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L생명이 올해 후순위채 발행 한도를 3000억원으로 잡았다. 자본 건전성 강화 또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보험사 채권 발행에 대한 시장 평가가 비우호적이라는 게 부담이다. 앞서 롯데손해보험, 푸본현대생명 후순위채도 일부 미매각에 처했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ABL생명은 지난달 말 이사회를 열고 후순위채 발행한도 3000억원을 승인했다. ABL생명 관계자는 "차환 목적이 아닌 신규 발행으로, 자본확충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22~2023년 총 1930억원 규모로 5년 만기 후순위채를 발행한 바 있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ABL생명의 후순위채 등급을 'A(안정적)'로 평가했다.
후순위채는 변제순서가 일반 채권보다 뒤인 만큼 한 단계 낮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금리 부담이 높아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장금리 지표로 활용되는 국고채 10년물 평균금리가 2019년 말 1.683%에서 2021년 말 2.250%, 지난해 말 3.183%, 올해 3월말 3.413%로 재차 상승하고 있다.
이에 최근엔 차환발행 시 발생하게 될 이자비용 증가나 부채 조정 목적으로 상환을 결정하는 회사도 나오는 추세다. 실제 지난 1월엔 동양생명과 DB생명이 각각 2000억원, 3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차환 발행 없이 상환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ABL생명이 후순위채 발행을 예고한 건 자본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새 보험회계기준(IFRS17) 시행으로 신(新)지급여력제도(K-ICS·킥스)가 도입됐다. 킥스 비율은 모든 가입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을 나타낸다.
킥스 체계 하에서는 자산·부채 시가평가 기반에 장수 리스크 등 새로운 보험위험을 추가 측정하고, 금리·주식 위험 기준도 상향된다. 이 과정에서 요구자본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ABL생명의 경과조치 적용 후 킥스 비율은 168.2%, 경과조치 전은 109.1%다.
경과조치는 기존 건전성 제도였던 RBC(지급여력) 비율이 보험업법에서 요구하는 100% 기준을 넘는 보험사가 킥스 비율을 적용할 때 100%를 넘지 못해도 적기시정조치(제재)를 최대 5년간 유예하는 완충장치다. 현재는 금융당국의 권고수준(150%)과 보험업법 최소 요구 기준(100%)을 상회하지만 회계 변동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관련기사 : 보험사 3곳 중 1곳 킥스 유예 신청…생보사는 과반(3월13일)
회사채 시장에서 A급 기업도 발행이 녹록지 않다는 게 걸림돌로 꼽힌다. 푸본현대생명은 지난달 5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10억원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당시 한국기업평가는 푸본현대생명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으로 부여했고 나이스신용평가는 A+(부정적)으로 봤다. 비슷한 시기 롯데손보(A-안정적)도 8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480억원의 자금을 모으는 데 그쳤다. 다만 나머지 물량은 시장에서 완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