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로 예정된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적립을 앞두고 금융사들마다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CCyB적립으로 인해 건전성 비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특히 일부 금융사의 경우 건전성 비율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그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했던 인수합병(M&A)계획을 수정해야 할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지금도 높은 건 아닌데…'작은'은행들의 고민
CCyB적립 대상 금융회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단연 건전성비율이 다소 악화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일부 대형 금융사의 경우 CCyB적립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건전성비율이 규제수준을 한창 벗어난 수준이라 크게 우려하지는 않지만,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금융사들은 고민이다.
일례로 올해 1분기말 기준 케이뱅크(13.55%), 토스뱅크(12.69%), 수협은행(14.64%), 전북은행(14.75%)의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은 국내은행의 평균 15.58%를 하회하는 수준으로 집계됐다. 규제수준인 10.5%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다른 은행에 비해서는 최대 5%포인트 이상 낮다.
CCyB적립과 더불어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도 예고돼 있는 상황에서 내년 1분기에는 이들 은행의 BIS총자본비율이 약 1%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확충에 나서야 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가장 좋은 수단은 최근 일부 금융사들처럼 신종자본증권, 즉 은행채를 발행해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금리가 다시 상승세를 타다보니 채권발행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지난 5일 기준 은행채(AAA) 5년물 금리는 4.103%로 한달전과 비교해 0.23%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한 은행 재무부서 관계자는 "최근 은행채 발행물량이 늘어나고 있고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기대감이 여전히 시장에 남아있으면서 은행채 금리가 상승하고 있어 순익규모가 작은 은행이 은행채 발행을 통해 자본확충을 나서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CCyB적립과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의 도입 등으로 인해 앞으로는 순익을 일정 수준에서 방어하고 이중 일부를 쌓아둬야 하는데 은행채 발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비용과 이에 따른 순익감소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남은것은 유상증자인데 이들 은행의 입장에서는 이 역시도 쉽지 않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의 경우 지주 내에서 위치가 돈을 수혈받기 보다는 수혈 해주는 입장이고 주주구성이 복잡한 인터넷전문은행 등은 주주들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라며 "금융회사의 대표적인 자본확충 수단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M&A 예비 '큰 손'들, 계획 수정하나
금융사들에게 내년 CCyB적립이 예고돼 있으나 현재 건전성 비율이 양호한 수준이라는 점은 위안 거리다.
하지만 M&A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겠다던 계획을 세운 금융사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처지다. 건전성 비율 하락을 감내하면서 M&A에 나서기에는 애초보다 자금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서다. 우리금융지주, 수협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그간 꾸준히 M&A를 통한 비은행 계열사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 중에는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게 우리금융지주의 계획이다.
금융회사의 M&A여력은 이중레버리지비율로 가늠할 수 있다.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자회사 출자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현재 금융당국은 130%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금융지주의 이중레버리지 비율은 97.81%다. 이 기간 우리금융지주의 자본총액이 22조8969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1분기 우리금융지주가 M&A에 투자할 수 있는 실탄규모는 약 7조 가량이다.
금융권에서는 내년 CCyB적립,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 준비, 충당금 적립 등 금고에 돈을 쌓아둬야 하는 상황과 M&A이후에도 회사에 들어가는 추가 자본까지 고려하면 우리금융지주가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실탄은 약 3조원 가량으로 보는 모습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수치상으로는 우리금융지주가 M&A에 쓸 자금여력이 모자라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M&A이후 해당 회사에 추가로 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 금융당국이 원하는대로 손실흡수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 등을 다각도로 고려하면 M&A에 쓸 수 있는 실탄의 규모는 최대 3조원 안팎으로 그간 시장에서 봐왔던 5조원 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우리금융지주가 노리는 증권사나 보험사 매물의 '몸값'이 뛰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최근 주식시장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증권사의 몸값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보험사의 경우도 최대 이슈였던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몸값이 재산정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의 M&A 대상으로 분류되는 회사들중 경쟁력이 있는 회사의 몸값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M&A 자금 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쉬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금융지주 설립을 위해 M&A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수협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협은행이 현재 M&A에 쓸 수 있는 자금여력은 5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수협은행은 가뜩이나 건전성비율이 국내 최하위 수준인데 향후 CCyB적립 등으로 추가 하락까지 점쳐진다면 함부로 M&A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 수협은행을 둘러싼 환경이 바뀐 것도 고민거리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수협은행의 건전성 비율 하락의 고민으로 M&A를 위해서는 추가로 자본을 조달해야 하고 이는 대주주인 수협중앙회의 증자 등 지원이 절실하다"며 "최근 수협중앙회 회장이 바뀐 이후 수협은행의 지주회사 전환을 둘러싼 기류도 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M&A 계획이 없는 금융사라고 경영계획을 손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비금융 사업 진출 등과 같이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일부 금융사가 사실상의 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 하겠다는 취지다.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는 자연스럽게 비용이 들어간다. 그간 금융사의 '곳간'은 사실 넘쳐 흘렀기 때문에 신사업에 진출하는 부분에 있어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손실흡수능력 확대를 위해 금고에 돈을 쌓아둬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은행 한 관계자는 "신사업 진출에는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당분간은 돈을 쌓아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풀기가 예년보다 까다로워 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