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NIKE)의 신발 제조 파트너로 잘 나가던 TKG(옛 태광실업)그룹은 ‘한 우물’만 파지는 않았다. ‘신발왕’ 고(故) 박연차(1945~2020) 창업주가 경남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에 자신의 아호를 딴 ‘정산(正山)CC’를 오픈한 게 2005년 11월의 일이다.
정산CC를 골프장으로만 각인된다면 당신은 정산CC를 반쪽만 아는 것이다. 창업주가 2대 후계자인 장남 박주환(41) 현 회장의 승계기반을 닦는 데 무척이나 요긴하게 활용했던 지렛대다.
박주환, 모체 태광 앞서 이사회 합류
정산CC의 법인명은 ‘정산개발’이다, TKG의 사업영역에서 골프장은 비(非)주력 분야인 터라 본업인 신발 사업의 중추 TKG태광이나 국내 질산 생산 1위인 화학 분야의 핵심 TKG휴켐스에 비해 정산개발은 사업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별 존재감이 없는 계열사다.
게다가 2019년까지 적자가 이어진 탓에 2022년 말 결손금이 114억원 쌓여있을 정도로 재무구조는 형편없다. 자산(1210억원) 보다 부채(1290억원)가 79억원 많은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요즘 들어서야 벌이가 좋아져 재작년 매출 176억원에 영업이익으로 52억원을 벌었다.
최대주주는 모체이자 계열 지주격인 TKG태광이다. 지분 100%를 전량 소유 중이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옛 주인이 TKG 2세 박 회장이다. 뒤집어 말하면, 예전의 정산개발은 창업주가 대물림을 위해 준비한, 2대 세습 측면에서는 허투루 볼 계열사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정산개발을 설립한 때는 2000년 3월이다. 확인할 수 있는 범위로만 보더라도, 박 회장은 19살 때인 2002년에 이미 최대주주였다. 2006년에는 지분 90%를 소유했다. 2010년에 가서는 부친이 갖고 있던 10%마저 건네받아 아예 100% 1인 회사로 만들었다.
창업주 일가들이 번갈아가며 경영을 직접 챙겨왔던 곳이기도 하다. 창업주가 2000년 3월~2003년 9월 대표를 맡았다. 부인 신정화(73) 명예회장 또한 잠깐이나마 2006년 8월~2007년 1월 대표로 활동했다. 지금껏 이사회 한 자리는 신 명예회장 몫이다.
박 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2009년 5월부터 이사회 한 자리를 차지했다. 즉, 27살 때인 2010년 1월 모체인 TKG태광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에 입문하기도 전에 이미 발을 들여 놓았던 곳이 정산개발이다. 2016년 9월에는 대표 명함을 팠다. 박 창업주가 작고하고 TKG태광 대표에 오를 즈음인 2020년 1월에 가서야 자리를 비웠다.
정산개발, 2010년 태광 주주로 등장
TKG 2대 승계 측면에서 정산개발의 쓰임새는 박 회장의 TKG태광 지분을 보강하는 우회 통로에 있었다. 박 회장 1인 소유가 된 해이자 이사회 합류 이듬해인 2010년 정산개발이 85억원을 주고 TKG태광 주식 4.26%를 사들였다. 이어 곧바로 ‘㈜정산’으로 넘겼다.
㈜정산은 그 해 11월 정산개발이 골프장 외에 투자자산을 따로 떼어내 설립한 법인이다. TKG태광 주식은 어디 가지 않았다. 인적분할 방식으로 쪼개진 까닭에 모두 박 회장 개인 소유였던 정산개발에서 ㈜정산으로 보유주체가 바뀌었을 뿐 박 회장 지배 아래 있었다는 의미다.
‘[거버넌스워치] TKG ②편’에서 얘기한대로, 박 회장이 창업주의 1단계 승계 카드인 신발 자재 수출업체 ‘㈜태진(泰進)’을 지렛대로 2005년 11월 TKG태광 주주(4.57%)로 등장한 뒤 2010년까지 확보한 지분이 9.3%다.
여기에 개인 지주사 ㈜정산의 4.26%까지 더해 도합 13.56%가 박 회장 몫이 됐다. 박 창업주가 79.07% 1대주주로 있던 시기다. 결국 창업주의 대물림 작업은 정산개발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당시 정산개발이 갖고 있던 계열 주식이 또 있다. TKG휴켐스다. 2006년 7월 TKG가 컨소시엄을 통해 TKG휴켐스 지분 46.0%를 1770억원에 인수할 무렵 정산개발도 참여했다. 초기 224억원에 이어 2010년 5월 유상증자 51억원 총 276억원을 투자했다. 이렇게 해서 갖게 된 지분이 6.17%다. 이 또한 ㈜정산으로 이전됐다.
박 회장의 1인 지주사 ㈜정산이 들고 있던 TKG휴켐스 주식이 훗날 창업주의 3번째 승계 카드 ‘태광엠티씨(MTC)’와 결합해 사실상 대물림 작업에 마침표를 찍는 데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 [거버넌스워치] TKG ④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