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의 길을 걸은 지도 어느덧 29년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청호(淸湖)그룹을 매출 1조원에 육박하는 중견 생활가전업체 반열에 오르게 한 창업주 정휘동(63) 회장의 지배구조는 그래서 갖가지 스펙트럼을 갖는다.
가업 승계도 매한가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후계 승계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이 증폭되는 시기, 비록 후계자의 윤곽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마침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된 부(富)의 대물림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매출 1조 눈앞에 둔 청호
정휘동 청호 회장은 1세대 정수기 엔지니어다. 경주 출신으로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해 미네소타주 주립대를 거쳐 대학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친 뒤에는 현지 정수기 회사의 수석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국내에 발을 들인 것은 1991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 제품개발팀에 합류하면서다. 2년여 활동한 뒤 1993년 5월 창업으로 이어졌다. 현 주력사인 생활가전업체 청호나이스㈜의 모태 청호인터내셔날을 설립한 게 이 때다.
불 같이 일어났다. 코웨이와 함께 정수기 시장의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초에는 점유율이 30%에 달했다. 정수기를 비롯해 공기청정기, 비데 등 생활가전업체로 변신한 지금도 건재하다. 가전렌탈시장에서 SK매직, LG전자, 쿠쿠홈시스 등과 함께 ‘절대 강자’ 코웨이 다음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벌이 또한 한 단계 레벨업된 상태다. 2013~2019년 매출 3000억원대로 오랫동안 정체 양상을 보였지만 2020~2021년 4200억원 안팎으로 성장했다. 영업이익 또한 400억원대에 안착, 2002년(10.6%) 이후 18년 만에 두 자릿수를 회복했다. 2010년 이래 무차입 경영을 할 만큼 돈 걱정도 없다.
늦둥이 아들에 꽂히는 시선
창업 성공 신화는 계열 확장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마이크로필터, 엠씨엠(MCM), 엠앤티엔지니어링, 나이스엔지니어링 등 생활가전 분야 계열사들이 달리 만들어진 게 아니다. 중국 정수기 제조 합자법인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현지법인도 두고 있다. 청호그룹이 매출 1조원 달성을 눈앞에 둔 배경이다.
한데, 계열 지배구조 독특하다. 모태이자 주력사인 청호나이스를 정점으로 한 수직지배체제가 아니다. 상당수가 창업주인 정 회장 개인 소유다. 청호나이스 외에 마이크로필터, 엠씨엠(MCM) 등이 면면이다.
한 해도 흑자를 거른 적이 없는 데가 돈이 아쉬울 게 없어 무차입 경영을 하는 알짜 업체다. 정 회장의 ‘돈줄’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개인 대부업체까지 가지고 있다. 동그라미파이낸스대부다. 최근에는 금융업을 확장할 움직임까지 엿보인다.
정 회장이 청호그룹을 창업한지도 내년이면 어느덧 30돌이다. 이제 시선은 가업 승계로 옮아간다. 게다가 청호나이스를 비롯해 정 회장 개인 소유의 알짜 계열사들이 수두룩한 터라 2세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된다. 다만 후계자가 경영수업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분 승계 움직임도 전혀 없다.
정 회장이 여전히 경영일선에서 왕성히 활동 중이기 때문일 수 있다. 부인 이경은(58) 이화여대 의대 의학과 교수와 슬하의 아들에 시선이 꽂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