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를 도와 가업에 발을 들였던 부인과 딸들이 하나 둘 경영에서 비켜줬다. 상속주식으로 후계자에 버금가는 지분을 쥐었지만 이마저도 거의 남겨두지 않았다. 2대(代) 사주(社主)가 1인 절대권력을 쥐는 데 힘을 실어줬다.
글로벌 1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NIKE)의 신발 제조업체로 잘 알려진 TKG(옛 태광실업)그룹 얘기다. 고(故) 박연차(1945~2020) 창업주가 치밀한 설계 아래 후계자의 나이 10대 후반 때부터 다져놓은 승계기반 위에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은 이는 네 모녀였다.
네 모녀 2년새 태광 48.8%→3.5%
2020년 1월 작고 당시 창업주는 ‘신발왕’답게 상속재산이 1조3213억원이나 됐다. ▲비상장주식 1조1069억원 ▲현금성자산 1086억원(현금 등 274억원+해외주식 포함 상장주식 812억원) ▲미술품·골프회원권 등 540억원 ▲부동산 518억원이다.
창업주가 1대주주로서 보유했던 모체이자 지주격인 TKG태광 지분 55.39%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의 81%에 이를 정도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에 따라 당시 비상장 TKG태광 주식에 매겨진 가치가 1주당 20만2500원(액면가 100원), 액수로는 1조715억원에 달했다.
장남이자 후계자인 박주환(41) 현 회장이 2대주주로서 39.46%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 때다. ‘[거버넌스워치] TKG ②~⑤편’에서 얘기한대로, 부친의 은덕 아래 10대 후반인 1990년대 말부터 3개 개인회사 ㈜태진, 정산개발, 태광MTC를 지렛대로 31살 때인 2014년 4월까지 확보한 주식이다.
반면 박 회장의 상속주식은 10.07%(1950억원)로 5분의 1이 채 안됐다. 민법상 법정비율(배우자 1.5대 자녀 1)대로 상속이 이뤄져서다. 이런 이유로 박 회장이 상속을 계기로 49.53% 1대주주로 올라서기는 했지만 모친과 세 누이 역시 이에 버금가는 지분을 소유했다.
신정화(73) 명예회장을 비롯해 박선영(50) 전 TKG태광 대표. 박주영(48) 전 TKG애강․에어로젤코리아 총괄사장, 박소현(46) 전 태광파워홀딩스 전무가 면면이다. 즉, 4명이 도합 45.31%(8770억원)를 상속받아 기존 3.52%에 더해 보유하게 된 지분이 48.84%나 됐다.
의외다. 지금은 네 모녀가 들고 있는 TKG태광 지분이 3.45%밖에 안된다. 2년 새 45.39%, 사실상 상속주식 전부를 정리했다는 얘기다. 거액의 상속세가 주된 이유지만 2대 사주인 박 회장이 1인 체제를 구축하는 데 힘을 실어주기 위한 측면도 없지 않다. 여기, 그 증좌들이 있다.
물납 외에 27.02% 5050억에 현금화
창업주의 조 단위 상속이 이뤄진 터라 박 회장을 비롯해 사주 일가 5명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총 6367억원에 달했다. 상속재산의 48.2%다. 최고세율이 50%인 까닭에 그럴 만 했다. 이렇다보니 한꺼번에 현금 등 금융자산으로 충당하기에는 어림없었다.
실제 2021년 8월 상속세 신고 당시 현금으로 치른 금액은 541억원(8.5%) 뿐이다. TKG휴켐스 주식 5.79%가 주된 재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창업주가 TKG태광 외에 갖고 있던 제법 돈 되는 주식이었다. 상속인들이 이를 납세 전인 2020년 9월 전량 처분해 손에 쥐고 있던 자금이 488억원이다.
현금 대신에 전체의 59.3%인 3781억원어치는 물납(物納·현물납부)했다. TKG태광 지분 18.37%(3543억원)와 부동산 238억원이다. 이외 2045억원(32.1%) 또한 최장 10년(증여세 5년)간 쪼개서 낼 수 있는 연부연납으로 해결했다.
한데, 당시 일가 5명 모두가 TKG태광 주식을 물납한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은 없었다. 오롯이 네 모녀였다. 게다가 그 해 말까지 27.02%나 지분을 5050억원에 매각했다. 잔여 세액을 치르고도 남는 지분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네 모녀의 지분 정리는 박 회장이 ‘1인 권력’을 쥘 수 있도록 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독자경영의 길 열어주려 하나 둘 퇴진
뿐만 아니다. 네 모녀가 처분한 TKG태광 주식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2.11%가 흘러들어간 곳이 박 회장이다. 상속세를 치를 무렵인 2021년 7월 모친과 큰누나가 각각 7.67%, 4.44%를 넘겨줬다.
박 회장은 이를 통해 TKG태광 지분을 61.64%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후속편’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모친과 누이의 배려 덕에 인수대금 2335억원(주당 20만1800원)을 지불하는 것도 별 부담이 안됐다.
장남의 독자경영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모친이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뗀 것도 이 무렵이다. TKG태광 대표인 박 회장과 더불어 지금껏 이사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2021년 37%, 2022년 10%의 출석률을 보이다가 작년 이후로는 이사회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없다.
큰누나 또한 2008년 12월~2011년 9월 TKG태광 대표로 활동했지만 2020년 8월 아예 이사회 자리를 비웠다. 둘째누나도 2020년 2월 TKG애강의 이사회 멤버로서 총괄사장을 맡기도 했지만 2022년 3월 퇴임했다. 막내누나는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운영업체 태광파워홀딩스 전무로 있었지만 창업주 작고 뒤 사업이 흐지부지되자 물러났다는 게 TKG태광측의 전언이다. (▶ [거버넌스워치] TKG ⑦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