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책임론 중심에 섰다. 두 회사 모두 부실 징후가 뚜렷했지만 사전 대응에 소홀하면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까닭이다.
이에 금융당국 중심으로 피해 판매자 지원을 위해 대출 유예 등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유동성 공급을 넘어 피해를 입은 판매자들에 대한 금융 구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 금융권을 향해 사태 해결을 위한 협조 요청을 구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명분이 없어 금융권에 손을 벌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피해자 구제 방안 등에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티메프 못막았는데…금융권에 협조 요청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달 31일 기준 위메프·티몬 판매대금 미정산 규모는 2745억원으로 확대됐다. 금융당국은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6~7월 거래분을 포함하면 3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1조원 이상일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5600억+α' 규모의 금융지원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7일부터 IBK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협약 프로그램 사전 신청을 받고,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경영안정자금 지원도 본격화된다. ▷관련기사: '티메프' 피해 판매자, 대출 최대 1년 유예…유동성 지원 스타트(8월6일)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금융당국은 이번 미정산 사태 책임론 중심에 있다. 금감원은 2022년 6월 티몬, 작년 12월 위메프와 경영개선협약 MOU를 맺었다. 이를 통해 두 회사의 유동성 비율 등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등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대응에 소홀했던 것이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적기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역시 금융당국 책임론을 인정했다. ▷관련기사: "티메프 사태, 금융당국도 책임" 김병환, 취임부터 과제 산적(8월1일)
금감원은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후 금융권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PG사들에는 소비자 환불을 막지 못하도록 하고 카드사들에도 환불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은행권에는 선정산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등을 요청했다. 선정산 대출은 상품 판매 후 대금결제까지 60~70일 가량 차이가 발생하면서 판매자들이 은행권에서 이용하는 상품이다. 선정산 대출을 공급한 은행(KB국민·신한·SC제일은행)은 미정산 피해 기업들에 대해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등을 통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빚' 느는데…판매자 구제 가능할까
정부는 '위메프·티몬 사태 추가 대응방안과 제도개선 방향'을 조만간 마련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소비자 뿐 아니라 판매자 지원방안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산을 받지 못한 판매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는 PG사와 카드사들의 협조를 통해 일단 환불이 이뤄지고 있지만 판매자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은 결국 또 다른 부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기연장·상환유예 된 선정산 대출 역시 미정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판매자들에게는 빚만 늘어나게 된다.
금융권에서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금융지원을 넘어 피해 판매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채 규모가 커 대출을 규제하는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대출로 해결하려고만 한다"며 "정부 지급보증을 비롯해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 판매자들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판매자들의 매출채권을 어느정도 회수할 수 있을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큐텐의 잔여 자산 등을 시장에 매각해 피해자부터 선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역시 궁극적인 구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티메프 사태 관련 당내 TF를 설치하고 피해 판매자들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 금리 인하와 신속한 지원, 금융 외 지원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유동성 공급을 위한 5600억원 규모 금융지원 외에 추가 대책 마련과 함께 피해 판매자들에 대해선 3~4%보다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구제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거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조달시장이 급격히 경색되자 5대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95조원 규모의의 유동성 공급을, 작년 말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고금리 차주 등을 지원하기 위한 2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지원방안 등이 마련됐다.
유동성 공급은 금융지주 내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회사들이 있던 만큼 지주사 내에서 이들에 대한 금융지원 필요성이 있었다. 민생금융지원방안은 은행들의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은행권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명분이 작용했다.
반면 이번 사태의 경우 금융당국 관리 부실로 대규모 피해자 손실이 발생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채무가 물려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는 민간 금융사들에 책임을 떠안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경우 자칫 배임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 동안에는 당국 요청 혹은 압박 등을 통해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시장에 공급하거나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차주를 지원했다"며 "이번 사태는 금융사 책임이 아닌 당국의 관리 소홀로 발생한 만큼 당국에서 금융사들을 향해 지원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