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오름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금융당국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금융권의 금리 인상이 계속되자 금융당국 수장들은 구두로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가계부채 역시 위험 수준에 도달한 까닭이다.
금융권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 시장에서 대출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반면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부실차주 급증 등 금융불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7% 육박한 주담대 금리, 더 오른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8~ 6.93%로 7%대에 육박한 상태다.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 상단이 7%를 넘어선다면 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대출금리 상승은 은행들의 자금조달 부담이 확대되고 있는 까닭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9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3.66%로 전달보다 0.03%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시기를 쪼개보면 최근 4주 동안 단기 코픽스 금리(계약만기 3개월물인 단기자금 대상)는 상승 추세다. 8월 넷째주 단기 코픽스는 3.58%에서 9월 둘째주 3.66%로 올랐다.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대출금리 인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통화긴축 정책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4일 오후 4.8%를 돌파하는 등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의 자금조달 수단인 은행채 발행 금리도 오름세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4일 기준 은행채 6개월물과 5년물 금리(무보증 AAA)는 각각 4.046%와 4.796%로 전달 말보다 급등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4분기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높은 금리로 유치했던 100조원 규모의 예·적금 만기가 다가오면서 이를 재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펼쳐질 전망이다. 금융권에선 지난해 수준의 금리 경쟁은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금리 상승을 막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인하 압박하자니…가계부채 더 늘어날라
지난해 기준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은행들도 금리를 인상하자 금융당국 수장들은 은행권에 구두 메시지를 던졌다.
은행들이 이자이익을 기반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하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은 "지나친 이자장사"라고 비판했고, 은행들은 금리 인상 폭을 최소화했다. ▷관련기사: 금융당국 금리 간섭에 은행 '속앓이'(22년 12월3일)
이를 두고 관치금융 논란도 있었지만 차주들의 금융부담을 일정 부분 줄일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시선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금융시장을 보면 지난해와 달리 금융당국이 시장에 개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 폭이 가팔라지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주담대 금리가 5%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대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9월말 기준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3294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5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관련기사: 금융당국 자제령에도…또 늘어난 가계대출(10월5일)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당국 압박으로 대출금리가 낮아지면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시장금리 상승이 대출금리에 빠르게 반영되면 차주들의 금융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금융당국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도 오르는 상황에서 당국의 메시지로 금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있었다"라며 "최근에는 기준금리 동결이 지속되는 가운데 시장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고금리가 고착되는 분위기라 당국도 메시지를 꺼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에서도 대출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며 "현 상황이 지속되면 연체율 증가 등 은행 자산 건전성에도 위협을 줄 수 있어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현재 가계부채는 안정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신용대출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은 올해 월 평균 3조6000억원 증가하는 수준으로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최근 주택거래 회복 등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정책적 관리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전날 "9월 가계대출은 8월보다 증가폭이 1조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예상치 수준이면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수준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