배당이 적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 등은 실적에 따른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같은 은행이라도 공적역할을 수행하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는 처한 위치가 다르다.

지난해 우리나라 금융권은 유독 '관치금융' 논란이 많았다. 횡재세 도입이 언급되는 등 여야를 막론하고 은행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여기에 대통령의 발언은 금융지주들에 대한 투자심리마저 냉각시키는 모습이다.

'공공재' 발언이 나온 이튿날인 14일 은행 대장주인 KB금융지주의 주가는 전일 대비 4.16% 하락한 5만3000원, 15일에는 5만400원까지 떨어졌다. 신한금융지주도 이틀새 3만8000원대까지 내려왔다. 5만원을 넘보던 하나금융지주는 4만4000원대, 우리금융지주도 1만2000원대 초반으로 내려앉았다.

이런 하락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14일과 15일 이틀간 외국인 투자자들이 판 4대 금융지주 주식수는 650여만주로 추산된다.

공공재 논란을 떠나 대통령이 강조하고 싶었던 은행의 공공적 성격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내 은행들 역시 사회환원 방안을 매년 고심한다. 그 '공공성'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지나친 개입은 금융지주들의 가치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발언의 취지를 공감한다 해도 금융지주들이 엄연한 민간기업이자 주식회사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지난 이틀간의 주가가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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