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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의 그늘]3-②눈 뜨고 코 베일라

  • 2013.08.15(목) 13:28

상법 개정안,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
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경영권 방어 취약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올들어 발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새로운 정부와 야당 등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반면 법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져 초일류 기업은 커녕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의 내용과 영향을 3부에 걸쳐 진단해 본다.[편집자]

 

상장사, 특히 SK와 LG, GS, 두산 등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기업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자칫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 때문이다.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에서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해 감사위원을 겸하는 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 선임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받는다는 점이다. 가령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라도 감사위원을 선임할때 3%의 지분밖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이 방안이 시행될 경우 경영권 보호를 위한 비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일 3%내로 지분을 분산한 해외기업이나 헷지펀드들이 공격해올 경우 이를 방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 '투명성 높이라더니' 지주회사가 더 취약

 

통상 기업의 이사회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들로 구성된다. 기업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진들이 일괄 구성되면 이중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감사위원회를 만든다. 감사위원회는 3인이상으로 구성되며 이사회의 결정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 이사회의 경우 4명의 사내이사와 5명의 사외이사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감사위원회는 사외이사 3명으로 이뤄져 있다.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은 이사회와 별도로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를 분리해서 선임하라는 것이 골자다. 대주주가 보유지분을 활용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이사진을 먼저 구성하고, 그 안에서 감사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막겠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감사위원 선출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지주회사 체제의 경우 개정안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유도했던 정부 시책에 호응했던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결과로 돌아온 셈이다.

 

만일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GS리테일의 지분 65.7%를 보유한 지주회사 GS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때 3%의 의결권밖에 행사할 수 없다. 3.26%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 역시 3%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보유한 지분은 지주회사인 GS가 20배 가량 많지만 감사위원 선임시 행사하는 의결권은 동일한 상황이 발생한다.

 

지주회사 SK 역시 SK이노베이션의 지분을 33.4% 보유하고 있지만 GS와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LG전자 지분 33.7%를 가지고 있는 지주회사 LG 역시 같은 처지다.

 

순환출자 구조라면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을 활용해 의결권 추가 확보가 가능하지만 자회사들이 수직적으로 포진된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투기성향이 강한 헷지펀드 등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 이른바 '지분 쪼개기' 등을 통해 의결권을 분산한 후 공격해온다면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다.

 

◇ 삼성전자·현대차도 방심 금물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기업들이라고 해서 이같은 위협에서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절반에 육박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47% 수준이다. 현대차와 SK텔레콤, KT 등도 모두 40%가 넘는다.

 

이건희 회장 및 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7% 수준이지만 의결권 제한으로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11% 정도로 줄어든다. 만일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결권이 규합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삼성전자의 감사위원 결정권이 외국인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는 구조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 같이 담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맞물릴 경우 그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집중투표제는 '1주=1의결권'가 아닌 선임하는 이사수에 비례해 의결권이 부여된다. 소액주주들은 자기가 원하는 이사들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헷지펀드가 감사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 소버린이 SK그룹을 공격하기 위해 지분 14.99%를 5개 자회사 펀드로 3%씩 분산했던 사례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당시 소버린은 의결권 분산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감사위원 선출을 시도했고, 2005년 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도입을 놓고 회사측과 표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이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결과적으로 대주주들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같은 상황이 현실화되면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적지않은 비용을 소모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대부분 임의규정 형태로 도입돼 있는 만큼 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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